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에 올라온 햄릿 번역 문제에 대한 논의를 보면
이 이슈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엇갈리는지 잘 보인다고 생각해서 그 해석에 대해서 생각해 봤음
그 글의 댓글을 보면
영국인들이 이 대사를 봐도 죽느냐 사느냐로 이해한다는 댓글이 있는데 틀린말은 아님
하지만 그게 팩트라서 존재 비존재를 들먹이는 번역이 잘못됐다도 팩트가 되는 것은 아님
왜?
한국어를 읽는 독자가
존재 비존재라는 번역의 문장에서도 화자가 죽음과 삶을 이슈로 하고 있다는 걸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임
그게 꽤 철학적이고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그건 비평가의 언어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해선 안되는 소리라는데
그 말은 왜 live 와 die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셰익스피어에게 따져야 되는 문제임
굳이 그 말을 사용하면서 가져간 의미의 층위를 부정하는 것이야 말로 명백하게 잘못된 생각인 것임
그게 존재 비존재여야 하냐는 또 다른 문제지만 일단은 그 지적의 방향이 삶 죽음에서 벗어낫단 지적은 명백히 잘못된 것임
영어 사용자들도 to be의 문장에서 한국 독자와 똑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는 이질적인 표현인 것임
죽음에 대한 말이라는 걸 이해하지만 동시에 얘는 왜 말을 이런식으로 하지? 가 계속 지연되는 햄릿의 사고와 연결이 되면서
햄릿이 우유부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요소인 것이고 그게 작가의 의도인데 그걸 부정하는 거잖아
작가는 그 딜레마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를 바라고 불편한 무언가를 느끼기를 바라고
결국 그 문장 자체가 패러독스라는 걸 밝히는게 애초의 의도인 것임
그리고 이 딜레마는 현대인에겐 좀 더 익숙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편견 때문에 이해가 어려운 것임
애초에 life와 death는 엄밀히 따지면 공평하게 양자 택일이 가능한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음
우리 중 그 누구도 애초에 삶의 시작을 선택한 적이 없고 그 누구도 영원히 자기 의지로 삶을 선택할 수 없음
말하자면 모두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왔고 자아를 의식하기 전부터 알아서 살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최초의 기억은 삶에 대한 선택이 아님
이 구도에서 우리가 선택으로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행동의 결과는 죽음뿐이고 삶에 대한 선택은 그 죽음의 유예로서 남은 것으로서의 삶 뿐인거지
이건 쓸데없는 말장난이 아니고 모두가 겪어봤고 겪고 있는 가장 익숙하고도 심각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임
고기와 빵이 명을 단축 시킨다는데 밀가루가 없는 삶이 무슨 의미?
술,담배가 명백히 인간을 병들게 하지만 그거 없이 무슨 재미로 살까?
덕질할 시간과 돈으로 수신하면 제가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나는 잘못된 나라에 태어났다
게임을 안하면 사람 구실하고 살 수 있겠지만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나 보다
사랑으로 겪는 고통을 너무 잘 알아도 매번 너무 빠르고 쉽게 단단히 사랑에 빠지곤 하는게 인간이니까
물론 이런건 익숙한 현대적인 혹은 디시적인 고민이고 햄릿의 그것은 좀 다른 내용이지만
그런 맥락의 딜레마가 햄릿이 논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거임
서사적으로 구조가 그렇게 짜여져 있음
일단 큰 줄기로서 햄릿의 관점에서 to be or not to be 의 딜레마에서 앞으로 나아가는게 서사고
그 딜레마에 대해서 lose the name of action 의 문제라고 부연하지만 결국 확고한 신념으로 나서지 못하고 오필리어에게 대속을 부탁하고 완벽할 수 없는 결과를 향해서 가고
결국 그 선택의 결과를 햄릿 스스로 일컫길 'the rest is silence'라고 선언하고 맺잖아
그건 결국 to be or not to be가 이분법의 층위를 목적으로 사용한 언어가 아니란 말임
not to be는 부존재여서 죽음을 암시했고 햄릿은 그 암시대로 죽는 순간을 맞았지만 그 silence가 empty가 아니라 the rest 라는거임
그 시작과 끝만 그렇게 연결이 된 것이 아니고
이 딜레마의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반대쪽 사람들 즉 to be 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셰익스피어가 묘사하는 것도 그 맥락 위에 있는 것임
Frailty, thy name is woman 이게 재혼한 여왕 거트루드에 대한 햄릿의 진술인데
woman은 거트루드가 잃지 않은 이름이란 말이고 그걸 잃지 않는게 중요한 건 아니고
이름을 잃지 않았지만 그 이름의 속성은 Frailty 라는 것이고 그것이 거트루드에게 주어진 이름의 무게며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하기 어려운 입장에 대한 이해인 것임
물론 전적인 이해라기 보다 이유야 있지만 어머니 당신의 사랑은 당신 자신의 삶과 그것을 함께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군요 애초에 모든 것은 당신에게 주어진 삶일 뿐이구나 하는 체념인 셈인거지
다만 이 부분으로 여성혐오적이다라는 잣대를 대기도 하는데 그 기준은 내가 정하고 싶지도 않으니 말 보태고 싶진 않다만
단지 셰익스피어는 the name이란 주어진 본질이 항상 옳고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이고 여성에게 주어진 그 시대의 이름이 그 쯤에 있었던 것 뿐이지
또 그 수동적인 태도에 대한 강요를 수용하는 입장에선 frailty가 달콤한 name이니 더 거부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걸 강조해주는 것이지만 햄릿의 어머니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원망일 뿐
객관적으로 보면 그냥 그냥 주어진대로 사는 다른 캐릭터들 처럼 주변인일 뿐이고 그들처럼 그저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라면 모를까..
근데 그 인간의 사용됨이 그 시절의 현실이고 그 수동적인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보기에
거트루드는 맥베스에서 능동적으로 악행을 도모하는 레이디만큼이나 현실적이라고 생각함
또한 to be의 딜레마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죽음 뿐이고 나머지는 결국 그것의 유예일 뿐이다라는 맥락에서
그 거트루드가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녀가 망각이라는 축소된 죽음 속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며 그것은 남녀의 구분이 의미가 없는 것이고
이건 다른 작품인 멕베스 와의 연결에서 비로소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의미긴 하지만
어쨌든 클라우디우스의 대사에서는 좀 더 독립적이고 그 능동적인 남성적인 본질 즉 좀 더 실존적인 모습 또한 to be의 딜레마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게 드러남
물론 이 부분이 작가의 바람이고 작위라는 건 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음 뭐 인간에 대한 기대라거나 종교에 대한 필요의 역설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암튼 그가 회개하고 싶어하면서 기도를 하려다가 독백하는 장면인데
“Forgive me my foul murder”?
That cannot be, since I am still possessed
Of those effects for which I did the murder:
My crown, mine own ambition, and my queen.
May one be pardoned and retain th’ offense?
In the corrupted currents of this world,
Offense’s gilded hand may shove by justice,
And oft ’tis seen the wicked prize itself
Buys out the law.
나의 살인을 용서 받을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묻고 그럴 수 없다(cannot be)는 대답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살인 자체가 큰 죄라서가 아니라 그 죄의 결과를 소유했기에 그 죄를 기억하고 있어서 불가능하다는 것임
물론 그 말은 스스로는 그것을 잊으면 된다는 것이지만
지상의 법은 죄를 속일 수 있고 그것으로 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하늘에서도 법이 기다리고 있고 그걸 알고 잊지 않는 절대적인 타자가 존재하는게 문제라는 거지
But ’tis not so above:
There is no shuffling; there the action lies
In his true nature, and we ourselves compelled,
Even to the teeth and forehead of our faults,
To give in evidence. What then? What rests?
Try what repentance can. What can it not?
Yet what can it, when one cannot repent?
O wretched state! O bosom black as death!
O limèd soul, that, struggling to be free,
Art more engaged!
회개를 하면 되긴 하는데 그냥 죄를 면하고 싶은 마음이 회개일 수는 없다는 당연한 말을 하면서
to be 에 생략된 목적어로 죄를 인식하고 뉘우치는 죄인을 넣는게 먼저고 거기에 도달할 수 없기에 그 다음 회개도 cannot be라는 것이지
왕위를 찬탈하고 난 다음의 그의 면죄라는 욕구의 관점에서 to be에 실패하고 what then? what rests?라고 물으면서
애초에 자신의 왕좌라는 욕구에 대한 to be 마저도 limed soul 이라는 한마디로 멕베스의 공허한 인생이 떠오르면서
목적을 이룬 아직도 struggling to be free 하기 위해서 다른 무언가에 또 빠져들어야하는 상황에서 애초에 이 딜레마가 가진 패러독스가 드러나는 것임
My words fly up, my thoughts remain below;
Words without thoughts never to heaven go.
그리고 햄릿이 자신과 클라우디우스의 죽음을 유예하면서 떠나자 마지막으로 클라우디우스가 하는 대사인데
the rest is silence 에 대한 부연이 되는 것임
혼자 숨어서 독백하며 거짓된 회개로 날아갔다던 그 말을 현실에서도 날려 보냈고 그 공백은 하늘로 사람을 이어 줄 새로운 말 with 생각이자 거짓되지 않은 액션과 그것을 판단하는 법을 위한 제반 조건인 셈이지
말하자면 햄릿을 위한 완벽한 결과에 도달한 것이 아니고 그 상황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마지막에 모두가 처벌받았다라고 말하는 상황과 같고 거기에 도달해서 돌이켜 보면
뭐가 잘못됐고 뭐가 필요했던 것인지 모두가 아는 명백한 것이라는 말임
그것은 또 위정자만의 책임도 아니고
말하자면 권력의 정점에 선 자 조차 신이 아니란 말이고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건 죽음의 유예뿐이고 그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은 무언가 진정으로 되고 싶은 것이 되는 것일진데
근데 이걸 보는 사람들은 머리속에서 모두가 왕을 꿈꾸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공감하더라도 너는 왕이 아니고 그 왕도 신이 아니라 그 프레임 속에서는 결국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
결론은
셰익스피어의 의도는 to be와 not to be 의 대조에서 직관적으로 삶과 죽음을 떠올리더라도
숨겨진 주어와 목적어들이 드러나고 그 딜레마는 애초에 패러독스였고 우리가 그 사이에서 하는 선택으로 보이는 형태는 결국 죽음과 죽음의 유예 뿐이다라는 관점으로 바뀌면서
결국 햄릿의 to be 는 그 죽음을 자체의 목적으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가 선택한 죽음처럼 보일 뿐인 것이지
햄릿이 그 스스로의 말로 "The readiness is all" "the rest is silence" 라고 명확하게 'to be 무엇' 이 삶이지만 그 무엇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하며
햄릿의 경우에는 그게 불행히도 readiness for silence 였노라고 말하며 그것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선택이 아니었단 말을 하는 것임
물론 그건 햄릿이 숭고하고 특별한 영웅이자 순교자가 아니라 필요한게 부족한 세상에 반드시 존재하는 선을 벗어나 탈선하는 자들에 대한 이해고 그 스스로도 행복하지 않았고 최선이 아니었으나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현실 속에도 사람이 있다는 말이라고 생각함
기냐 아니냐 그기 문제인기라
나는 셰익스피어는 당장의 공연을 위해 관객석까지 말해지고 들리는 말의 힘을 중요시했기에 쓰여진 글의 구조로 해석하는건 그리 중요치않다고 했던 괴테의 해석을 따르겠습니노
너 누구냐 햄릿이냐? 셰익스피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