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인이 입에 담지 못했던 성의 한 측면은 성교 때의 수동성이었다. 에로메노스들(에로메노이 eromenoi)은 자신들의 행동이 "남자의 육체를 가졌으면서도 여자들이 범하는 죄를 저지르는" 남창의 행동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수많은 규율에 복종해야 했는데, 이것은 여자의 역할을 맡아 자기 성적 지위를 타락시키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냉대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상한 면이 있고 어쩌면 깊숙한 곳에 악의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수동적 행위의 즐거움, 바로 여자들이 느끼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이런 기만적인 즐거움 때문에 그리스 남자들은 미적으로 열등해서 과시할 것이라고는 "죄수처럼 묶여 있는 볼품 없이 튀어나온 가슴"밖에 없는 여성이라는 존재의 생리학과 해부학에 내재해 있는 추함에 대해 격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분노하는 것은 그 추함 속에 바로 남성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냉소적인 힘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테네 남자들은 그 문제를 회피했다. 지치지도 않고 소년들에 대한 사랑의 실례들을 들었으면서도 말이다.
여자들이 남자의 시선을 받지 않고 혼자 있을 때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에 관해서 경건하고도 불길한 징조를 보이는 침묵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여자들끼리의 사랑에 대해서는 그것을 가리키는 이름조차 감히 입에 올리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떻게 해서 현대의 번역자가 부적절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와 관련된 몇몇 구절만 보고 금기인 그 말을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이라고 번역했는지를 증명하기는 아주 힘든 일이다. '레즈비어니즘'은 그리스 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반면 레스비아제인lesbiazein이라는 동사는 '성기를 핥다'는 의미였고 트리바데스tribades '문지르는 사람'이라는 말은 마치 그들의 격렬한 사랑의 행위를 통해 외음부가 다 닳아 버리길 원하기라도 하듯이 여자와 사랑하는 여자들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리스 인을 분개하게 ─ 그들은 고상했기 때문에 쉽게 분개하지 않았다 ─ 만든 것은 여자들끼리의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 인의 마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던 의심, 곧 여자들이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자기들끼리 성을 자급자족할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이것이 남자들을 배척하면서 거행하는 의식이나 비의의 표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 뒤에 자리잡은 가장 큰 의심은 성교 때의 즐거움과 관련된 것이었다. 티레시아스만이 진실을 꿰뚫어볼 수 있었는데, 바로 이 때문에 그는 눈이 멀게 되었다.
─로베르토 칼라소,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 中
파노프스키 읽다가 칼라소 집으니 숨이 좀 트이네
초기 니체나 하위징아에게 있던 철학적/문헌학적/역사적 긴장마저 소거해버리면, 그게 딱 칼라소의 글쓰기임
학문적 논증이 아닌, 학문이 축적해놓은 자료와 개념을 가져다가 의미의 공명과 배열로 미학적 밀도를 전면에 내세우는, 일종의 신화 재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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