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튈로스는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고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대화편이다. 아래는 몇 가지 사심을 담아 애정하는 부분을 인용했다.
398a~
소크라테스: 그가 ‘황금 족’이라 말함은 황금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다 훌륭하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는 것일세. 내게 있어서 그 증거는 그가 우리를 ‘쇠 종족([to] sydéroun genos)’이라 말한다는 사실이야.
헤르모게네스: 선생님께서는 진실을 말씀하십니다.
소크라테스: 따라서 그는, 오늘날의 사람들 중에서도 누군가가 훌륭하다면, 그를 그 황금 족에 속하는 걸로 말할 것이라고 자네는 생각지 않는가?
헤르모게네스: 어쨌든 그럴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한데, 훌륭한 사람들(hoi agathoi)은 다름 아닌 지혜로운 분들(hoi phronimoi)이겠지?
헤르모게네스: 지혜로운 분들이시죠.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내게 그리 생각되듯, 이는 무엇보다도 ‘daimones(다이몬들)’을 말하네. 이들은 지혜롭고 ‘아는 자들(daemones)’이었기에, 이들을 헤시오도스가 ‘daimones(다이몬들)’이라 일컬었네. 그리고 옛날의 우리(아티케) 방언에도 이 낱말이 확실히 있네. 정말이지 이 시인도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많은 시인들도 훌륭히 말하고 있네. 이런 말을 하는 하고많은 시인들 말일세. 누군가가 훌륭한 사람으로서 죽게 될 땐, 위대한 운명과 명예를 누리다가 지혜의 덕택에 ‘다이몬(daimōn)’이 된다고. 그래서 나 또한 이런 식으로 훌륭한 모든 사람을 살아서도 죽어서도 거룩한(daimonion: 신과 같은) 이로 보아, ‘다이몬’으로 불리는 것이 옳다고 여기네.
헤르모게네스: 저 또한 선생님과 함께 이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그렇지만 ‘영웅(hērōs)’은 무엇일까요?
소크라테스: 그건 그다지 이해하기 어려운 게 아닐세. 왜냐하면 이들 이름을 약간 바꾸게 된 것이어서, 사랑(erōs)에서의 출생을 나타내네.
헤르모게네스: 어떻게 하시는 말씀인지?
소크라테스: 자네는 영웅들이 반신반인들(hēmitheoi)이라는 걸 모르는가?
헤르모게네스: 그래서요?
소크라테스: 그들 모두는 신과 죽게 마련인 여자의 또는 죽게 마련인 자와 여신의 사랑함으로 해서 태어난 게 틀림없네. 따라서 이 또한 아티케의 옛날 방언에 따라 고찰하면, 더 잘 알 걸세. 왜냐하면 ‘erōs(사랑)’라는 명사와 비교해서, 이로부터 ‘hērōes(드물게 단축은 hērōs: 영웅들; 단수도 hērōs)’가 생겼으니, 조금 변형된 것이라는 걸 자네에게 설명해 주고 있어서네. 그러므로 이는 그들을 영웅들로 말하고 있네. 또는 그들은 지혜로운 이들이었으며 유능한 변론가들(rhētores)과 변증가들(dialektikoi) 그리고 질문함(erōtan)에 능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네. ‘eirein(말함)’은 ‘legein(말함)’이니까. 따라서 방금 우리가 말했듯, 아티케 방언에서는 ‘영웅들(hērōes)’은 변론가들(rhētores)이며 ‘질문에 능한 자들(erōtētikoi)’이어서, ‘영웅 족(to erōtikon phylon)’은 변론가들과 현자들의 부류로 되네. 그러나 이를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인간들의 종족(인류: to anthrōpōn phylon)을 도대체 왜 ‘anthrōpoi(사람들)’로 일컫는지를 이해하기는 더욱 어렵네.
399d~
소크라테스: 자네는 ‘혼’이 합당하게 이 이름을 갖게 된 것인지 검토하고, 그다음에 다시 ‘몸’이 그런 것인지 검토하자고 말하고 있는 건가?
헤르모게네스: 네.
소크라테스: 그래서 당장에 말하자면, 혼이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들은 이런 어떤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러니까 이것이 몸에 있게 되었을 때, 그것이 몸에 삶의 원인이 되어, 숨 쉼의 힘을 제공하여 살아 숨 쉬게(anapsykhon) 하나, 살아 숨 쉼의 그림자와 함께 몸은 망가지고 끝장나네. 바로 이로 해서 그들이 이걸 ‘psykhē(혼)’로 일컫게 된 것으로 내게는 생각되네. 그러나 괜찮다면, 잠자코 있게나. 에우티프론과 그의 추종자들에게서 이보다도 더 설득력 있는 걸 목격한 걸로 내게는 생각되니까. 이게 내게 그리 생각되듯, 그들은 이를 경멸하며 조잡스럽다고 생각할 법도 하기 때문이네. 그러니까 이것이 자네에게도 마음에 드는지 보게나.
헤르모게네스: 말씀이나 하세요.
소크라테스: 모든 몸의 본성을, 그러니까 그걸 살아가고 돌아다니게 하는 것으로, 혼 이외의 다른 무엇이 그걸 유지하며 지탱케 하는 것으로 자네에게는 생각되는가?
헤르모게네스: 다른 아무것도 없습니다.
(psykhē(혼)에는 ‘숨(breath)’의 뜻도 있다)
408c
-모든 걸(pan) 알-리며 언제나 떠도는 자는 염소몰이 판일 것이니.-
좀 뜬금없지만 코스믹 호러의 아버지 아서 매켄이 쓴 <위대한 신, 판>이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재미로 읽어보자.
아서 매켄 <위대한 신, 판>
<<그 중요한 순간에 하찮아 보이는 생각이 내가 이미 골백번은 가 본 익숙한 실과 궤도 위에 이어지더니 어마어마한 진리가 나를 덮쳤지. 그러고는 치밀하게 구획된 세계 전체, 미지의 영역이 내 시야에 펼쳐졌어.
대륙과 섬들 그리고 어떤 배도 항해하지 못한 대양, 인류가 처음으로 눈을 뜬 뒤 접했을 법한 태양과 하늘의 별들, 발밑의 고요한 대지가 눈앞에 펼쳐진 걸세.
가령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전신선과 케이블로 꽤 잘 둘러싸여 있지.
생각의 속도에는 못 미치지만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북에서 남으로 사막지대와 바다를 가로질러 신호를 보낸다네.
오늘날 어느 전기 기술자가 불현듯 여태껏 자기와 동료들이 세상의 토대라고 여겼던 것들이 알고 보니 애들이 갖고 노는 조약돌에 불과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가정해 보게나. 그리고 그런 사람의 눈앞에 전류의 힘으로 최극단의 공간이 펼쳐진다고 가정해 보게. 그러면 인간의 언어는 순식간에 태양을 향해, 태양 너머의 전 우주계에 전달되고, 또렷이 발음하는 인간의 목소리는 우리의 생각을 반향하는 허공 안에서 황량하게 메아리치겠지.
이제 자네도 내가 어느 날 저녁 여기에 서서 느꼈던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걸세. 어느 여름날 저녁이었지. 저 골짜기는 지금과 똑같은 모습이었어. 나는 여기에 선 채로 두 세계, 즉 물질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 사이에서 형언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어떤 심오한 만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봤다네. 내 앞에 깊게 뻗어 있는 거대하고 텅 빈 공간이 펼쳐졌지. 그리고 그 순간, 빛으로 이루어진 다리가 육지에서 미지의 해안가로 퍼져 나가면서 심연과 이어지더군. >>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주는 휴주입니다.
말이 휴주지 향연을 2주로 나눠서 하는 것이므로
4월 5일까지 향연을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민주 보고가세요.
'크라튈로스'는 자연주의와 규약주의라는 두 상반된 입장을 보여주지만, 이는 실은 두 가지 극단주의입니다 플라톤은 여기서 극단성의 가지를 쳐내고 온건한 입장을 남기고 있습니다 예로, 헤르모게네스의 입장은 언어의 사회성마저 무시하는데,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언어의 도구적 기능을 강조하며 이 부분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개되는 언어의 '구분짓기'라는 기능이 저에겐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한편, 크라튈로스의 입장은 거짓을 말하는 것까지 배제해버리는데, 소크라테스는 오류의 가능성과 규약주의와의 타협을 통해 그의 극단주의를 거부합니다 (비록 소크라테스가 흐름과 움직임을 논의에 굉장히 많이 써먹었지만) 이 과정에서 그의 헤라클레이토스주의적 입장에 대항하는 이데아론을 소개하는 점이 굉장히 흥미진진했습니다
여기서 또 재밌는 점은, 우리는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해 '판타 레이' 운운하며 그가 변화를 강조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그러한 변화나 현상 기저에 위치하는 로고스를 중시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헤라클레이토스 세계관의 거대한 확장을 기획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것과 별개로 이 대화편 분량의 대부분은 어원에 대한 연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적으로 농담조가 강하고 방법론적 엄밀함이 부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부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윤리적 함축을 갖는 이름들에 대한 고찰이 있던 부분에서는 플라톤 철학에서 그러한 관념어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시금 은유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무르망 또한 최초의 이름들에 대한 고찰은 '뤼시스'에서의 첫째 친구 논변을 떠올리기도 했고, 자모를 분석하는 부분은 '부바키키 효과'를 고려해보면 그렇게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언어철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약간 부담이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전반적으로 초기 이데아론에 대한 알레고리로 느껴져서 재밌는 독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