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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다. 나는 진보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대학 교수가 아니다. 나는 여성주의자가 아니다.

로빈 우드의 두툼한 저서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를 탐독하며

느끼는 점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온갖 영화 감독과 평론가,

사상가들의 말이 인용되고 살면서 들어본 적도 없는 영화를 집요히

파헤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는 까닭은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 문화에서 있었던 결정적 순간들과 사상적 변화를 복합적으로

파악하려는\' 이 책의 목표가 흥미롭고 또 \'오늘날 정치적이 된다는

것은 사소한 것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라는

저자의 태도가 감명 깊기 때문이다.

게이이고, 여성주의자이며, 자유로운 진보주의자에 대학 교수인

로빈 우드는 아마 나하고 정반대에 놓여 있는 사람일 테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이 책을 보면서 정치적 견해의 마찰로 인해 불편한

적이 없었는데, 왜냐 하면 그는 절대로 영화 자체를 입맛에 맞춰

해석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드는 영화를 성실하게 분석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직접 말하고 있다. 이는 국내 평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나라의 많은 평론가들이 아직 영화

자체를 자신의 정치적 의견에 맞춰서 해석한다. 그리고 비평도

논설도 아닌, 괴상한 글을 지면에다 싣는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영화를 제대로 비평해야 개인적 의견도 무게가 실린다.

이 책 속에서 내가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를 얻은 사실도 고백해야겠다. 가령 <택시 드라이버>의

초점 안 맞는 결말의 경우, 글쓴이는 그 것이 다른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실존적 자기 확인을 정당화하려는 해롭고 무책임한 암시라

단언하면서, 스콜세지와 슈레이더 두 작가의 갈등으로 인해 이

영화가 부분적으로 불균질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매번 어딘가

찜찜한 히치콕 영화들의 결말에 대해, 로빈 우드는 히치콕

영화에서는 모두 어떤 당혹감이 묻어 나며, 그 감정의 정도는

남성의 성적 불안감을 얼마만큼 씻어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필자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학술적인 영화 평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첫째, 이론이 너무 어렵다. 둘째, 다루는 영화는 늘 정해져

있다. 최소한 경험에 따르자면, 거의 모든 그러한 글들은 비평이

인정한 천재들만 각종 사상으로 해부하지, 절대 오락 영화를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우드는 5장에서 70년대의 호러 영화들을 프로이트,

마르쿠제, 호로비츠가 창안한 개념들을 총동원하여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 장에서 나는 두 가지를 반성했는데, 먼저

비평가들이 전부 진지하고 중요한 영화들만 말하지는 않는다는

점과, 나중에는 호러처럼 나쁜 평가를 받는 장르를 논할 때에는

거대 담론이 훌륭한 비평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쉬운 점들이 없을 리가 없다. 책의 대부분 장이 아서 펜,

로버트 알트만, 래리 코헨, 조지 로메로, 브라이언 드 팔마,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즈, 마이클 치미노 등등

벌써 평단이 수긍한 거장들에 할애하고 있다. 때때로 자신의 이념을

주장하기 위해 영화를 빌려서 말한다는 느낌도 든다(예를 들어 10장

\"이미지와 여성\" 과 11장 \"버디에서 연인까지\"). 지나치게 거대 담론을

가지고 영화를 비평하다가 비평이 담론에 잡아 먹혔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그 모든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복간되어서 보다 널리

읽히길 바란다. 왜냐면 정말 간만에 재미있게 독서를 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반드시 꼭 읽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