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 시작

16:40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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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0 종료




 



읽을 때엔 나름 새록새록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구나...


뭔가 양의 개념에서 부분과 전체를, 우유성에서 필연성을 유추하고 전제하는 것은 대립의 관점으로 관찰하면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도저히 못하는 걸까? 고대 그리스 철학을 건너뛴 탓인지...



쇼펜하우어 읽었을 때엔 범주를 의지 하나로 묶어버린 게 더 대단한 업적 같아 보였는데,


막상 형이상학 서설을 지나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선험적 주관을 세분화한 칸트가 훨씬 대단해보이네 (해체와 조립 또한 대립과 마찬가지로 철학함에 있어서 중요한 듯)


 

양, 질, 관계는 초월철학을, 그러니까 경험 세계를 구성하는 조건으로써 설명하고, 양태(가능/현실/필연)로는 자유를 설명하고...


예전에 어떤 선배가 내게 “칸트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언명령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근데 의무에 자유가 있다는 게 무슨...”


약간 조소 섞인 말이었는데, 자유의 대립성(대립되는 의무가 부여하는 자유, 그러니까 어쩌면 결혼도...? 앗ㅈㅅ;) 그리고 사르트르 철학 비스무리한 느낌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음 윤리형이상학 정초 읽을 때에만 해도 ‘그래! 칸트형! 도덕은 죽지 않았어요ㅠㅠ 근데 이제 뭐함...?’ 느낌이었다면 순이비 초입은


‘유물론, 현상세계에 국한된 신체, 인식론의 개막, 이 속에서 종교로 이어져온 윤리와 의무를 이렇게 대체한다고...?’ 라는 생각이 들었음


물자체를 볼 수 없기에, 억지로 선의지, 정언명령, 도덕법칙을 끌고 온 게 아니라, 그에게는 남아있는 것이, 해명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었던 거였음 (어찌 이런 맑음이...)



머리가 안 돌아간다. 본문 이미지가 뭔지 설명해줄 수 있겠니? 쇼펜하우어 읽은 탓에 의지와 표상으로만 읽히는데,


챗지피티 돌리니 물자체가 아니래. 그렇다면 현상의 실체인가? 근데 현상의 실체가 도대체 어떻게 있는 거지?


실체에서 양태된 게 현상 아닌가? 그것들이 고정불변성을 어떻게 갖지? 진짜 머리가 아프다 한참 고민했는데 모르겠어서 그냥 포기한다


본문 좀 도와주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