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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안팎을 막론하고 '일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은 이 끊임없는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이라기보다, 정답을 찾는 '길'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시도가 얼마나 성공적이라고 보는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이 저서는 어디까지나 일본 내 일반인 대상의 '강의'를 재구성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이 책은 일본인에게도 '일본'이라는 주제가 '그림자(面影)'로 존재한다는 상황 자체를 부단히 가리키고 있다.
이 책에서 상기시키고 화두를 던지는 '일본'이란 현실적인 국가이기 전에, 다시 말해 '일본국'이기 전에, '일본'이라는 결심이다. 저자는 역대의 일본인이 '진정한' 일본인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왔는가, 또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담으려 한다. 여기에는 일본인이 외국인에게 '일본'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자주 이야기된 주제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담은 지식이 그것들과 같은 차원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일본인이 일본인에게 일본을 이야기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일본을 보기 위해서는 '거울'이 필요하다. 역사적 맥락에서는 '반성'이 필요하다. 이때의 '반성'이란 반드시 도덕적 책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때의 '일본'은 나라이기 전에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마음을, 저자의 용어에 따르자면 '그림자'를, 또한 그런 그림자의 '움직임'을 살펴야 한다.
저자는 일본의 반성적 '방법'으로 '자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적인 것은 무엇일까? 우리말 번역 과정에 따라 제 3장이 <일본풍과 중국풍>이라고 옮겨져 있는데, 원래 제목은 <'화풍和風'과 '한풍漢風'>일 것이다. 일본인 스스로 '화풍'과 '한풍'을 구분해왔고, 또한 이 둘을 '조화'시키려 했으나, 사실 '화풍' 속에 이미 '한풍'이 담겨 있다. 이는 여러가지 차원에서 증명할 수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나'의 성립이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세계에서 '중국'이란 문명 자체를 뜻했고, 그 문명의 핵심제도에는 '문자'가 있었다. '가나'란 '가짜 문자'를 뜻한다. 고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문자'란 오직 한문만을 뜻했다. 그런 맥락에서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한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봐도 좋다. 왜냐하면 '글'이란 오직 한문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것의 명징한 변형이 바로 '가나'다.
가나 이전의 '가나'라는 '만요가나'는 사실 잘못된 용어다. '만요가나'를 쓴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나'를 쓴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용한 모든 글자들은 '진짜 문자'였다. 즉, 알짜배기 '한자'였다. '만요가나'라는 이름은 편의라는 명목으로 후대 일본인들의 자기 오해를 뚜렷하게 각인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미 '가나假名'라는 말 자체가 '마나眞名'를 전제하고 있다. 차라리 '일본'이라는 이름이 포함하는 '태양'이란 '중국'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일본이라는 '그림자'란 그 태양과 마주한 존재의 만남이 낳은 결과는 아닐까? 그림자가 존재하려면 태양이 아닌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 그 무엇이란 무엇일까? 이제 질문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다. 진짜 문제는 '그림자'나 '태양'의 존재가 아니라 이 둘을 연결시켜주는 '존재'에 관한 의문이다. '화풍'도 '한풍'도 아닌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일본도 중국도 아닌 무엇은 무엇인가? 고레산스이 양식에서 표현한 '물'은 어디에 있을까?
따옴표 쓰시는 거 되게 좋아하시네요 - dc App
일본에서는 사이비학자 취급받는 사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