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서 '영광'이라고 불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것은 한없이 사랑할 수 있는 권리다.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사랑만이 존재한다. (중략)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나는 여기서 내 삶을 걸고 도박을 하는 셈이다. 뜨거운 돌의 맛이 느껴지는 삶, 바다의 숨결과 막 노래를 시작한 매미 소리로 가득한 삶. 바람은 상쾌하고 하늘은 푸르다. 나는 마음껏 이 삶을 사랑하고 자유롭게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결국, 이 삶에서 나를 부정하는 것은 나를 죽이는 것과 같다. 삶을 고양시키는 모든 것은 동시에 삶에 대한 부조리를 키운다. 알제리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내가 배운 한 가지는 고통보다 더욱 부조리한 것은 행복한 인간의 삶이라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것은 더욱 위대한 삶으로 가는 여정일 수도 있다. 그것은 속이지 않는 삶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사랑 그 자체를 회피하기 위해 삶을 사랑하는 척한다. 사람들은 삶을 즐기고 경험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정신의 관점일 뿐이다. 쾌락주의자가 되려면 보기 드문 자질이 필요하다. 인간의 삶은 정신의 도움 없이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면서 고독과 실존을 동반하여 완성된다.
이 세계는 불행으로 중독되어 있고 그 속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듯하다. 니체가 중력의 악령이라고 불렀던 그 악령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거기에 동조하지 말자. 정신을 두고 울어봐야 헛된 일이고 정신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족하다.
정신의 의기양양한 미덕들은 어디에 있는가? 니체 역시 이 미덕들을 중력의 악령에 대항하는 치명적인 적으로 열거한 바 있다. 니체에게 그것은 정신력의 힘, 취향, '세계', 고전적인 행복, 확고한 자부심, 현자의 냉철한 검소함이다. 이 미덕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며 저마다 자신에게 적당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
ㅡ 카뮈, '결혼, 여름'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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