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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는 예전부터 국문학 추천 리스트를 보면 높은 확률로 포함되어 있는 작가였고, 그 중에서도 높은 비율로 추천되던 작품이라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다. 온라인 뿐만 아니라 현직 소설가분도 나에게 추천하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홀린듯이 사놨었는데 이제서야 완독하게 되었다.
작품 전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야기의 구성이었다.
소설은 서술자인 ‘나’ 가 소설가 ‘박부길’의 생애를 조명하는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있는 삶의 흔적들을 추적하는 구성을 주로 하고 있는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설 속 소설, 산문, 인터뷰를 통해서 흩어져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궁극적으로 박부길이라는 사람이 살아온 삶을 재구성? 하는 게 흥미로웠던 것 같다.
초반부인 ‘그를 이해하기 위하여’ 와 ‘연보를 완성하기 위하여 1’ 은 정말 순식간에 읽었다. 박부길의 유년시절부터 중학생까지를 다루고 있는 파트인데, 서술자가 한번 다듬고, 중간중간 성인이 된 현재의 박부길이 악간의 말들을 덧붙인 식의 글과 내용인데도, 3인칭 관찰자 시점보다는 1인칭같은, 씁쓸하고 무거운 수필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승우 작가의 문체가 산문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에 더 그랬다.
박부길의 유년시절은 정말 어둡기 그지없는데, 진짜 너무 암울해서책을 읽으며 그의 상황에 몰입하고 마치 나 자신이 그가 된 것처럼 격정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냥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에게 아버지는 없는 존재나 다름 없었다. 분명히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었지만, 신기루처럼 금세 사라지는 존재였다.
주변 사람들한테 아버지에 대한 것들을 물어봐도 돌아오는 말은 ‘고시 공부를 하러 갔다’ 라는 말이나, 말 없이 안타깝게 쳐다보는 시선 뿐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건네준 손톱깎이로 손목을 긋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안에서 무성한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아버지가, 이토록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것도 자신이 건넨 손톱깎이 하나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모습을 보며, 애써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의 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 또한 안 좋은 소문만을 남기고 홀연히 그의 곁을 떠나버린다. 그 당시 기껏해야 중학생이었던 박부길에게, 이러한 고통은 너무나 거대하고 또 힘겨운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작품에서, 또 그의 삶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외로움은, 아마 이때부터 시작된 것 아닐까 한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박부길은 너무 일찍이 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받아들였고, 하필 몸에 너무 딱 들어맞아버린 것이다.
그가 나고 자랐던 고향은 그 자신에게 금지되고, 또 저주받은 곳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아버지의 무덤을 불태우고 새로운 곳으로 떠남으로써, 혹여나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올 일이 없도록 하고, 고시 공부를 한다는 아버지의 어렴풋한 환상만을 가지고 떠난다.
무덤을 불태워 그가 봤던 아버지의 추한 모습은 지워버리고, 자신에게 좋은 방향으로 기억되게끔 말이다.
추한 꼴이 아버지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의 상상 속에서 아버지는 신화적 모습으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지상의 양식’ 과 ‘낯익은 결말’ 은 작품의 초반부와는 다르게 박부길이 썼던 여러 편의 작품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더 읽기 어려워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수필과 비슷했기 때문에 마음에 직접적으로 와닿았던 초반부와는 다르게 ‘소설’ 의 느낌이 강해저 이입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박부길은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삶을 시작한다.
그의 삶을 지탱해주던 외로움은 점점 커져 자신만의 세계 속에 박부길을 가둬두기에 이르렀다. 이 세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세계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다른 세계 사람이라 단정짓고, 철저히 외면한다. 그는 자신이 바깥 세계로 나간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면서도, 바깥 세계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길 원한다.
그도 결국 인간이기에 외로움을 견디는 데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가 자신과 비슷한 세계에 사는 사람을 찾아다닐 때마다, 안과 바깥의 세계의 괴리감은 점점 더 벌어져 다시 한번 몸을 숨기게, 자신이 살던 세계 속으로 도망치게 만든다. 박부길은 고향을 떠난 후 배달과 같은 일들을 전전하며 빛 하나 들지 않는 방 한켠에서 지낸다.
이곳이 바로 그의 세계다. 어둠 속에서 그는 외로움을 몸에 두르고, 편안함 속으로 점차 빠져든다.
소설 속에서는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 가 여러 번 언급되는데, 박부길이야말로 이 지하인에 딱 맞는 인물이다.
피나는 노력 끝에 박부길은 자신이 사는 세계와 어느정도 비슷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종단’ 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급기야 박부길은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 ‘목사가 되겠다’ 라는 말로 사실상의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너무나 기뻐서였을까? 박부길은 일반적인 관계를 넘어 자신의 마음 속에서 종단을 신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맹목적인 숭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인다.
종단 또한 자신과 비슷한 부류인 부길에게 호감을 느끼긴 했어도, 일반적인 관계 내에서의 호감이었다.
위의 목사가 되겠다는 부길의 말 또한, 종단이 자신은 신실한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한 것이었다.
어쩌면 부길이 자신보다 연상인 종단에게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것이 자신을 뒤로하고 떠나버린 어머니 (반강제적이었긴 하지만) 에 대한 위안? 결핍 같은 것들을 종단이 채워주길 바랬기에 행한 것이라고도 느껴진다. 위의 아버지의 죽음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오이디푸스적 면모가 은근 있다.
자신이 쌓아올린 종단이라는 존재의 완벽함에 금이 가는 순간, 부길은 다시 외로움을 견디며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한다.
하지만 인간은 본디 완벽하지 못한 존재다. 더군다나 부길 자신조차도 도망치고 현실을 회피해온 인간인데, 둘 사이의 관계가 완벽할리는 만무하다.
결국 자신이 그토록 숭배하던 종단은 허상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산산히 부서지고 깨지며 흩어진 관계는 다시 주워담아 하나로 만들 수 없다.
시간이 지난 후, 부길은 자신만의 세계인 어두컴컴한 방에서 어둠과 손만을 의지한 채 ‘지상의 양식’ 이라는 첫 소설을 쓴다.
미칠듯한 외로움만이 그를 위로해준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진정한 모습, 어머니의 일면, 자신의 욕망과 도피의 흔적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자신의 과거와 어두운 일면을 감추기 위해 소설을 썼지만, 여러 겹으로 칠해진 그의 소설 가장 밑바닥에는 그가 미처 숨기지 못했던, 혹은 외로움과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놔두었던, 처절한 발악으로 남겨진 그의 진정한 모습들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곧 그의 생의 이면들로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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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는 작품이었습니다. 역시 독갤 선생님들이 추천하는 데는 이유가 있네요. 전체적으로 크게 흠잡을데는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후반부, 결말이 약간 힘이 빠지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결함 많고 반사회적인 사람인 박부길이, 지금에 와서는 어떻게 허허 웃으며 ‘그땐 그랬지’ 식으로 넘길 수 있는지 좀 의아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흡입력 하나는 좋았어요. 추천드립니다.
갠적으론 결말이 되게 빨리 서술되는 점이 인상 깊었음. 앞에서 유년기를 그렇게 길게 서술해놓고, 정작 성숙이라는 테마엔 제일 중요할지도 모르는 사건들은 훅훅 넘기는게 진짜 인생을 보는 느낌이였어
이렇게 생각하니까 결말이 어느정도 와닿는 부분이 있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