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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었음을 바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그 변화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직접적인 무언가가 없었다면 더욱 그런데, 적어도 소련의 붕괴 시에는 1945년의 베를린처럼 탱크가 진입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신 모스크바에는 맥도날드가 생겨났고, 거리는 펩시와 나이키 광고가 채웠으며, 이는 각 가정에까지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침투해 들어갔다. 이는 단순히 러시아에 새로운 제품들이 소개되었단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소련 붕괴후 발생한 이념의 공백에 이 제품들이 전달하는 물질주의-자본주의 이념이 러시아에 자리잡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과정은 러시아 사람들의 근본적인 세계관을 부정하고 패배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이 패배감을 안겨준 존재에 굴복하는 것으로 안심을 준다. 그들의 새로운 믿음은 이제 이 광고들이 뱉어내는 내적 충만감으로 향한다. 광고의 물건 구매를 자아의 충족으로 전환하는 이 방법은 믿을 것이 사라진 러시아인에게는 너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P세대'는 이런 시대에 놓인 개인을 조망하는 동시에 현대의 러시아에 대한 철저한 블랙유머가 섞인 글이다. 가게 점원을 하다 카피라이터로 일하게 되는 타타르스키는 본래라면 지식인 계급에 속할만한 인물이지만, 새로운 러시아에서 그의 재능은 오직 서방 문물의 광고를 위한 홍보 문구 제작에만 사용된다.

이를 위해 그는 서방의 물건들을 러시아인에 맞는 방법으로 광고를 바꾸고자 하는데, 이를 위해 러시아에 본래 있던 문화(문학, 사회주의)를 사용한다. 이는 러시아의 전통을 상업적인 무언가로 바꾸어 조롱하는 동시에 러시아인을 새로운 시대의 존재로 만들어간다.

이 새로운 존재는 작중에서 오라누스(입과 항-문의 합성어)로 나타나는데, 상품의 구매와 이를 위한 돈의 습득만으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이 존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한 인간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오라누스는 미디어라는 혈관을 통해 어떻게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더욱 확장되어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데, 작중의 모든 정치적 사건들이 3d렌더링된 거짓 사건이라는 점은 미디어가 생산하는 모든 것들은 시청자를 그 앞에 잡아놓는 목적임을, 최종적으로는 광고에 노출시키게 위함임을 상기시킨다.

이 과정에서 타타르스키는 일종의 히피적인 환각적 체험과 함께 현실을 메소포타미아 신화랑 연결짓는다. 최종적으로 타타르스키가 미와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의 새로운 남편인 마르두크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은, 미와 전쟁(폭력)이라는 광고의 핵심적 요소를 얻는 것으로 세계의 주신이자 질서를 부여하는 존재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이 과정 역시 전술된 3d 렌더링 과정을 통해 행해진다는 점에서, 'P세대'의 개인은 재생산된 이미지이자 시뮬라크르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타타르스키가 광고에 보내는 냉소적 서술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카피라이터라는 점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자본주의 체계 내에서밖에 작동할 수 없다는 마크 피셔의 글을 떠오르게 하는데, 글에서 느껴지는 냉소와 유머 역시 이런 부분을 강화한다.

러시아라는 장소는 자본주의 세계와 분리된채 독자적인 이념을 쌓아올린 곳인 동시에, 그것이 붕괴되고 이곳에 서구 자본주의의 침입이 실행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개개인들은 러시아가 무엇인지조차 정의할 수 없게 되었고, 그 속을 채우는 것은 오직 서구 자본주의의 욕망충족적 세계관뿐이었다.

이 끝에서 타타르스키가 자신이 등장한 광고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이전의 러시아가 더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자신 역시 더이상 존재할 수 없음을 느낀 눈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뒤섞인 곳에서 글은 마무리되고, 남은 것은 오직 이미지 뿐이다.




hang문은 금지어 먹을만 한가 고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