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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홀로 있고 길을 잃었기 때문이오.


반골주의와 내장 사실주의는 우리가 정말로 이르고 싶은 곳에 이르기 위한 두 개의 가면일 뿐인데. 세사레아가 물었다. 우리가 어디에 이르고 싶어 하는데? 내가 말했다. 현대성이지, 그 빌어먹을 현대성에 이르고 싶은 거잖아.


내장 사실주의는 원래 시로 문학을 시작한 볼라뇨가 산티아고 파파스키아로와 함께 주도한 전위주의 infrarrealismo(밑바닥 현실주의)의 이름을 바꾸어 작품에 넣은 것이다. 이는 초현실주의surrealismo라는 이름의 반대말이지만 저항과 파괴라는 전위주의 특유의 정신은 공유하되 밑바닥 생활이나 거리의 언어 등을 날것 그대로 시에 담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좌우 갈등 속에서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라틴 아메리카 문인들의 표본인 것이다. 볼라뇨는 그런 갈등과 폭력의 악순환에 환멸을 느낀 대표적인 작가이고, 1950년대에 태어난 자신의 세대 모두가 그런 비극적인 숙명의 희생자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곧 쿠바 혁명 직후인 196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를 휩쓴 유토피아적 전망, 일각에서는 1979년의 산디니스타 혁명 때까지 이어진 전망을 상실한 세대의 대표적 인물이 볼라뇨라는 뜻이다.


볼라뇨는 〈작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문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절규하고, 〈문학은 결백하지 않다〉고 소리 높여 폭로한다.





〈야만스러운 시대> 라는 제목이 더 직관적이며 볼라뇨는 야만의 시대의 가장 큰 징후를 문학의 아우라 상실을 말하고 있다.


시와 소설의 경계에 있는 문체가 많으며,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서술하여 길 잃기 쉬웠다.


80년대 밈문학 후장사실주의의 원조, 작가가 젊을 때 했던 Infrarealismo 운동 다시 복기하면서 쓰는 자전적 소설이라 시적인 요소의 내용이라도 지루하지는 않았고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낭만적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집단과 사상 유령같은 인물들이 무수하게 나오지만, 3부에서 모든것이 분명해진다, 작가의 의도도 마찬가지


2666은 더 어려울꺼 같지만 언젠가는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