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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는 <소설의 기술>에서 소설, 넓게 잡아 문학의 종말을 선언했다. 과격한 표현이지만, 현 시대의 소설은 ‘소설의 역사’를 벗어난 소설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는 허무주의를 뜻하지는 않는다. 세르반테스부터 시작해 토마스 만까지 이어져오던 소설의 전통이 끊긴 것일 뿐, 그 후의 소설 창작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길, 또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쿤데라의 논의는 날카로운 동시에 설득력이 있고, 이 주제는 헤이세이 일본 문학 비평서 <나선형 상상력>과 여러가지 면에서 맞닿아 있다. 쇼와가 가족 국가로서의 일본을 강조하며 그에 따라 표현 방식으로서의 문학이 최고의 지위를 점령했던 것과는 반대로, 헤이세이 시대의 문학은 전후의 부채와 냉전과 세기말의 혼란을 살아가며 점점 중요성을 잃다가,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에게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었다. <나선형 상상력>은 표면적으로 패배한 문학을 다루지만, 이는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면 패배한 것이 아닌,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성의 구조에 놓여 있었고, 따라서 (비록 역사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고유한 문학으로서의 기능을 최선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것을 6개의 문제를 통해 설명한다. 이 글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1장과 6장에 대한 감상만을 짧게 서술한 것이다.
1장은 일명 파우스트계 작가들(마이조 오타로, 사토 유야, 니시오 이신)이 어떻게 기존의 쇼와 시대 문학가들이 고민한 내러티브의 문제를 해체하고, 그 잔여물 속에서 새로운 서사를 창조할 수 있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러티브는 소설가들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이다. 쇼와 후기 하루키에게는 초기작에서 비록 무서사에 가까운 서사를 가지고 있을지언정, ‘이야기’하려는 자세와 태도는 오에와 마찬가지로 고뇌한 흔적이 엿보인다. 하지만 제로년대에 이르고 문학의 유행은 더 이상 ‘이야기’가 중심을 차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뢰할 수 없는, 즉 병적인 서술자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결여된 객관성과 함께 내러티브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른다. 여기서 등장한 위 세 작가는 모두 세이료인 류스이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그의 안티 미스터리 괴작 <코즈믹>과 <조커>는 신본격 미스터리의 허점(논리적인 추리와 트릭을 위해 이용되는 인물들의 꼭두각시화)을 파고 들며 폭력의 본질과 세기말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쨌거나 세이료인의 배다른 자식들인 마이조, 사토, 니시오는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폭력과 해체를 이어받는다.
6장은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연대기>론이다. 전후 일본에서는 역사 인식 문제가 대두되었고 문학은 그것에 대한 응답으로 재역사화와 탈역사화라는 역사를 허구로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전자는 역사로의 귀환이지만, 그 역사는 정사가 아닌 위사에 가까운 무엇이다. 후자는 말 그대로 포스트 역사적인 태도, 역사를 외면하거나 떨어져 나온 것을 의미한다). 후쿠시마 료타는 “대문자 역사”에 다가가기 위한 위 두 흐름을 통해 역사와 허구, 그리고 (역사로의) 소설적 접속을 설명한다. 하루키는 역사의 종언에 대한 인식을 80년대 작품들을 통해 보여줬었다. 하지만 재역사화 (들뢰즈가 말한 세계 자본주의의 탈영토화는 재영토화라는 반동을 낳았고 헤이세이 문학의 재역사화는 이 맥락에 얹혀있다)라는 시대적 물결로 인해 위처럼 탈역사화적 사고를 가진 채로 재역사화 속으로 들어간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에서는 두 개의 거시 역사와 미시 역사가 교차하면서 서술된다. 다른 이에게 전해듣는 이인칭적 시점의 2차 대전 이후의 노몬한 전투, 그리고 일인칭적 시점에서 바라보는 아내의 실종. 서술자 ‘나’는 능동성이 결여된 상태이므로, 타인에게 이야기를 전달 받을 수 밖에 없다. 이 역사들이 서로 겹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혼돈은 작품의 주체들의 정체성에 관해 의구심을 가지게 하면서, 작품의 실체는 점점 더 모호해진다.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가 긴 여정 끝에 끝내 페넬로페와 재회하는 것과 반대로 ‘나’는 결코 아내에게 이르지 못한 채 겹겹이 쌓여가는 안개와도 같은 허구적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속 역사는 객관적 사실들의 총체가 아닌, 다른 차원 속 폭력과 그에 따른 상실이다. 소설은 실제 역사와 일치할 수 없고 그에 따라서 후쿠시마 료타는, 일치할 수 없음에도 끝없이 순환해서 역사에 접속하려고 시도하는 이 작품을 “가치 있는 실패작”이라 평한다.
파우스트계 작가들 이야기 너무 재밌다
류스이 읽어보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