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추도사를 보게 되었는데


기깔난다 


고독을 자처해 세상이 자신을 몰라줘서 울분을 느꼈는데 살아있을 때 몇 십권도 책이 안 팔려 망하고 [말년에 물론 스타가 됨]


마지막에 이렇게 인정받고 200년이 지나도 책이 잘 팔려


창고에서 썩어가던 불온서적이 전 세계의 도서관에 꽂히고 고전으로 자리잡아버리네


추도사는 모르는 사람들 많을건데 한번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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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쇼펜하우어는 폐렴 증세가 있었으나 평소대로 일찍 기상하여 쾌활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가정부는 항상 그랬듯이 집안을 환기시키느라 창문을 열어놓고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몇 분쯤 지나서 거실로 들어온 주치의는 소파에 등을 기대앉아 평온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죽어있는 쇼펜하우어를 발견했다. 사망한 이후 9월 26일 프랑크푸르트 묘지에서 쇼펜하우어의 시신이 안장된 무덤 앞에서 거행된 장례식의 참가 인원은 별로 없었으나 그의 열렬한 추종자들이 모였다. 개신교 목사가 장례식을 주관하며 추도문을 낭독했고 이어서 쇼펜하우어의 절친인 유언 집행인 빌헬름 그비너가 준비한 추도문을 엄숙히 낭독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추도사 :


한 세대를 우리 곁에 머물렀으되 끝내 이방인으로 떠난 이 비범한 인물의 관 앞에서는 각별한 감회가 일어난다. 이곳에는 고인의 피를 나눈 혈육이 단 한 명도 서 있지 않다. 평생의 궤적 그대로, 철저히 고독하게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해 앞에서 전해지는 어떤 무언의 울림은, 이 깊은 고독에 대한 보상을 마침내 찾아냈노라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친구도 적도 없이 이토록 처절하게 버려진 채 죽음의 심연으로 내려가는 광경을 목도할 때, 비로소 우리의 눈은 지상의 덧없는 행복을 넘어 존재의 근원을 향해 뜨인다. 생명의 원천을 향한 타오르는 갈증 앞에서 다른 모든 세속의 감정은 침묵할 뿐이다. 영원한 진리를 인식하고자 하는 이 뜨거운 갈망은 대다수 사람에게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나 꿈속의 환영처럼 드물고 덧없이 스칠 뿐이지만, 고인에게는 생애 전체를 함께한 변치 않는 동반자였다. 진리를 진실로 사랑하고 삶을 엄중히 대했던 구도자로서, 겉치레나 가식과 마주할 때마다 고립을 자처하며 젊은 시절부터 맹렬하게 인연을 끊어냈다. 뜨거운 심장이 고동치던 이 깊고 사색적인 인물은 놀이 중에 화가 난 아이처럼 상처받은 채 평생을 내달리면서도,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은 끝까지 진실했다.

자유롭게 태어나 만개한 천재성은 세상의 압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운명이 내린 이 고귀한 은혜를 늘 감사히 찬미했으며, 오직 그에 걸맞은 자격을 갖추고자 고군분투했다. 숭고한 소명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세상의 즐거움 따위는 언제든 기꺼이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상에서의 목표는 오랜 세월 어둠 속에 감추어져 있었고, 이마를 장식한 월계관도 생의 황혼이 짙게 깔린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뒤늦게 주어졌다. 그러나 사명에 대한 신념만큼은 영혼 깊은 곳에 바위처럼 단단히 뿌리내려 있었다. 부당한 외면 속에 묻혀 지낸 긴 세월 동안에도 고결한 길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스스로 선택한 까다로운 진리를 향한 고된 헌신 속에서 묵묵히 미소 지으며 백발의 노인이 되어갔다. 살아생전 출판을 보지 못한 윤리학 판본 서두에 적어둔 에스드라서의 구절, “진리의 힘은 위대하며 마침내 승리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슴에 깊이 새긴 채 말이다.

이 비범한 인물과 가깝게 교류하는 행운을 누렸던 이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고인의 생전 모습을 선명히 떠올릴 것이다. 아직 어떤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고, 우리 사이의 ‘광인’이 ‘프랑크푸르트의 현자’로 추앙받기 전의 시절을 함께했던 이들 말이다. 그들은 현상의 껍데기에 결코 미혹되지 않던 예언자적 통찰력과, 세속의 일에 대처할 때마다 여실히 드러나던 저 아이 같은 무력함을 생생히 기억한다. 세상 눈에는 천재에게만 허락된 고유한 어리석음으로 비쳤을 이 경이로운 결합은, 생기 넘치는 이목구비와 언제나 이데아의 빛으로 충만했던 영적인 눈동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명성의 뒤를 바짝 쫓는 거짓 찬사나 삿된 비난에 왜곡되지 않고, 본연의 모습 그대로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기를 바란다. 이 고결한 정신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덧없는 것을 좇는 하루살이들의 길이 아니라 오직 진리 그 자체의 대의에 헌신하여 이룬 공로가 이를 굳게 보증한다. 학문에 생애를 온전히 바친 삶을 통해 세상에 길어 올린 인식의 황금에서 훗날 오류의 찌꺼기가 얼마나 떨어져 나가든 상관없다. 지금 이곳에 세우는 무덤의 흔적이 아득한 세월 속에 사라진다 해도, 가르침을 떠받치는 두 개의 주춧돌만큼은 시간의 풍파를 견디며 굳건히 서 있을 것이다.

참으로 선한 것은 결코 유행을 타서는 안 된다. 유행의 본질은 변화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상은 대자연처럼 고요하고 느릿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멈출 수 없는 힘으로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고인이 남긴 가르침은 옷의 재단 방식처럼 일시적인 유행에서 완전히 비켜나 있었고, 선의에서 비롯되었으나 잘못 울려 퍼진 나팔 소리에도 흔들림 없이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철학의 약장수들과 현대의 절충주의자들에게는 이미 극복된 낡은 입장으로 취급받는 관념론이 바로 이 가르침의 바탕을 이룬다. 그곳에는 뇌 속의 인(phosphorus)을 아버지로 둔 알량한 물질적 정신 따위는 결코 깃들지 못한다! 내면의 자산을 투박한 손으로 훼손하는 이 야만의 시대에, 고인의 관념론적 근본 관점은 유물론이라는 부식성 산(酸)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해독제다.

고인은 단순한 관념론자 그 이상이었다. 그가 주창한 영적 원리는 속이 텅 빈 사유의 환영이 아니었다. 플라톤과 칸트의 고결한 학파에 뿌리를 둔 윤리적 통찰은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계의 타락과 부패를 예리하게 꿰뚫었다. 세상의 고통과 존재의 허무함을 '왜곡된 의지'라는 참된 기원으로 환원시켰고, 사물의 궁극적인 목적을 오직 도덕성의 영역에서 찾아냈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가르침을 최고의 학문에 부여된 숭고한 사명의 반열로 승화시켰다. 진정 이 놀라운 인물을 공정하게 평가하고자 한다면, 그가 맹목적인 의지를 사물의 본질로 파악하여 세상의 수수께끼에 순수한 도덕적 해답을 제시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도덕적 의지 행위를 세계의 가장 내밀한 본질과 동일시함으로써 윤리학을 곧 형이상학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사상가였음을 말이다. 물론 인간의 육화된 형태 바깥에 존재하는 '물자체'의 존재 방식을 묻는 질문은 권한 밖이라며 물리쳤고, 그곳에는 인간 의식의 형태 역시 존재하지 않음을 명확히 선언했다. 초심자들에게는 이 '의식'이 너무나 필수적이어서 그것이 없는 천국에 크나큰 충격을 받을지라도 말이다.

이론과 실천 모두에서 감각의 부정을 지향하는 가르침 덕분에 국가는 아무런 불안 없이 힘을 행사할 수 있었고, 무신론적 저서들이 금서로 지정되지 않은 것을 누구도 의아해하지 않는다. 사물의 도덕적 질서, 곧 우리 내외를 규율하며 대중의 열정을 억누르는 강력한 권위로서의 법과 제도는 고인에게 각별한 의미였다. 인간의 이기심이 빚어낼 최악의 결과를 확신했던 그에게, 법과 제도는 인간관계라는 지옥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혁명가들과 맞서 싸우다 상이군인이 된 병사들을 유산 상속자로 지정한 유언장에서도 증명된다. 단호한 판단과 무뚝뚝한 표현 이면에는 부드럽고 예민한 마음이 고동치고 있었다. 일상인의 얕은 시선에는 그저 인간 혐오자로 비쳤을지 모르나, 인간을 아무리 하찮게 여겼을지언정 늘 사람들과 함께 아파했으며 그 내면은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젊은 시절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유혹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고독의 길을 지켰다. 선한 별의 도움으로 근심 없이 사유할 만큼의 부를 누린 것을 감사히 여겼다. 그는 개인의 가정을 꾸리는 대신 모든 인류가 입장할 수 있는 거대한 사상의 집을 세웠다. 깊은 사유와 대담한 통찰이 직조해 낸 그 기교 넘치는 건축물의 바닥에는, 지상의 햇빛이 아니라 아득하고 초월적인 영원의 별빛들이 고스란히 쏟아져 내리고 있다.

대지가 고인을 가볍게 덮어주기를! 남겨진 재에 평화가 깃들기를!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유언장에 직접 지정한 묘비명으로, 라틴어 관용구인 'Sit tibi terra levis'(대지가 그대에게 가볍기를)와 'Pax cineribus'(재에 평화를)를 옮긴 것이다. 이는 고대 로마의 전통적인 장례 인사에서 유래했다. 평생 삶을 맹목적인 '의지'에 의한 고통의 연속으로 정의했던 쇼펜하우어에게 죽음은 그 무게로부터 해방되어 도달하는 완전한 안식과 정적을 의미한다. 현재 프랑크푸르트 중앙묘지에 있는 쇼펜하우어 묘비에는 유언에 따라 어떠한 수식어나 찬사도 없이 오직 'ARTHUR SCHOPENHAUER'라는 성명만이 새겨져 있고 이 마지막 추도문의 문구는 철학적 마침표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널리 인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