모토오리 노리나가 같이 국뽕 일본인들은 자기네 고전 가지고 열심히 분석해서 이런저런 걸작도 내놓는데 우리는....너무 아깝네 그래
하다못해 동문선이라도 좀 널리 퍼져 비평 좀 활발하게 해주지
댓글 25
공무도하가도 채옹이 채집한거 보면 가능성은 충분한데
ㄹㅇ 남은게 없지 - dc App
galvatronus(galvatron)2026-03-15 21:03
답글
신라말에 편찬한 삼대목도 있는데 없고 고구려백제신라 사서와 각종 책들도 다 실전됐고 원효와 최치원 같은 사람 문집 남은 거라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상황 ㅠㅠ 분명 일본 궁내청 서고 같은 데에 몇 권은 비밀히 소장돼 있을거라 생각한다...
익명(121.162)2026-03-15 21:09
답글
그럴 가능성은 낮음. 통일신라때 일본이 대대적으로 침략한 기록도 없고, 특히나 삼대목 같은건 왕실이 주도한 사업이라 궁궐내에나 있었을거임. 그러면 경주가 털리지 않는 이상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낮음. 그렇다고 신라가 굳이 일본한테 삼대목 같은거 선물할리도 없고 ㅇㅇ
오히려 신라 기록물이 사라질 원인이라고 한다면 견훤이 더 가능성이 높지. 서라/벌 습격때 방화했단 기록이 있으니까. 또 고려가 통일한 이후에 신라기록물이 잘 관리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고. 너무 오래된 기록물들이니까 ㅇㅇ 나중에는 몽골애들이 들어오면서 전국적으로 약탈+불지르고 다녔는데 신라기록물들이 여기서도 궤멸적 타격을 입었을거임.
익명(222.120)2026-03-15 21:31
그냥 님이 관심이 없고 안타까운척하는 감상에 매몰된거임 - dc App
익명(211.234)2026-03-15 21:07
답글
뭔 말임 콘칩아
익명(182.222)2026-03-15 21:20
답글
고래밥아 뭔말임
익명(182.222)2026-03-15 21:25
답글
크레용신짱아 무슨 말이냐고
익명(182.222)2026-03-15 21:25
답글
오감자야
익명(182.222)2026-03-15 21:25
답글
쿠크다스야 무슨 말이냐고 ;;
익명(182.222)2026-03-15 21:26
제망매가 기파랑가 가시리 서경별곡 이런 거 보면 <삼매집>에 집대성된 노래들도 낮은 수준은 아녔지 않을까 싶음...
익명(meville1851)2026-03-15 21:23
답글
삼매집 -> 삼대목
익명(meville1851)2026-03-15 21:23
답글
용비어천가 스타일 노래였을거라 추측하기도 함. 민간/귀족들이 진짜 즐겨부른 노래/시가 아니고
왕실 주도하에 뭐 신라의 위인/왕족/왕실 찬양곡 같은 거였을 거라는거지. 이런건 솔직히...유행하기 힘드니까 신라가 망하고나서 잊혀졌을 가능성이 큼. 고려입장에서도 신라판 용비어천가를 공들여 보존하거나 유행시켜야할 이유도 없고
익명(222.120)2026-03-15 21:35
문자 유무가 컸다고 생각함. 일본은 저때 이미 가나가 있어서 기록이 비교적 용이했을 테니. 중국도 보면 고전시가들 어마어마하게 남아 있잖아. 당시만 9만수가 넘게 전해진다고 하니 ㄷㄷㄷ 그리스 로마 문헌도 다 문자가 있었으니 전해진 거고
익명(119.207)2026-03-15 21:28
향가 고려속요 시조 가사부터 읽고 그런 말을 해
익명(106.101)2026-03-15 21:36
답글
향가 고려속요 다 합쳐도 8세기 만엽집 4500여 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자나...그리고 나는 고대 문학을 대상으로 한 거라 시조 가사는 약간 핀트가 어긋났네. 물론 나는 가사와 시조를 꽤 좋아하지만 가사, 시조도 일본 국학파처럼 조선 사람들이 각잡고 비평했다는 걸 과문해서인지 본적이 없음.
익명(121.162)2026-03-15 22:34
뭐 청구영언이라도 읽고 하는 얘기임?
익명(211.197)2026-03-15 21:45
일단 다양한 >>전쟁<< 으로 유실된게많지않을까.... 란생각 해봅니다. 지역축제이런것도 옛날에 많지않았을까.... 다 전쟁으로 갈아엎어지고 없어진게많겠쥐....
셰럼책갈피(loveyyj98a)2026-03-15 21:49
답글
일본의 축제는 보통 지역신앙과 맞물려있음. 지방마다 모시는 신이라든지 뭐 이런게 다르다보니 행사스타일도 달라진거. 하지만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불교/유교/도교의 유입이 빨랐고 특히나 불교와 유교 중심의 왕조시대가 길었음. 따라서 지역의 행사 역시 이런 거대종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기존의 토착신앙을 대체해간거임. 그러면 당연히 지역 축제스타일도 전국적으로 비슷해질수밖에 없음. 그게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특색없다 느낄 수 있는거.
왕실에서 팔관회를 하면, 지방쪽들도 그정도 규모는 아닐테지만 불교중심의 행사로 변화했을거고, 조선시대에는 마찬가지로 유교스타일의 행사로 변화해간거.
익명(222.120)2026-03-15 22:00
답글
그래서 우리나라 신화에 창조신으로 나오는 존재의 이름이 "미륵"이라고 나오는것도(신화내용이 불교와 전혀 관련없음에도), 불교가 토착신앙과 결합되거나, 그것을 대체해간 흔적이라 볼 수 있는거. 또 신화들 중에 여신들이 남자신으로 대체된다거나, 다른 얘기에서는 분명 선역이던 신이 유교색채가 강한 이야기에서는 악신으로 나오기도 하는것도 다 불교나 유교의 영향으로 토착신앙이 눌려버린 흔적임.
아예 어느시점에서는 신화였을 얘기가 민담/전설로 격하되기도 하는거고
익명(222.120)2026-03-15 22:02
그 부산에 어디 대학교 교수님이 만요슈 번역하고 계심
익명(211.243)2026-03-15 23:21
답글
만엽집은 완역본이 이미 2종류나 있는데 은근히 많이 번역되네 물론 앞선 두 종류 모두 구하기 쉽진 않지만...
익명(121.162)2026-03-16 00:28
예전 작가들은 한자나 고전 열심히 공부했던 거 같은데... 요즘 작가들은 좀 덜한 느낌임
한국이 중간에 껴서 그런 거 같긴 해ㅋㅋ
공무도하가도 채옹이 채집한거 보면 가능성은 충분한데 ㄹㅇ 남은게 없지 - dc App
신라말에 편찬한 삼대목도 있는데 없고 고구려백제신라 사서와 각종 책들도 다 실전됐고 원효와 최치원 같은 사람 문집 남은 거라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상황 ㅠㅠ 분명 일본 궁내청 서고 같은 데에 몇 권은 비밀히 소장돼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럴 가능성은 낮음. 통일신라때 일본이 대대적으로 침략한 기록도 없고, 특히나 삼대목 같은건 왕실이 주도한 사업이라 궁궐내에나 있었을거임. 그러면 경주가 털리지 않는 이상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낮음. 그렇다고 신라가 굳이 일본한테 삼대목 같은거 선물할리도 없고 ㅇㅇ 오히려 신라 기록물이 사라질 원인이라고 한다면 견훤이 더 가능성이 높지. 서라/벌 습격때 방화했단 기록이 있으니까. 또 고려가 통일한 이후에 신라기록물이 잘 관리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고. 너무 오래된 기록물들이니까 ㅇㅇ 나중에는 몽골애들이 들어오면서 전국적으로 약탈+불지르고 다녔는데 신라기록물들이 여기서도 궤멸적 타격을 입었을거임.
그냥 님이 관심이 없고 안타까운척하는 감상에 매몰된거임 - dc App
뭔 말임 콘칩아
고래밥아 뭔말임
크레용신짱아 무슨 말이냐고
오감자야
쿠크다스야 무슨 말이냐고 ;;
제망매가 기파랑가 가시리 서경별곡 이런 거 보면 <삼매집>에 집대성된 노래들도 낮은 수준은 아녔지 않을까 싶음...
삼매집 -> 삼대목
용비어천가 스타일 노래였을거라 추측하기도 함. 민간/귀족들이 진짜 즐겨부른 노래/시가 아니고 왕실 주도하에 뭐 신라의 위인/왕족/왕실 찬양곡 같은 거였을 거라는거지. 이런건 솔직히...유행하기 힘드니까 신라가 망하고나서 잊혀졌을 가능성이 큼. 고려입장에서도 신라판 용비어천가를 공들여 보존하거나 유행시켜야할 이유도 없고
문자 유무가 컸다고 생각함. 일본은 저때 이미 가나가 있어서 기록이 비교적 용이했을 테니. 중국도 보면 고전시가들 어마어마하게 남아 있잖아. 당시만 9만수가 넘게 전해진다고 하니 ㄷㄷㄷ 그리스 로마 문헌도 다 문자가 있었으니 전해진 거고
향가 고려속요 시조 가사부터 읽고 그런 말을 해
향가 고려속요 다 합쳐도 8세기 만엽집 4500여 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자나...그리고 나는 고대 문학을 대상으로 한 거라 시조 가사는 약간 핀트가 어긋났네. 물론 나는 가사와 시조를 꽤 좋아하지만 가사, 시조도 일본 국학파처럼 조선 사람들이 각잡고 비평했다는 걸 과문해서인지 본적이 없음.
뭐 청구영언이라도 읽고 하는 얘기임?
일단 다양한 >>전쟁<< 으로 유실된게많지않을까.... 란생각 해봅니다. 지역축제이런것도 옛날에 많지않았을까.... 다 전쟁으로 갈아엎어지고 없어진게많겠쥐....
일본의 축제는 보통 지역신앙과 맞물려있음. 지방마다 모시는 신이라든지 뭐 이런게 다르다보니 행사스타일도 달라진거. 하지만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불교/유교/도교의 유입이 빨랐고 특히나 불교와 유교 중심의 왕조시대가 길었음. 따라서 지역의 행사 역시 이런 거대종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기존의 토착신앙을 대체해간거임. 그러면 당연히 지역 축제스타일도 전국적으로 비슷해질수밖에 없음. 그게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특색없다 느낄 수 있는거. 왕실에서 팔관회를 하면, 지방쪽들도 그정도 규모는 아닐테지만 불교중심의 행사로 변화했을거고, 조선시대에는 마찬가지로 유교스타일의 행사로 변화해간거.
그래서 우리나라 신화에 창조신으로 나오는 존재의 이름이 "미륵"이라고 나오는것도(신화내용이 불교와 전혀 관련없음에도), 불교가 토착신앙과 결합되거나, 그것을 대체해간 흔적이라 볼 수 있는거. 또 신화들 중에 여신들이 남자신으로 대체된다거나, 다른 얘기에서는 분명 선역이던 신이 유교색채가 강한 이야기에서는 악신으로 나오기도 하는것도 다 불교나 유교의 영향으로 토착신앙이 눌려버린 흔적임. 아예 어느시점에서는 신화였을 얘기가 민담/전설로 격하되기도 하는거고
그 부산에 어디 대학교 교수님이 만요슈 번역하고 계심
만엽집은 완역본이 이미 2종류나 있는데 은근히 많이 번역되네 물론 앞선 두 종류 모두 구하기 쉽진 않지만...
예전 작가들은 한자나 고전 열심히 공부했던 거 같은데... 요즘 작가들은 좀 덜한 느낌임 한국이 중간에 껴서 그런 거 같긴 해ㅋㅋ
저 정도의 시는 최치원 시가 압살하는데
문창후의 산문만 몇 편 읽어서 미처 몰라뵈었네
그리고 나는 질보다도 양을 말하는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