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가서 80년대까지 백석이랑 같이 거의 금기시되었었는데 문학력으로만 보면 확실히 뛰어난 것 같앙
재밌게 읽음 나두
<고독>
땀내 나는
고달픈 사색 그 복판에
소낙비 맞은 허수애비가 그리어졌다
모초리 수염을 꺼리는 허수애비여
주잔은 너의 귀에
풀피리 소리마저 멀어졌나 봐
<꽃가루 속에>
배추꽃 이랑을 노오란 배추꽃 이랑을
숨가쁘게 마구 웃으며 달리는 것은
어디서 네가 나즉히 부르기 때문에
배추꽃 속에 살며시 흩어 놓은 꽃가루 속에
나두야 숨어서 너를 부르고 싶기 때문에
<낡은 집>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거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 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욱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 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다리 위에서>
바람이 거센 밤이면
몇 번이고 꺼지는 네모난 장명등을
궤짝 밟고 서서 몇 번이고 새로 밝힐 때
누나는
별 많은 밤이 되어 무섭다고 했다
국수집 찾아가는 다리 위에서
문득 그리워지는
누나도 나도 어려선 국수집 아이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벌레 우는 가을철
단 하루
아버지의 제삿날만 일을 쉬고
어른처럼 곡을 했다
<도망하는 밤>
바닷바람이 묘지를 지나
무너지다 남은 성(城) 굽이를 돌아 마을을 지나
바닷바람이 어둠을 헤치고 달린다
밤
등잔불들은 졸음 졸음 눈을 감았다
동무야
무엇을 뒤돌아보는가
너의 터전에 비둘기의 단란(團欒)이 질식한 지 오래다
가슴을 치면서 부르짖어 보라
너의 고함은 기울어진 울타리를 멀리 돌아
다시 너의 귓속에서 신음할 뿐
그 다음
너는 식욕의 항의에 거꾸러지고야 만다
기름기 없는 살림을 보지만 말아도
토실토실 살이 찔 것 같다
뼉다구만 남은 마을……
여기서 생활은 가장 평범한 인습이었다
가자,
시원히 떠나가자
흘러가는 젊음을 따라
바람처럼 떠나자
뚝장군의 전설을 가진 조고마한 늪
늪을 지켜 숨줄이 마른 썩달나무에서
이제
늙은 올빼미 흉몽(凶夢)스런 울음을 꾀이려니
마을이 떨다
이 밤이 떨다
어서 지팽이를 옮겨 놓아라
<두만강아 너 우리의 강아>
나는 죄인처럼 수그리고
나는 코끼리처럼 말이 없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너의 언덕을 달리는 찻간에
조고마한 자랑도 자유도 없이 앉았다
아무것두 바라볼 수 없다만
너의 가슴은 얼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안다
다른 한 줄 너의 흐름이 쉬지 않고
바다로 가야 할 곳으로 흘러내리고 있음을
지금
차는 차대로 달리고
바람이 이리처럼 날뛰는 강 건너 벌판엔
나의 젊은 넋이
무엇인가 기다리는 듯 얼어붙은 듯 섰으니
욕된 운명은 밤 우에 밤을 마련할 뿐
잠들지 말라 우리의 강아
오늘밤도
너의 가슴을 밟는 뭇 슬픔이 목마르고
얼음길은 거칠다 길은 멀다
길이 마음의 눈을 덮어줄
검은 날개는 없느냐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북간도로 간다는 강원도치와 마주앉은
나는 울 줄을 몰라 외롭다
<뒷길로 가자>
우러러 받들 수 없는 하늘
검은 하늘이 쏟아져 내린다
온몸을 굽이치는
병든 흐름도 캄캄히 저물어가는데
예서 아는 이를 만나면 숨어 버리지
숨어서 휘정휘정 뒷길을 걸을라치면
지나간 모든 날이 따라오리라
썩은 나무다리 걸쳐 있는 개울까지
개울 건너 또 개울 건너
빠알간 숯불에 비웃이 타는 선술집까지
푸르른 새벽인들 내게 없었을라구
나를 에워싸고
외치며 쓰러지는 수없이 많은 나의 얼굴은
파리한 이마는 입술은 잊어버리고저
나의 해바라기는
무거운 머리를 어느 가슴에 떨어뜨리랴
이제 검은 하늘과 함께
줄기줄기 차거운 비 쏟아져 내릴 것을
네거리는 싫어 네거리는 싫어
히 히 몰래 웃으며 뒷길로 가자
<오랑캐꽃>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고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께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삽살개 짖는 소리
눈포래에 얼어붙는 섣달 그믐
밤이
얄궂은 손을 하도 곱게 흔들길래
술을 마시어 불타는 소원이 이 부두로 왔다
걸어온 길가에 찔레 한 송이 없었대도
나의 아롱범은
자옥자옥 뉘우칠 줄 모른다
어깨에 쌓여도 하얀 눈이 무겁지 않고나
철 없는 누이 고수머릴랑 어루만지며
우라지오의 이야길 캐고 싶던 밤이면
울어머닌
서투른 마우재말도 들려 주셨지
졸음졸음 귀 밝히는 누이 잠들 때꺼정
등불이 깜박 저절로 눈감을 때꺼정
다시 내게로 헤어드는
어머니의 입김이 무지개처럼 어질다
나는 그 모두를 살뜰히 담았으니
어린 기억의 새야 귀성스럽다
거스리지 말고 마음의 은줄에 작은 날개를 털라
드나드는 배 하나 없는 지금
부두에 호젓 선 나는 멧비둘기 아니건만
날고 싶어 날고 싶어
머리에 어슴푸레 그리어진 그곳
우라지오의 바다는 얼음이 두텁다
등대와 나와
서로 속삭일 수 없는 생각에 잠들고
밤은 얄팍한 꿈을 끝없이 꾀인다
가도 오도 못할 우라지오
<절라도 가시내>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 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네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젠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궈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리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절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 줄께
손때 수줍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우리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이 아무 말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하나씩의 별>
무엇을 실었느냐 화물 열차의
검은 문들은 탄탄히 잠겨졌다
바람 속을 달리는 화물 열차의 지붕 위에
우리 제각기 드러누워
한결같이 쳐다보는 하나씩의 별
두만강 저쪽에서 온다는 사람들과
쟈무스에서 온다는 사람들과
험한 땅에서 험한 변 치르고
눈보라치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남도 사람들과
북어쪼가리 초담배 밀가루떡이랑
나눠서 요기하며 내사 서울이 그리워
고향과는 딴 방향으로 흔들려간다
푸르른 바다와 거리 거리를
설움 많은 이민 열차의 흐린 창으로
그저 서러이 내다보던 골짝 골짝을
갈 때와 마찬가지로
헐벗은 채 돌아오는 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헐벗은 나요
나라에 기쁜 일 많아
울지를 못하는 함경도 사내
총을 안고 볼가의 노래를 부르던
슬라브의 늙은 병정은 잠이 들었나
바람 속을 달리는 화물 열차의 지붕 위에
우리 제각기 드러누워
한결같이 쳐다보는 하나씩의 별
이용악도 진짜 특유의 항수 섞인 느낌이 참 좋아
그렇게 안어려우면서 직관적인 감성 + 서정적이라 북으로 가지만 않았어도 국민시인 됐을 것 같어
와 이용악 아시는구나 오랑캐꽃 최고입니다
백석이랑 윤동주 섞어논 삘이남
@ㅇㅇ(106.101) 평안도는 백석 함경도는 이용악임
만주는 윤동주?
@ㅇㅇ(106.101) 윤동주는 본적이 정확히는 함경북도임
김동인이나 김소월도 그렇고 북한사람이 글 잘쓰긴 해
@ㅇㅇ(106.101) 이광수: ㅎㅎ
이용악 좋죠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