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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위상 –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
문학은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는가
문학은 아무 데도 써먹지 못한다. 그러나 유용한 것은 스스로를 억압한다. 문학은 무용하기에 억압을 파헤치고 공격한다. 인간은 문학으로 무지에서 깨어나고, 억압 없는 삶을 몽상한다. 문학은 그 몽상의 소산이다. 새로운 몽상은 새로운 문학을 낳는다. 우리는 그 문학으로 불가능과 싸워 억압 없는 삶에 다가간다.
그것이 문학의 의의일 뿐이라면 받아들였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저 감탄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저자가 강조한, 이광수가 그리도 확립시키려 했던 문학의 독자성이기에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지 40년이 넘었고, 이제는 20세기가 아닌 21세기에서의 문학을 생각해야 한다.
현대인에겐 글보다 영상매체가 더 친숙하다. 영화, 드라마, 유튜브 영상이 문학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내 마음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책으로 인해 피어난 감동과, 영상매체로 얻은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근원이다. 글의 감동은 상상에서 연유하고, 영상의 감동은 감각에서 연유한다. 나는 그 차이에서 문학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몽상은 써먹지 못하기에 억압받지 않는다. 몽상을 담은 영상물은 몽상을 구체화한다. 실체가 생긴, 더는 몽상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것은 우리의 감각에 억압받는다. 그러나 몽상을 담은 문학은 감각조차 상상하게 한다. 문학은 감각에 억압받지 않기에 억압을 파헤치고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22세기에 이르면, 어쩌면 그것보다 더 이른 때, 지금의 문학을 완전히 대체할 무언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나는 그 전에 문학의 가치가 새로이 드러날 것이라고 믿는다.
문학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면 그건 문학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이상 문학을 찾지 않기 때문이겠지.
한계에 부딪힌다기보다는, 문학의 독자성이 없어지는 것을 말하는 거임. 그렇게 되기 전까진 사람들이 문학을 완전히 찾지 않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봄.
독자성이 없어지는게 한계지 뭐. 사람들이 문학을 안찾는건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인거 같고. 쿤데라가 에세이에서 한 번 했던 말인데 요새 점점 와닿는거 같다.
독자성이 있더라도 한계에 부딪힐 수 있음. 그리고 사람들이 문학을 점점 안 찾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님. 완전히 찾지 않게 되진 않는다는 거지.
글쎄 난 예술이 한계에 부딪힐 일은 없다고 본다. 우리 삶이 매일 똑같다면 모를까 지난 100년 동안 쉼없이 가속하면서 변화해왔는데. 예술에 한계가 있다면 인류가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다? 단순히 포아나 sf 얘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예술가가 없는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움 몰겠다 걍 자러갈래.
무슨 말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나도 졸리다... 잘 자
유용한것이 왜 억압하는지 논거 좀
김현은 현대의 문학이라는 개념은 18세기에 생겼다고 설명함.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는 글쓰는 사람들이란 지배계층의 이념과 도덕을 사회에 확대, 전파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지배계층은 그 대가로 그들을 보호해주고 생존을 책임지는 거지. 프랑스 혁명으로 지배 계층이 무너지자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대두되면서, 지배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되어 무용해진 대신 이데올로기, 정치, 억압을 파헤치고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함.
김현이 이광수를 고평가하는 것은, 한국에서 이전까지 문학은 경전에 불과했는데, 유교를 중심으로 한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억압을 문학으로써 파헤치고 공격하여, 현대의 문학 개념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정립했기 때문임. 물론 그 이후 이광수 본인이 유교, 기독교 등의 이데올로기에 매달리게 되면서 모순이 생겼고, 그게 그의 한계라고 했음.
문학이 억압을 파헤치고 공격하는 것에 대해 김현이 본인의 경험으로 좋은 예시를 든 게 있는데,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기 전에는 통속소설의 성애 장면 등에 의식이 억압되어 있었다가, 그것을 읽은 뒤 진실한, 자기 기만적이지 않은 사랑을 배웠다고 함.
민주주의는 지배이데올로기 없나 누가 반민주주의적인 글 예컨대 국개론 주장하는 작가 어딧다고
그런 의미가 아님. 지배계층의 보호를 받고 생존을 책임 받던 때에는 글쓰는 사람들이 그 정치에 억압받고 있었잖음. 자신의 생존이 달린 건데. 근데 이제는 문학이 그런 쓸모가 없어진 대신 억압받지 않게 됐다는 거지.
이해가 안 된다면, 생각해보셈. 지금은 작가가 민주주의적인 글을 쓰든 반민주주의적인 글을 쓰든 그건 그 작가 맘임. 그러나 그 시대에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글을 쓴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음. 그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는 게 그 직업 자체니까.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 때의 그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 김현의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평론인데 인터넷 검색하면 나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전문을 읽어보는 걸 권함.
하지만 이광수의 문학적인 의의는 작가들에게 문학적인토대보다는 이렇게도 써도 대중들은 환호한다라는 생각밖에 못들게한것같다
이광수가 소세키, 루쉰처럼 뛰어난 문학적 역량을 갖췄다면 좋았을 걸...
문학은 끝까지 독립된 개체로 남아야 할까? 아니면 다른 매체의 힘과 통섭해서 살아남아야 될까?
어느 쪽이 옳냐를 떠나서, 다른 매체와 통섭하면 그건 이미 문학이 아니지 않을까. 내 말은, 미래에는 그것을 문학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은, 적어도 지금 문학의 개념에서는 벗어난 것 같아. 그래도 미래에 문학의 정의가 그렇게 바뀐다면 그게 옳은 거겠지. 18세기 이전의 문학이 지금과 다르듯이. 하지만 그것이 문학과는 별개의 것으로 정의된다면, 그건 문학이 죽은 것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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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단에 신경을 좀 썼는데 알아봐줘서 ㄱㅅㄱㅅ. 김현의 어휘를 빌려와서 제 식으로 짜맞췄는데, 욕심을 못 버려서 "새로운 몽상은 새로운 문학을 낳는다"는 책에 없던 의미의 문장을 끼워넣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