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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의 나이로 은퇴한 몽테뉴는 자신의 성에 칩거하게 된다. 그의 서재 천장에는 54개의 라틴어 격언이 새겨져 있었는데, 마지막 격언은 프랑스어로 적혀 있었다;
'Qve Scay-Ie?' 나는 뭘 아는가?
이것이 몽테뉴의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몽테뉴는 자신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적었다.
여러 해 전부터 나는 오로지 나 자신만을 내 사색의 목표로 삼아 오로지 나만을 관찰하고 나만을 연구해 왔다. 또 내가 다른 것을 연구한다면 이는 그것을 내 위에 놓아 보기, 또는 적절히 말하자면 내 안에 담아 보기 위해서이다. -1권 84페이지
나는 내 속을 들여다본다. 나는 내 자신만 상대하며, 끊임없이 나를 고찰하고, 나를 점검하며, 나를 음미한다. -2권 547페이지
에세, essai는 시험하다(essayer)와 비슷한 단어다. <에세>는 몽테뉴의 수십 가지 시험 과정을 담고 있다. 그는 100편이 넘게 온갖 주제를 다 다루는데, 그의 글은 플루타르코스 등 선인의 말로 뒷받침된다. 몽테뉴는 왜 이런 질문을 했는가? 세상에 불변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년이 닥치면 장년은 죽어 사라지고, 장년의 개화에서 청년기는 끝나고, 소년기는 청년기에서, 유년기는 소년기에서 죽으며, 어제는 오늘에서 죽고, 오늘은 내일에서 죽을 것이다. 늘 그대로 머물러, 항상 여일(如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2권 457페이지
나는 존재를 그리지 않는다. 그 추이를 그린다. 이 시대에서 저 시대가 아니라, 혹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7년에서 다른 7년이 아니라,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추이를 그린다. -3권 37페이지
항상 불변하고 있었다나 있을 것이다가 아니라 있다로 존재(être)하는 존재는 신 뿐이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나도 내가 아니라면, 내가 아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적이고 자폐적인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남에게 물어선 나오지 않는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물어야만 한다. 몽테뉴의 시험(essai)에는 어떠한 미사여구도, 포장도 없다.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과 답이 진실되게 적혀 있을 뿐이다.
나는 이 글들을 내가 믿는 것들로 내놓는 것이지, 믿어야 할 것들로서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내 목표는 오직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1권 276페이지
나는 부주의한 과오는 교정하지만, 습관이 된 과오는 고치지 않는다. 나는 어디서나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가? 나는 생생한 내 모습을 재현하지 않는가? 그럼 됐어. -3권 167페이지
부적절하다 싶지 않는 한에서 나는 여기에 내 경향과 내 감정을 다른 이들이 느끼고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나는 더 자유롭고 더 기꺼이 구어로써 말한다. -3권 363페이지
나는 궁리해 본 내용이나 속설이 아닌, 그로 인해 조금도 부패하거나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경험을 제시할 것이다. -3권 537페이지
우리는 몽테뉴의 문답 과정을 본다. 그가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것으로 몽테뉴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맛보기(essai)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서가 한구석에 꽂아 두기 위한 책이요, 여기 그려진 내 모습에서 즐겨 나를 다시 만나 옛 관계를 이어갈 어떤 이웃, 어떤 친척, 어떤 친구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다. -2권 557페이지
그대 내면을 바라보라, 그대를 알고자 하라, 그대에게 집중하라. -3권 397페이지
우리가 가진 으뜸가는 책무는 각자 자기 자신을 이끌어 가는 일이다. -3권 405페이지
<에세>를 3권까지 쓰던 몽테뉴는 병에 걸려 죽어간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는다. 죽음은 삶의 끝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승선에 도달할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에세>는 갑작스럽게 끝난다. 몽테뉴가 결국 결승선을 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기 전에 쓴 글에도 죽음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이 에세를 마무리하겠다 이런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더 살 수 있었다면 에세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에세>는 몽테뉴의 기록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몽테뉴는 죽어서 <에세>를 남겼다. 호랑이 가죽을 보고 설원을 거니는 호랑이를 상상하듯,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서재에서 글을 쓰는 몽테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세 권의 책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네들과 조금은 사적인 교류를 하고 싶다. 공공연한 것에는 호의도 풍미도 깃들이지 않는다. 헤어질 때가 되면 우리는 버려 두고 가는 것들에 대해 보통 이상으로 뜨거운 애정을 보이게 된다. 나는 이 세상의 유희와 마지막 작별을 하는 것이니,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포옹이다. - 3권 112페이지
죽음은 삶의 끝이지 삶의 목표가 아니다. 삶의 종결이고 궁극의 지점이지 그 목적이 아니다. 삶이야말로 삶 자신의 과녁이자 목적이어야만 한다. - 3권 487페이지
프랑스의 자기-쓰기는 언젠가 꼭 정복해보고 싶은 영역임...
후회가 싫다 "다른 이들은 인간을 만들어내지만, 나는 인간을 이야기한다" "나는 내가 흥미를 느끼는 순간에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 나는 본질이 아니라 그 과정을 그린다. 이 시대에서 저 시대가 아니라, 혹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이번 7년에서 다음 7년이 아니라, 날마다 매 순간의 과정을 그린다." 몽테뉴의 16세기 글이 300년후에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