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또라이들은 잠시 놔두고


오늘은 빡-진지 모드로 간다. 애당초 유머 소재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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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다루었지만, 스탈린이 갈아버린 뛰어난 예술가들로만 사단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숙청엔 많은 작가들이 포함되어있었다.


스탈린의 숙청 실력은 정말로 뛰어났다. 그는 한 문예사조를 통째로 갈아버리거나, 한 민족의 문학을 완전히 절멸시키는데에도 성공했으니까.



가령, 스탈린 덕분에 활발하게 움직이던 러시아 미래주의와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그대로 사라졌고,


스탈린 본인만 쓰려고 했는지, 조지아 문학은 대표 작가들이 싸그리 사라져서 한동안 맥을 못 썼고,


동유럽계 유대인들이 쓰는 이디쉬어로 된 문학은 러시아 땅에선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우크라이나나 다른 언어 문학은 물론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엔 러시아문학도 당연히 포함되었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F4 시인 4명이 있다. 농담삼아 F4지만, 20세기 가장 뛰어난 러시아 시인들이자, 현대 시를 대표할 만한 4인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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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구준표, 윤지후------ 는 당연히 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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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프 만델스탐(만젤쉬땀), 마리아 츠베타예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안나 아흐마토바다.



이들 각자마다 구슬픈 이야기가 있지만, 오늘 이야기할 주인공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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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마토바, 일명 러시아의 안나로 불리는 국민시인이자 20세기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1889년,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난 안나 고렌코는 어릴 적부터, 기록에 전하기론 11살 때부터 시를 썼다고 한다. 오늘날 전해지진 않지만.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시를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이에 안나는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조상들의 이름 중 타타르계열 이름과 관련된 '아흐마토바'라는 필명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고, 이로 유명해진다.


그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인들의 써클에서 점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낭송회에 참석하는 등 시인으로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동료 시인 니콜라이 구밀료프와 알게 되었고, 끝내 그와 결혼하여 아들 레브 구밀료프를 낳게 된다.


그리고 구밀료프와 함께 시인으로서 계속 활동하며, 그 당시 러시아 시인들의 메카였던 <들개 카페 - 카바레 스트레이독스>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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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스트레이독스 아시는구나! 와! 인간실격~ PPAP~


이런 거 말고 씹떡쉐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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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다.


이 당시 페테르부르크에 있던 예술가들이 모이던 카페 <들개>인데, 마야코프스키 같은 미래주의자나 아방가르드들, 상징주의 시인들, 그리고 아흐마토바 같은 새로운 시인들까지, 여기서 노닥거리던 이들만 뽑아도 20세기 초반 러시아 문학사는 채워진다.



이곳에서 오시프 만델스탐 등과도 알게 되면서, 아흐마토바는 구밀료프와 함께 곧 <시인 길드>, 혹은 <아크메이즘>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아크메이즘은 간단하게, 상징주의에 반대하며 일어난 러시아판 신-고전주의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더니즘이 꼭 과거를 쳐부수자고 외치는 게 아니라고 언젠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크메이즘 또한 일종의 복고풍 운동이다.



상징주의 자체가 '모호'하게 쓰는 경향이 있다보니, 아크메이즘을 외친 이들은 고전주의처럼, 명료하고, 현실적이며 간결한 형식을 외치면서 이에 걸맞는 시들을 쓰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아크메' 자체가 희랍어 아크메(성숙함)에서 따왔는데, 그만큼 고전 그리스 풍이나 문학 등에도 관심을 보인다.


아흐마토바는 이러한 운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또 번역 사업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한국과도 생각 외로 인연이 있는데, 이 당시 제정 러시아에서 출간된 한국시 번역에 시인으로서 참여하기도 한다.

한국어 전공자가 한국어를 직역하면, 그걸 러시아 시처럼 다듬는 역할로. 원래 외국에선 이렇게 시인들이 번역에 많이 참여한다.



그러던 중 혁명까지 일어나는데, 사실 제정 러시아 자체가 워낙에 막장이어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혁명 자체는 환영했다.


다들 그렇게, 새로운 러시아가 펼쳐지고,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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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을 처맞기 전까지는.




타노스는 절반이라도 살려두었지만, 스탈린은 한 90프로를 죽였다고 보면 된다.



아흐마토바를 비롯한 수많은 시인들은 곧 반동이 된다.


그녀의 남편이자 이 당시엔 이혼했던 구밀료프는 끌려갔다가 곧바로 비밀경찰에게 총살되었고,


시인길드, 아크메이즘을 구성하던 동료들도 죄다 끌려라고, 만델스탐 또한 스탈린 뒷담하는 시 썼다가 굴라그로 끌려가선, 언제 죽었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하지만 아흐마토바 본인에겐 주변을 신경쓸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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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녀 본인에게도 숙청의 위협은 목전까지 다가와있었고, 일단 '강제 침묵'을 명령받게 된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쓸 수도, 출판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비밀경찰은 그녀까지 잡아가려고 했지만, 스탈린은 일단 살려만두라고 명했다.



거기에 더하여, 대숙청 기간에 친절한 스탈린 동무는 아빠 구밀료프 혼자만 굴라그 간 것이 억울할까봐,


아흐마토바의 아들 레브 구밀료프 또한 굴라그 관광을 시켜주었다.


심지어 두번째 남편도 굴라그로 보내주었는데, 두번째 남편은 굴라그에서 죽는다.


아들마저 끌려가자, 아흐마토바는 어떻게든 아들을 구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다.


자신의 친구들을 죄다 파멸시킨 스탈린에게 찬양하는 시까지 바쳐가면서.


물론 아무 소용 없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아흐마토바는 그저 굴라그에 들어간 아들에게 면회를 가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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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간 안나 고렌코는 그랬지만, 시인 아흐마토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침묵을 선고받았지만, 아흐마토바는 계속 아무도 읽지 못할 시를 썼고, 여기엔 면회를 가는 자신이 처한 현실, 굴라그에 모인 이들에 관한 작은 시 모음집도 있었다.



오늘날 <레퀴엠>이라 불리는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시집의 서문엔, 마치 아흐마토바 본인이 어떤 경위로 이 모든 걸 남길 것을 결심했는지는 보여주는 듯한 일화가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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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숙청의 끔찍한 나날동안, 나는 레닌그라드의 면회 행렬 속에서 열일곱 달을 보내야만 했다.


한 번은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았다.'


그러자 내 뒤에 서있던, 입술이 파랗게 질린 여인이 내 귀에 속삭였다.

(이곳에선 누구나 말을 할 때 속삭였다)


그녀는 내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이들이 굴복하고 있던 무기력에서 깨어나 물었다.


"누군가가 이 모든 걸 남길 수 있을까요?"


나는 말했다.


"예, 제가 할 수 있어요."


그러자 미소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한때 그녀의 얼굴이었을 것에 스쳐갔다.


4월 1일, 1957 레닌그라드"

- 레퀴엠, 서문 대신, 아흐마토바




스탈린 사후, 그녀에 대한 통제는 다른 많은 예술가들에게 그러했듯 조금은 느슨해졌고, 조금씩이지만, 그녀도 다시 글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 빼앗기거나 소실된 원고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그녀의 잃어버린 희곡 <에누마 엘리쉬>는 아직도 연구가들의 입맛만 다시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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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에누마 엘리쉬! 길가메쉬!


달빠 죽어!!!



불행하게도 그녀는 그녀의 동시대 작가들 중에서 최후까지 살며, 모든 험한 꼴을 봐야만했고,

소비에트 당국은 마치 트로피처럼, 마지막으로 남은 그녀를 다시 높게 평가해주며, 그녀의 이름도 다시 해외에 퍼지기 시작한다.


그녀가 죽기 1년 전에도 노벨상 후보에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3명의 후보 중 2위에 그쳐서 상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녀의 명성이 다시 세계적으로 퍼진 것에 대한 증명일 것이다.

(노벨상 후보 이야기는 사실 위원회 측에서 공식적으로 일정 기간 지나면 공개한다. 도박사들이 내기하는 건 그냥 카더라 추측이지만, 공식적으로 어떤 작가가가 몇 차례 후보에 들었었다, 같은 이야기 나오는 건 공식 발표라고 보면 됨)



말년의 그녀는 이러한 고난의 시련을 겪은 와중에도 시인 조수들을 데리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쓴다.


대표적으론 일명 <아흐마토바의 고아들>이 있다.


아흐마토바 곁에서 그녀를 돕던 4명의 시인들은


아흐마토바 사후, 그녀의 고아들이라고 불렸고, 대표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러시아 시인 이오시프 브로드스키가 여기의 일원이었다.



그녀의 표현대로, 러시아의 안나는 러시아 1억명을 대신하여 비명을 쏟아내는 이였고, 대신 모든 걸 써준 이었다.


물론 그녀가 단순히 굴라그와 스탈린의 숙청에 대한 시를 써서 유명한 건 아니다.

원래 숙청 이전부터 이름 높았고, 그녀의 대표작들은 기록시 <레퀴엠>에서부터 <영웅 없는 서사시(포에마)>까지, 러시아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모더니즘의 세계적인 시인으로 오늘날 기억되고, 번역되고 읽힌다.


국내엔 그녀의 대표작이자 최고 걸작으로 뽑히는 갓작 <영웅 없는 서사시>가 번역되었으나 절판된 모양이고, 창비 세계문학 러시아 시인선에 몇 편 정도 밖에 없지만, 사실 이 시기 러시아 시인선은 괜찮으니까 츄라이하자.




에필로그 2

(레퀴엠 中)

- 안나 아흐마토바


1.


나는 어떻게 사람들의 얼굴이 무너져내리고

내려앉은 눈꺼플 속에서 공포가 도망치며

고통이 뺨 위에 잔혹의 기록을

쐐기 표식으로 새겨넣는지 배웠다.

나는 검은 머리칼과 잿빛금발이 한순간에

하얗게 질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고분고분한 입술 위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텅 빈 웃음을

떨리는 공포가 채워나가는 것을 알아보는 법을 배웠다.

이것이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함께 서 있던 그들,

험악한 추위와 타는 듯이 더운 칠월 햇볕 속에서

우뚝 솟은 눈먼 붉은 벽 아래 함께하던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하는 이유다.


2.


죽은 자들을 기억할 시간은 도래했다.

나는 그들을 보고, 들으며, 느낀다:

열린 창문을 향해 질질 끌려가며 저항하던 이,

발밑에 채이는 모국의 흙에서 더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된 이,

갑자기 머리를 젖히곤,


"고향에 오듯 난 이곳에 도착했다!"라며 외치던 이..

나는 그들 하나 하나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만,

명부는 사라졌고, 어디에도 찾을 길은 없다.

그래서 나는 우연히 들었던 그들의 초라한 말로나마

그들을 위해 커다란 장막을 만들었다.

어느 곳에서나, 영원히, 단 한 순간조차,

단 하나도 나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새로운 절망 속에서도,

1억의 비명을 대신 쏟아내는

고통으로 지친 내 입에 저들이 재갈을 물린다 할지라도.


그것만이 내가 죽어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이기를,

나의 추도일 전야에서.

그러나 만약에라도, 어느 날 이 나라에서 누군가가

나의 기념비를 세우려고 한다면,

나는 그 영광을 수락한다

다음과 같은 조건 아래에서만 - 그 기념비는

내가 태어난 바다 근처에 세워져선 안 된다.

바다와의 내 마지막 연결은 부서진 지 오래니까.

차르의 정원, 정성스레 가꾼 소나무 그루터기 근처도 안 된다,

절망의 그림자가 나를 지켜볼 테니까,

그러니 이곳, 내가 300여 시간을 서 있었지만,

그들이 문의 빗장을 결코 치워주지 않은 이곳에 세워주기를.

축복받은 죽음 속에서도 나는

잊지 않아야 한다, 죄수 호송차의 으르렁거림을,

어떻게 그 증오스런 문이 닫혔고,

다친 짐승처럼 늙은 여인이 울부짖었는지.

그러니 움직이지 않는 청동 같은 내 눈꺼풀에서 흐르는 눈물처럼,

녹은 눈은 흘러가리라.

네바 강가의 배들이 고요히 항해할 때,

감옥의 비둘기도 저 멀리 울며 날아가리라.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프루스트와 조이스의 자존심 강한 제자 대결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냉혹한 이탈리아의 마피아 작가

- 폴란드식 기묘한 모더니즘 작명법

- 조이스의 기묘한 유언

-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

- 유교 탈레반은 파시즘을 꿈꾸는가? (1), (2)

- 뿌슝빠슝 안아키를 하던 극작가가 있다?!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아일랜드인들의 아름다운 전통이란?

- 본인 오늘 마초 되는 상상함

-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약이 필요한가?

- 냉혹한 남아공의 파시스트

- 모더니스트란 누구인가?

- 그렇다면 모더니즘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공무원

- 오 빅보스 마이 빅보스

- 작가는 권력가를 꿈꾸는가?

- 토끼공듀의 삶

- 오 캡틴 마이 캡틴

- 양키인 내가 대영제국 시민?

-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것은?

- 오늘은... 바람이 소란스럽

- 테에에엥 마망 (ᗒᗣᗕ)՞

-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