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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율리시스 1회독을 끝냈다. 원래는 감상을 주르륵 쓰려고 했으나 다른 갤러들 대부분이 궁금해 하는 점을 위주로 얘기 해보려고 한다. 그러는 편이 알기 쉬우니까.
읽기 어려운가?
-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동 작가의 다른 저작 피네간의 경야,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등등과 더불어 가장 난해한 소설 중 하나로 꼽히는 책이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렵다. 하지만 읽을 수는 있다. 의식의 흐름이라고는 하나 대체로 정리가 나름 되어있고 집중만 하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다. 국문학의 악명 높은 작가 이상보다는 흐름이 알기 쉽다해야하나....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와 비교해서도 대부분의 단어들은 주석으로 설명을 해주니 박상륭의 한자의 압박에 비하면 오히려 율리시스가 읽을 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이는 소설을 읽고 감상한다는 선에서 그칠 때의 얘기이다. 율리시스는 하루 동안 더블린에서 일어난 일들을 몇몇 주인공들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러한 서술은 19세기처럼 잘라내고 필요한 부분만 뽑아낸 편집된 의식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물론 최소한의 편집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알고 있는 여러 정보들, 어릴 적 접했던 각종 노래, 문학, 사회상, 추억 등등의 정보가 무작위로 쏟아져 나오고 이를 모르는 현대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이게 뭐지 싶을 것이다.
다시 말해, 여러분의 율리시스가 보여주는 형식적인 혁명과 그를 통해 묘사하는 심리 소설을 극단을 보고 싶은 거라면 율리시스는 그럭저럭 읽을 만한 소설이 되겠지만 각 인물들이 보여주는 의식이 정확하게 어떻게 흐르는지 알고 싶고 생각 간의 연결고리를 찾고 싶은 거라면 그 난이도는 끝없이 높아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율리시스 독해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이 때 드러난다고 본다. 주석을 참고하면서 기본적인 이해는 갖출 수 있으나 주석에도 한계가 있으니 제대로 파헤치고자 한다면 각 잡고 공부를 해야할 것이다. 물론 꼭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율리시스 독해의 어려움은 소설 내적인 부분도 있으나 외적인 부분도 상당수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역자인 김종건 교수는 원문의 형태와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 주석을 뒤로 밀었는데 이게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알다시피 율리시스의 분량은 상당한 편인데 주석이 나올 때마다 왔다 갔다 하다보면 흐름이 끊기는 것은 물론 그 무수한 종이들을 넘기느라 힘이 들기도 한다. 거기다 주석이 연속해서 나오게 되면 왔다 갔다 하는데 읽다가 지쳐서 더 이상 진행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다음으로 번역이 그다지 부드러운 편이 아니다. 중간 중간 비문이 등장하는가 하면 아예 한 단어애서 글자 몇 개가 생략되어 등장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직역을 선호하는 편이나 기본적인 올바른 문장을 써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한 페이지에서 나오는 글자 수의 압박이 엄청나다. 대충 비율로 따져보았을 때 글자 수가 그렇게 빡빡한 열린책들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지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는 게 고역이 아닐 수가 없다. 소설의 전체 분량은 650페이지 가량인데 실 분량은 앞서 읽은 <안나 카레니나>의 1.5배는 되는 듯하다.
율리시스는 명성에 비해 그다지 무서운 책은 아니다. 이걸 읽는다가 크툴루가 강림하고 뇌가 폭발하고 그런 일은 없다. 집중하면 금방 읽을 수 있다(뭐 사실 어느 정도 독서에 익숙해진 독붕이들 기준이긴 하지만). 다만, 영어가 되는 독자라면 원문을 읽으면서 김종건 교수 번역본 뒤의 주석을 참고하면서 읽기를 바란다. 아마 그 편이 훨씬 편할 것이다. 아니라 해도 어문학사의 율리시스만으로도 충분은 하지만 여러모로 힘이 들 것이다.
재미있는가?
- 율리시스에 도전하려는 마음을 가진 갤러들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율리시스는 재미있지 않다. 난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만은 이건 내 얘기일 뿐이고 만일 말초적인 재미로 읽고 싶은 거라면 다른 소설을 찾길 바란다. 율리시스는 철저히 소설사의 업적, 작품 내의 각종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만 읽는 재미가 생기는 소설이다.
율리시스는 총 3부, 18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전개는 그리스 서사시인 <오뒷세이아>를 은유적으로 따라간다. 각 장은 조이스가 선택한 특정한 서설 방식으로 쓰여 있고 그에 따라 문체, 외부 사건의 서술, 내면 심리의 묘사가 계속해서 변화한다. 예를 들어 마지막 장인 18장은 외부 사건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블룸의 아내의 의식의 흐름만을 마침표 없이 연속되는 텍스트를 통해 담는다.
반면, 초반부 장들은 일반적인 소설과 더 가깝게 스티븐의 눈에 비친 각종 사건들과 그의 의식을 교차 서술하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 장을 거듭할 때마다 변화하는 문체, 의식의 흐름의 자유로운 사용 등이 율리시스의 특징이며 여기에 보통 생각할 만한 소설의 말초적인 재미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만일 여러분이 율리시스의 특성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에게는 한 인간의 재미없는 일상 일기일 것이다.
꼭 읽어야 하는가?
-여기까지 오면 율리시스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가학적인 취미를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어려운데다가 재미(일반적인 의미로)까지 없다니. 과연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정리하자면 이렇다. 읽기 싫으면 읽지 마라. 그러나 소설사 전체에서 중요한 소설 몇 가지만 읽고자 한다면 율리시스는 무조건 짚고 넘어가야한다.
율리시스는 언뜻 보기엔 정신병자의 일기에 불과해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이 등장한 그 시기에 맞춰 소설사 전체를 조망하는 위치에서 내려다보면 율리시스가 얼마나 환하게 빛나는지, 얼마나 뛰어난 소설인지가 보일 것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이 뒤바뀌는 그 한가운데 서서 새로운 세대의 소설이 탄생할 길을 열은 것이 바로 조이스의 율리시스이다.
율리시스는 모더니즘 문학으로 분류되나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모더니즘의 의미와 다르게 본질적으로는 고전적인 양식의 소설이다. 주인공 스티븐과 블룸은 다른 어디도 아닌 명확한 더블린에 고정되어 존재한다. 이 더블린은 작가의 상상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진짜 더블린 시이다. 오죽하면 매년 6월 조이스를 기념하는 블룸스데이에 더블린 시내 걷기 행사가 있겠는가.
율리시스에 등장하는 각종 인물들은 실제 인물들을 모티브로 했는가하면 아예 실존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마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처럼 말이다. 소설 내에서는 개연성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특정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언제나 복선이 존재한다. 단지 이러한 요소들이 알아보기가 조금 힘들 뿐이다. 율리시스는 이전 소설과 완전히 동떨어진 외부자가 아니다. 오히려 조이스는 카프카, 브로흐 보다는 좀 더 바로 전 세대 소설들의 규칙을 잘 지켰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쓰면서 자신의 독특한 서술 방식을 더했다. 의식의 흐름이다. 기존의 소설들은 등장인물들의 단편적인 심리를 나타냈고 이를 통해 소설을 전개해 나갔다. 스탕달처럼 대놓고 산문 형태로 심리를 드러내는가 하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아예 철학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인물의 내면을 추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심리 묘사의 극단 중 하나가 바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등장한다. 바로 과거 회상에 따른 의식의 흐름이다.
프루스트는 과거를 떠올리며 각종 단편적인 기억들이 뒤섞이는 과정을 따라 서술했다. 그리고 이에 조금 더 나아간 것이 바로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현재의 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플로베르가 일상 속에 사건을 녹여냈다면 조이스는 일상 속에 거대한 의식이 녹아든 것을 다시 꺼내 우리에게 보여준다. 과거의 기억은 어느 정도 고정된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현재는 아니다.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각종 현재의 흐름을 조이스는 포착해내고 서술해냈다. 단순한 행동을 귀결되는 하루의 일과를 조이스는 끝없이 추적하여 더욱 현실에 가깝게 묘사하였다.
조이스의 소설은 처음보면 이게 뭐지 싶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모든 문장들이 우리가 길 위를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 빠르게 등장했다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평소에 생각치 못한 의식 이면의 이면. 모두가 톨스토이에 안주할 때 조이스는 그 너머를 그려낸 것이다(가장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후배 중 하나가 아닌가?).
율리시스를 읽으면서 이 소설이 처음 등장했을 때 동시대의 소설가들이 느꼈을 충격과 허탈함이 어땠을까를 생각한다. 자신들이 기존의 쓰던 방식의 끝을 보여준 소설이 등장했는데 더 이상 무엇을 쓸 수 있겠는가. 이후 시대의 변화와 맞물려 카프카를 통해 새로운 소설 시대가 열리긴 하나 이는 좀 더 후의 이야기이다.
정리를 하자면 율리시스는 어렵고 말초적으로 재미없다. 그러나 이렇게 대단하고 뛰어난 양식을 보여준 소설을 자극적인 재미가 없다고 피한다는 것은 독붕이로서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추석 연휴 동안 평소 스스로의 삶을 떠올리며 조이스가 그려내는 방대한 인간 의식의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뭔소린지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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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라이츄라이 후회는 안해요
주딱상 모든 갤럼들이 당신처럼 의식적인흐름을가지고있지않사와요 근데 이상보다는 쉽다니 무슨 소리냐
솔직히 날개보다는 흥미진진했음 ㄹㅇ
이해하기가어렵다
아니 ㄹㅇ 날개보다 잼던디;; 내가 중딩 때 읽은거라서 그런가.
정년퇴직하고 65세쯤 됐을때 읽어보고 싶다
흥미가 솟아 오르는걸? 나는 주석 휴대폰으로 찍어서 봐야겠다. 왔다갔다는 싫어. 흐름도 끊기고 - dc App
제일 좋은건 원문 주석 따로 펼쳐두고 보는거일 듯. 아예 주석을 따로 출판해줬으면 좋을텐데 그렇게는 잘 안되니....
요약) 율리시스는 어렵고 재미없다
ㅋㅋㅋㅋㅋㅋㅋ
이 리뷰로 인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독붕이들이 고통받을꼬.. ㅋㅋ - dc App
올해는 꼭 읽는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