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다이어트 할 때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누구는 다이어트 할 때 입터질까봐 먹방을 안 보고,
욕망이 배가되냐 해소되냐는 어떤 원리에 의한 차이인 걸까?
스피노자 읽었을 때엔 욕망을 품는 사람들이
욕망을 수동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능동적으로 욕망을 이해해야 하며
즉 참여에 앞선 관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표상상이라는 외부요인이 작용하고자 할 때에 존재 유지 측면에서 타당한 관념으로 살펴보아야 함*
쇼펜하우어를 읽다보니까 의지가 곧 세계이고
그런 세계인 의지를 개별화의 원리로(욕망의 개인화)
접근하여, 같은 표상임에도 누군가는 욕망이
해소(현상으로 인식)되고, 누군가는 배가되는 거라고 함
*의지는 본래 있는 것이고, 증폭되는 게 아니라
세계의 것을 개인화하고 고착화하는 것임*
니체는 이런 쇼펜하우어의 기틀에서
의지의 내적 본질인 힘으로서 욕망을 긍정함
*니체가 말하는 욕망의 정의는 아직 배우고 있는 중임*
최근 나는 표상상을 표상함으로써 욕망을 느끼고 갈망하는 게 하등한 것이고, 명석판명한 의식이나 타당한 관념으로
욕망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해소하는 게 고등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욕망을 아주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수동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내가 안주하는 약자이고, 그들이 강자인 것은 아닐지 싶은 생각에 잠겼음
가령 고가 시계는 그 자체로 욕망과 무관하나, 개인(나)의 구매욕(내적)과 구매(외적)가 결합될 때 배가/해소의 대상이 되며, 그 대상이 강자(지적 호기심, 아름다움에 대한 매료)인가 약자(외모 콤플렉스, 가난을 대체하는 외적 이미지, 성공의 모방)이냐에 따라 나뉠 뿐 일률적인 기준은 없다는 사실이며, *상기 강자/약자는 예시로서 도덕 판단과는 무관함*
즉, 욕망의 배가/해소는 이분법적인 게 아니라...
예를 들면 다이어트 할 때 먹방을 보는 게 맞다, 보지 않는 게 맞다가 아닌, 행위 자체와는 무관하며 결국 의지가 주어진 대상의 인식 방식에 달림
고로... a(대상)를 욕망하는 건 어떤가요? 라는 질문에
b 해야 합니다, c 해야 합니다라는 답변은 무용한 것이며
A(대상의 이해)에 달려있습니다 라는 식으로 귀결됨을 느낌
*무엇을 욕망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왜 욕망하는가?*
현상은 평가될 수 없고 개인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은 현상의 객관과 실재에 의해서만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우리는 A를 볼 수 없고, b와 c라는 행위만을 짚으며
a를 감각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과업이 b, c 속에 숨으려는 우리를 끄집어내는 성찰에 있는 듯
적고보니 너무 당연한 소리인데 책 읽으면서 느끼니까
뭔가 새롭네 그냥 물질적 욕망을 아주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요즘 만연했는데 반성하다가 적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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