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과 대상의 존재에 관한 말은 모두 현상이며 뜻Bedeuten을 지닌다. 그것은 (현상학적 분석의 각 단계가 가르치듯이) 의식이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또 다른 유형의 연관들을 가리키는데, 이런 연관들은 자현에서 절대적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그때그때 주어짐이라는 절대적 현상을 가리키는데, 이 주어짐의 본질적 구조는 이것이 바로 여기에 몸소 있음의 의식이자 주어짐의 의식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대상과 대상 존재라는 말이 지니는 모든 의미는 이러한 [의식]연관에서 중시되며, 인식하는 주체, 사유하는 자아 등이라는 말도 그렇다. 이들도 하나의 대상성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대상성이라는 이 용어에 있어 사물적 대상성을, 곧 사물, 속성, 사물의 사태연관 등을 생각한다.

그러나 '의식'도, 그리고 이 이름이 포함하는 모든 것들도, 즉 지각과 직관 일반, 판단 등도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의 대상성이다. 그리고 대상성의 의미가 지시하는 그러한 법칙에 종속된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이라는]대상성은 어떤 특전을 지니는데, 이 특전에 기초하여 의식과 좁은 의미의 대상을 근본적 방식으로 대조하는 것이다. 의식이라고 불리는 광의의 대상성들이 말하자면 모든 초재하는 대상성들의 근본토대Urgrund이고 담지자Träger이기 때문이다. 사물은 의식에서 구성된다. 사물과 이것의 '현실적 존재'에 의미를 증여하는 것은, 특정 종류의 의식 연관들에서 본질 법칙에 따라 드러나는 어떤 지향성Intentionalität, 혹은 이 연관들에 본질적으로 고유힌 어떤 지향성이다. 이런 지향성은 그 의미상 이러한 [의식]연관들과 불가분하다. 하지만 의식 자체는 절대적 존재이고 바로 그래서 사물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단적인 자현에서 절대적으로 주어진다. 그것은 순수 직관에 주어진다. 그것은 동일화될 수 있는 것이며 그래서 또한 대상이지만, 의식 연관들에서, 그리고 이 연관들을 종합하여 연결하는 의미에서 비로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하고 직관된다. 세계는 말하자면 의식에 의해 담지된다. 그러나 의식 자체는 그런 담지자가 필요없다. 의향함은 다시 의향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의향함의 연관에서야 비로소 있으며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의향 연관도 다시 다른 의향 연관에서만 그렇게 존재하고, 이렇게 무한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물은 오로지 지향 연관들 덕분에 그렇게 존재하는데, 이 지향의 유형과 형식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물은 나의 심리 작용, 표상, 지각,, 판단 등의 연관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이렇게 묻는 사람은 물론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현상학적 환원은 유아론적 환원solipsistische Reduktion이 아닌 것이다. [유아론이 전제하는]자아 자체도 사물적인 것으로서, 지향적 연관과 그 본질적 형식들에서 구성되고 오로지 이를 통해서만 증시되는 것이다. 의식 형상들을 하나의 자아에게, 이러저러한 인격에게 관련시킬 권리는 대상화하는 사유와 논리에 의해서야 비로소 토대를 가진다. 그리고 이 권리가 어떤 의미인지는 현상학적 분석에서 증시된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에서 이야기되는 사유는 그 누구의 사유도 아니다. 우리는 (자아가 여기 있지만 다만 이것을 적시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저 자아를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아에 대한 초재적 정립을 배제하고, 절대자에, 즉 순수한 의미의 의식에 머무는 것이다.


『사물과 공간』 (에드문트 후설 저, 김태희 역)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