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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적어두는 추천작


- 전영택: <화수분>, <바람부는 저녁>, <후회>

- 조명희: <땅 속으로>

- 이익상: <어촌>

- 김기진: <3등차표>, <봄이 오기 전>, <장 덕대>

- 박영희: <명암>







※ 전영택(1894-1968)


전영택은 1919년 문예지 『창조』의 창간호에 「혜선의 사(死)」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대여섯 살 연하인 김동인과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기는 했으나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메시지가 강해서 김동인보다도 오히려 이광수와 유사한 면이 크다는 느낌을 준다. 전영택은 잘 알려져 있듯이 기독교에 바탕을 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그의 적지 않은 소설에도 반영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 근대 소설사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본격적으로 반영하고자 한 최초의 작가가 된다.


그는 1926년 그때껏 쓴 소설들을 대체로 망라해 묶은 단편집 『생명의 봄』을 출간했다. 그의 첫 작품인 「혜선의 사」는 서울에서 교육받고 있는 여성이면서도 유학파의 가치관 특히 이혼에 대한 인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던 주인공이 그 자신 이혼을 맞닥뜨리게 되자 끝내 죽음을 택한다는 내용을 가진 작품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근대적인 가치관을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던 당시의 심리적 혼란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나타나는 그들의 인식은 구체적이지 못하다.


메시지가 너무 거칠게 전달되고 있다는 한계는 전영택의 다른 여러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 단편집의 표제작이자 머리말에서 작가 자신이 대표작이라 단언하고 있는 「생명의 봄」은 중편이라는 분량에서, 또 기독교적인 테마가 직접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그의 표준작이라 할 만하다. 주인공 영순은 P목사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읊고 나서 아내 영선이 투옥된 감옥을 찾아가 면회한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영선의 처지를 걱정하는 영순은 동생 은순에게 위로를 받기도 한다. 영선은 출옥이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유행하던 폐병을 심하게 앓고 만다. 영순은 영선을 간병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천사 비슷한 것의 환몽을 보기도 한다. 얼마 뒤 다행히 영선은 퇴원하게 되고, 며칠 뒤 영순은 또 다른 큰일을 하러 집을 떠난다. 영순이 영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태도를 비롯해 등장인물의 모든 생각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전적으로 기독교적 가치관에 입각해 있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곡진하게 느껴지기는 하나 너무 단순하거나 억지스러운 구석이 많다. 만약 이것이 양적으로뿐 아니라 보다 깊이 있게 서술되었다면 이 작품은 보다 성공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후의 작품에서 작가는 이것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한편 「화수분」이나 「바람 부는 저녁」, 또는 첫 소설집 이후에 나온 「후회」와 같은 단편은 메시지의 직접적 제시와 비교적 거리를 두면서 경제적, 심리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연민을 가지고 그린 것들이다. 특히 「화수분」은 전영택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너무 소품에 가깝다는 점이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 작품은 주인공들의 불행한 처지를 무리스럽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몇 편을 제외한 그의 다른 단편들은 대체로 너무 평범하거나 충분한 설득력을 주지 못한다.







※ 조명희(1894-1938)


조명희는 1925년에서 1928년까지의 5년여 동안 불과 십여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그에 대한 연보나 이차문서는 이 이후에도 그가 창작을 멈추지 않았음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지만 획기적인 발굴이 없는 한 그는 결국 이 작품들의 작가로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 외에도 시를 비롯한 다방면에서 활약했다고는 하나 그가 남긴 작품은 매우 적은 수효인 것이 사실이고 또 이런 수효로서는 이례적으로 자주 회자되어 온 작가라는 인상을 주는데, 이것은 최인훈의 『화두』를 위시하여 작가의 행적에 대한 작품 외적인 관심에서 기인한 바도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는 1927년에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집인 『낙동강』을 출간했다. 5편의 단편이 실려 있지만 수록작이 그의 다른 미수록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 표제작인 「낙동강」은 흔히 그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단편이라고는 하나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 전혀 아니다. 감옥에서 병자로 나오고 만 사회주의 운동가인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물론 구성은 그럴듯하게 짜여 있고, 장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단편으로서 너무 무리한 무게를 들쳐메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주인공 박성운의 행적이 너무 위인적으로 되어 있어 전혀 실감을 주지 않는다. 김현이 그의 평론에서 더러 내뱉는 불만인 ‘언제나 그가 옳다! 한 번쯤 틀려주면 안 되나?’라는 비아냥을 내뱉게 만든다. 당시의 사회주의 쪽 문학가들에게 반향을 주었다고는 하지만 후대까지도 이 정도로 회자될 정도의 작품은 아니지 않나 생각한다.


조명희의 다른 단편들은 대체로 가장이 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면서 동시대의 비루한 일상과 심리를 보다 실감 있게 다루고 있다. 사회주의 지향을 목표로 안고 귀국했으나 생활적으로 무엇도 꾸려볼 수 없는 처지를 직면하게 된 주인공을 다룬 「땅 속으로」를 위시한 이 작품들의 주인공은 「낙동강」의 박성운과는 달리 현실 타개에의 의지를 확고히 하지 못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실감은 오히려 살아나는 면이 있다. 옥중 수기 형식이지만 사실상 옥 밖의 인간관계의 이야기에 가까운 「R군에게」는 별격으로 하더라도, 「땅 속으로」 「마음을 갈아먹는 사람들」 「저기압」 등의 작품은 팍팍한 세태에 대한 작가 나름의 관찰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대표작으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이 무색하게도 이념에 지나치게 충실한 사회 논평은 작품 전반에서 큰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령 불필요하게 극적인 파국으로 사연을 이어버리고 있는 「농촌 사람들」 같은 경우는 이런 단점을 이야기 면에서까지 제어하지 못한 사례라 생각된다. 결국 조명희는 후세 사람들의 동정에 값하는 작품 외적인 행적만큼의 성취를 적어도 소설 분야에 있어서는 거두지 못한 것 같다는 유보감을 금하기 어렵다.







※ 이익상(1895-1935)


조명희와 생몰연도가 거의 유사한 작가인 이익상은 1920-30년대에 걸쳐 세 편의 장편과 함께 20여 편의 중단편을 발표했다. 그러나 생전에 책으로 출간된 작품은 1926년 5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 『흙의 세례』가 유일하다. 초기의 대표작이라고 보아도 무방하지만 수록작들은 대체로 구성이 허술하고 메시지도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표제작인 「흙의 세례」는 제목에서나 내용에서나 뒷날 이무영이 쓴 「흙의 노예」를 예고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귀농을 선택한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작위적이거나 하지는 않지만 재음미를 요하게 하지는 않는다. 이익상은 보통 사회주의 계열의 작가로 분류되고 실제 작품 속에도 그런 메시지가 나타나긴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노골적인 상황으로 넘어가기 전의 주저하는 제스처에 대한 묘사가 동시대의 작가들에 비해 길게 나타나는 것 같고 그 점은 그의 작품에 보다 실감을 부여할 듯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 점을 제외한 소설의 다른 요소들이 너무 빈약한 탓에 그뿐으로 그치고 있다.


그의 소설 중에 가장 꾸준히 앤솔로지에 실려 왔다고 생각되는 「어촌」은 실제로 그의 초기작 가운데 가장 무던한 편인 작품이다. 주인공인 남편은 뱃사람으로 마을의 다른 배들과 함께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뱃사람 일동이 사실상 전멸하여 시체 몇 구만이 돌아오고 만다. 남편이 떠나갈 때 아내가 부적을 달아주던 첫 장면은, 식기 뚜껑에 이슬이 맺히면 당자가 살아 있노라는 미신을 자식이 허망하게 반복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깨져버린다. 사상적인 메시지는 전혀 없으면서도 뱃사람이 맞고 있는 고된 환경과 현실적으로 이를 극복하지 못해 미신만 어리석게 반복하게 되는 상황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동경 유학생들 간의 연애 감정을 그린 「연의 서곡」을 들 수 있다. 나도향을 비롯하여 태반의 연애 소재 소설이 면치 못하는 치기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우선 흥미롭지만, 불필요해 보이는 대목도 있을뿐더러 특히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못해 전반부의 서사가 헛수고가 된 점은 유감스럽다.


단편집 출간 이후 그는 「그믐날」 등의 단편을 발표한 바 있으나 초기 작품을 일신할 정도의 변화를 보여주지는 못한 것 같다. 『그들은 어디로』를 위시한 장편을 읽어 보면 단편에서 받았던 인상이 좀 더 확장될는지 모르겠다.







※ 김기진(1903-1985)


홍정선 편의 『김팔봉 문학전집』은 매우 정교하게 편집된 전집이다. 이 전집의 제3권에는 장편 『해조음』과 『청년 김옥균』이 수록되어 있고 제4권에는 총 12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상당한 분량이라고 생각되는 일부 장편을 비롯해 편자의 관점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제외한 것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전집이라고 하기보다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대표작 선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연도 미상으로 되어 있는 세 편을 제외하면 김기진이 해방 이전에 발표한 단편은 십여 편 정도이다. 장편을 주로 썼던 그는 생전에 단편집을 낸 바가 없었고 전집 출간 이전까지 그의 단편에 대한 접근성은 낮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가운데 앤솔로지에 종종 실리는 것으로 가령 「붉은 쥐」가 있으나 전혀 좋은 작품이 아니다. 초기의 이런 이념적인 단편과 해방 이후 소위 통속적 역사소설의 집필 사실만이 소개된다면 김기진은 독자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작가로 각인될 가능성이 크다.


초기작으로부터 그의 일신을 보여주는 단편은 「3등차표」이다. 빚더미로 빠지기 직전인 가업을 물려받고 이를 보란 듯이 극복하기 위해 대출과 청탁 자리를 동분서주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박진감 있는 서사를 갖추면서도 당시의 경제적 상황을 정면으로 묘사하고 있다. 원색적인 구호를 버리고 소설의 본래 요소에 충실해지면서 오히려 메시지의 성공적 전달을 위한 구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 뒤의 단편인 「봄이 오기 전」이나 「장 덕대」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 1930년경을 전후하여 거둔 이러한 발전은 이후의 여러 장편이나 해방 이후의 중편 「날이 밝으면」 등으로 확장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영희(1901-?)


박영희는 생애 동안 불과 십여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그 결과가 좋았건 나빴건 어쨌든 양적 확대를 보였던 김기진의 소설에 비해 박영희의 소설은 초기의 수준에서 그다지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대부분의 소설은 1920년대에 발표된 것이다. 1931년에 출간된 『소설·평론집』에는 이 중 3편의 단편이 실렸으나 그의 초기 단편은 대부분 범작 내지 졸작의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의 소설 중에서 자주 거론되는 「사냥개」는 제 돈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주인공이 개를 사서 지키랍시고 내놓았다가 실수로 그 개에게 물려 죽는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그의 사회주의 경향이 드러나는 단편 중에서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이 작품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 내용을 표현하는 작가의 궁리는 너무나 단순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박영희의 소설 역시 1930년대 이후 일신하는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고는 있다. 그의 거의 마지막 발표작에 해당하는 「명암」은 특히 이를 잘 보여준다. 망하기 직전의 신문사를 무슨 수를 써서든 이어나가려고 하는 부장인 주인공의 환장할 하루를 그린 이 작품은 김기진의 경우와 비슷하게 구호로부터 멀어지면서 훨씬 심도 있는 고민이 토로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난 뒤 후속 작업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