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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는 요절한 한국 시인들에 대해 얘기할 때 기형도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시인이다. 그녀는 지독하게 우울한 감성을 보여주는 시와 등단 바로 다음 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때문에 우울한 시를 찾는 사람들의 입에 종종 오르내린다. 

이연주가 살11자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우리는 그녀의 직업에서 그것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연주는 시인이자 간호사로서 미군 부대 근처 매춘부들의 참혹한 삶을 목격하고 치료해야 했다. 시인은 생전에 이 매음녀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연주 시인과 생전 친하게 지냈던 김상미 시인은 이연주가 매음녀들과 자신을 동일시할 정도로 그녀들의 삶에 너무 깊이 함몰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그녀에게서 받았다 했고, 그 삶들이 그녀의 가슴에 너무나 큰 구멍을 만들어 놓았기에 자신은 그 구멍을 통째로 끌어안기 위해 계속 써야 한다는 말을 자신에게 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이연주는 매음녀들을 진단하는 간호사이자, 매음녀 본인이 되어 시를 썼던 것이다.이러한 지나친 동일시는

이연주 시에서 시적 화자와 대상의 경계가 자주 무너지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매음녀> 연작을 그 예로 들어보자.


*『유심』2015-12월호 <송년기획/ 겨울밤, 요절 시인을 읽다>




팔을 저어 허공을 후벼판다.

온몸으로 벽을 쳐댄다.

퉁, 퉁—

반응하는 모질은 소리

사방 벽 철근 뒤에 숨어

날짐승이 낄낄거리며 웃는다.

그녀의 허벅지 밑으로 벌건 눈물이 고인다.

한번의 잠자리 끝에 이렇게 살 바엔, 너는 왜 사느냐고 물었던

사내도 있었다.

이렇게 살 바엔—

왜 살아야 하는지 그녀도 모른다.

쥐새끼들이 천장을 갉아댄다.

바퀴벌레와 옴벌레들이 옷가지들 속에서

자유롭게 죽어가거나 알을 깐다.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들추고 그녀는 매일 아침

자신의 시신을 내다버린다, 무서울 것이 없어져버린 세상.

철근 뒤에 숨어사는 날짐승이

그 시신을 먹는다.

정신병자가 되어 감금되는 일이 구1원이라면

시궁창을 저벅거리는 다 떨어진 누더기의 삶은……

아으, 모질은 바람. — 매음녀 1



이 시에서 관찰되는 시적 대상은 매음녀다. 그러나 그것을 관찰하는 주체인 화자는 시에 드러나 있지 않다. 

이 시는 매음녀가 느끼는 감정을 정보로 전달하는데, 마지막 연의 독백이 매음녀를 관찰하는 화자의 독백인지 매음녀의 독백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이렇게 관찰되는 대상과 관찰하는 주체의 위치가 모호하다는 사실은 <매음녀> 연작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함박눈 내린다.

소요산 기슭 하얀 벽돌 집으로

그녀는 관공서 지프에 실려서 간다.


달아오른 한 대의 석유 난로를 지나

진찰대 옆에서 익숙하게 아랫도리를 벗는다.

양다리가 벌려지고

고름 섞인 누런 체액이 면봉에 둘둘 감겨

유리관 속에 담아진다.

꽝꽝 얼어붙은 창 바깥에서

흠뻑 눈을 뒤집어쓴 나무 잔가지들이 키들키들

그녀를 웃는다.


반쯤 부서진 문짝을 박살내고 아버지가 집을 나가던 날

그날도 함박눈 내렸다.


검진실, 이층 계단을 오르며

그녀의 마르고 주린 손가락들은 호주머니 속에서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찾아 꼬물거린다.

한때는 검은 머리칼 찰지던 그녀,


몇 번의 마른기침 뒤 뱉어내는

된가래에 추억들이 엉겨 붙는다.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함박눈 내린다. — 매음녀 6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로 화자는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매음녀가 성병 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중간에 아버지가 문을 부수고 나가는 장면의 회상이 존재한다. 이 회상이 화자가 겨울에 매음녀를 관찰하며 하는 회상인지 매음녀의 회상인지는 알 수 없다.

마지막의 독백 역시 매음녀가 내뱉는 독백인지 화자가 매음녀를 보며 갖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렇게 시적 주체가 와해되고 타자의 고통 속으로 파고들게 되는 현상은 다른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검은 타이어 바퀴 밑에 깔려 죽어 있었다.

터져나온 창자들에서 피거품 일었다.

떨어져 나간 왼팔이

펄떡펄떡 미쳐가고 있었다.

골방에 갇힌 쪽거리 기하학의 원형질이

힘을 내요, 힘을 내요.


태양이 펄펄 끓고 있었다.

오후 2시.

나는 달려들었다. 머리채를 훌떡

내 골을 파먹고 살점을 떼어먹고

꿀럭꿀럭 피를 마셨다.

비인칭의 땀이 솟았다.

흐흐흐흐……


힘을 내요, 힘을 내요.

힘을 내라니. — 비인칭의 엔트로피



이연주 시에서의 주체의 혼란은 자기 자신을 타자화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 시의 화자는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남의 일인 양 관찰한다. 죽은 화자와 다르게 화자의 팔은 살아 있는 것처럼 '펄떡펄떡 미쳐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인칭이다. 이 시의 백미는 '힘을 내요'라는 구절이다. 이미 처참하게 죽은 화자에게 건네는 상투적인 응원은 되려 부조리한 조롱으로 들린다.

또한 이연주의 몇 시는 시적 주체의 관찰이 아예 사라지고 시적 대상이 직접 발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때 화자의 언술은 정돈되어 있지 않다.



어머니, 숨겨주세요, 무서워요, 저, 구둣발 소리, 개떼를, 몰고, 오

나봐요, 어머니, 어디로, 어머니, 살려줘요, 어제도, 한 달 전에도, 이

웃집 청년이, 이층집 남자가,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았잖아요, 저들

이, 으으, 어머니, 유리창에, 내, 얼굴이, 눈이, 무서워요, 내 손이, 웬

일인지, 조금씩, 움직여요, 아, 나는, 가만 있는데, 손이, 움직여요, 문

고리를, 열잖아요, 개떼가, 아, 몰려오는, 구듯발 소리, 그들은, 겁탈

할 거예요, 그들은, 짓이길 거예요, 어디, 먼데로, 도망쳐요, 어머니,

어디 계세요, 나도 모르게, 그들과, 내가, 아, 난 싫어요, 뭐라구요, 이

제는, 살아 있는 게, 죄라니요, 도망칠 수, 없다니요, 그럼, 나는, 아으! — 얕은 무의식의 꿈



이 시의 화자는 극심한 공포에 빠져 있다. 이 시의 발화 과정은 정신의학에서 환자의 생각을 생각나는 대로 적는 '자유 연상' 치료법의 결과물과 비슷하다. 그래서 화자의 언술은 정돈되지 않은 상태다. 화자는 '구둣발 소리'를 무서워한다. '내 얼굴이, 눈이, 손'을 무서워한다. 가만 있는데 움직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이 시의 화자에게 타자 그리고 세계는 자신을 해할 가능성 밖에 없는 공포스런 존재다. 마지막 연은 절망의 끝이다. 

또한 이연주는 대부분의 시에서 임신과 출산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 서 있다.

이연주 시에서의 가족은 대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아이는 일종의 '병'과 같은 존재이거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바람난 에미가 도망치고 애비가 땅을 치고 울고


애비가 섰다판에서 날을 새고

그 애비의 아이가

애비를 찾아 섰다판 방문을 두드리고


본드 마신 누이가 찢어진 속옷을 뒤집어 입고

지하상가 쓰레기장 옆에서

면도날로 팔목을 긋고


세 살 난 막내가 절룩, 절룩 자라가고

에미 애비와 누이의 일들을 거침없이 이해하고


오늘,

밤마다 도시가 하나씩 함몰되고, 나는

등불에서

등심지를 싹둑, 싹둑 잘라내고 — 가족사진



이 시의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도망치고, 아버지도 아버지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누이는 '찢어진 속옷'이라는 시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성폭력의 흔적을 안은 채 살11자를 꿈꾼다. 마지막으로 태어난 가족 일원인 막내는 '절룩, 절룩' 자라나는데, 아이 역시 그들과 비슷한 노선을 걷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방치된 탄생이 관 같은 요람 위에 누워 있다. 푸줏간의 비릿한 냄
새, 온갖 경험을 거쳐 늙은이의 침묵에 이르기까지 누가 저것들을
그 먼 곳까지 인도할 수 있으리. 나는 세면대 가득 물을 받아 손을
씻는다.
이곳은 불을 끄면 그대로 암흑이다. 어제 태어난 아이도 자궁 감
자로 끄집어냈지 않나, 모두가 그렇다. 아니면 마취제를 전신에 걸
고 절개수술로써 태어남의 시분초를 알1리는 것이다, 전쟁터에 일개
보병으로 올려지는 시간이지. 나는 어린것 하나를 들어올려 벌써
노랗게 곪아가는 그 얼굴의 반점들을 지켜본다.
이것 봐, 총과 칼로써 네 몸을 무장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 문제
는 맨몸으로 기도문 한 구절 없이 버티는 용기와 저항의 힘이란다.
기도문이란 다만 죽은 자들을 위한 문장일 뿐이니까…… 나는 알
코올솜으로 정성들여 손바닥을 문지른다. 제발 잊지 말아, 저 전깃
불이 얼마나 큰 어둠을 감추고 있는지…… — 신생아실 노트


이 시 역시 마찬가지다. 화자는 신생아를 '방치된 탄생'이라 일컫고, '관 같은 요람 위에 누워 있다'고 말한다. 가족사진의 아이가 노인처럼 자라는 것처럼 이연주는 출산이나 탄생을 죽음과 연관짓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 행은 시적 대상에게 직접 말을 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축복보다는 걱정과 우려에 가까운 메시지다. 이연주에게 탄생이란 단지 죽음으로 가는 형벌의 시작일 뿐이다.


암탉 같은 어머니 모로 누워 계신다.
짧은 벼슬을 내려놓고
쭈글쭈글해진 배를 땅바닥에 철퍼덕
모가지를 조여대는 출산에 쓰이는 천조각

막 낳은 단조로운 흰 달걀 하나가
아직 뜨끈뜨끈한 김을 내며
「아버지, 저를 죽여주세요」
긴장형 조발성 치매증을 앓고 있다.

긴 장화를 신고 난자를 멸시하셨지
휘청거리는 해골을 덜렁덜렁
상스럽게 쓰던
아버지, 아버님, 오, 무자비한 ……

어머니 짧은 벼슬을 푸르르 떨며
어쩌다가 씨앗이 우리를 경멸하게 되었는가.
홀러가던 구름 몇점이
똥을 찍–갈기고 간다. — 비극적 삼각관계


이 시의 화자는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제목이 암시하듯 관계의 한 축을 점유하며 서사 전체를 지배한다. '출산에 쓰이는 천 조각'이 목을 조여대는 역설적 묘사는 시인이 가진 탄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며, 암탉으로 비유된 어머니가 낳은 '흰 달걀'은 "아버지, 저를 죽여주세요"라고 울부짖으며 조발성 치매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가족사진>에서 막내가 노인처럼 자라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이연주에게 신생아는 새로 태어난 생명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 이미 죽음을 향해 가는 노인이나 다름없다. 무기력한 어머니와 무자비한 아버지 사이에서 생명은 시작부터 더럽혀지며, 마지막 연에 이르면 구름과 같은 자연물조차 불길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식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지독한 허무주의는 시인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다. 산부인과 간호사로서 사물처럼 소모되는 여성의 육체와 빛을 보지 못한 채 스러지는 생명들을 목격해야 했던 경험은 가족과 출산에 대한 깊은 불신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세계와 타자를 향한 서늘한 응시를 담은 시의 대부분은 다른 감정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시집을 읽을 때 일종의 유서를 읽는 게 아니었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부정적 현실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선언을 담은 몇 시가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서역, 그 뒤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다시 시작해 보자.
더러운
추억의 힘이여. — 겨울 석양


서역은 중국과 서양이 교류할 수 있게 해준 중국 본토 이서의 지역, 쉽게 말해 실크로드가 있는 곳이다. 즉 저 너머에 사람이 있고 다른 문화가 있는 곳이 서역이다. 그러나 화자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하면서 불신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다시 시작해 보자'고 하는데, 그 원동력은 '더러운 추억의 힘'이다. 화자에게 추억은 더러운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화자를 받치는 힘이 되어준다.


방문객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
문들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삶을 꿈꾸어 오는 동안 내 입김서린
저 책장의 쓸쓸한 낱글자들
이제 그것들은 단단해져버린 돌고드름의 몸으로
엉겨 마른 내 종양의 세포질을 향해
침묵의 종지부 속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때는 버팀목이 되었던 뼈마디들 앞에
나는 허름한 문짝처럼 덜컹거린다
소금 냄새로 절어버린
나를 감싸 덥혀주었던 꿈의 헌 옷가지들
나는 푸들푸들 떨고 있다
남아있는 기력을 지배하는 추억들이여
물컹거리는 어둠에 살을 기대고
여기 몇해만 더 머무를 수 있겠는가
유배지의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까지 질기다. — 유배지의 겨울


이 시의 화자는 골방에 갇혀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한다. 동시에 문 밖의 존재에 관심과 갈망을 느낀다. 또한 자신을 제외한 세계의 다른 요소들이 전부 자신으로 수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우울증의 전형이다. 타자와 자아를 동일시하여 외부의 대상을 자아 내부로 흡수해버리는 나르시시즘적 자아는 역설적으로 비대해진다. 
<겨울 석양>과 마찬가지로 화자에게 추억은 이렇게 더러운 것이나 그 더러운 추억만이 화자의 남은 기력을 지탱하는 모순적인 동력이 된다.


향기를 모른다, 나는
붉은 열매를 품어주러 다가가는
한나절 빛살들의 꿈을 모른다

월셋집 문간 담벼락 아래
당신 구두 발길질 아래
나는 살아간다
일생 내 영역의 터가 
길바닥 보도블록 금간 데
뿐이라 해도

모질게 질긴 목숨이다
쓸지 마라
내 허리 동강 쓸어버린단들
그래도
또 살아간다

땅이 양질의 단백질이다. — 잡초

이 시에서도 부정적 현실 인식이 끈질긴 생명력의 재확인되는 모습이 드러난다. 꽃의 향기나 빛나는 '꿈'의 세계를 모른다고 고백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잡초'처럼 어두운 곳에 있어도 또 살아가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진다. 비참한 현실을 생존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아 살아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이 무색하게도 현실의 절망은 시인을 압도했다. 최승자의 몇 시에서 마주하게 되는 '부정적 현실에 결코 꺾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이 시에서도 엿보이지만, 시인은 등단 직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그 가능성을 닫아버렸다. 너무도 짧았던 활동 기간 탓에 이연주는 한국 시 역사의 거대한 줄기에서 비껴나 요절 시인 혹은 여성 시라는 특수한 범주 안에서만 논의되곤 한다. 이연주가 <속죄양 유다>를 넘어 시를 더 쓸 수 있었다면 그녀의 시세계가 어떻게 변화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