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고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강 -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키티는 외친다 - 황병승
장님이 되고 싶어! 거리에서 만난 내 친구 키티는 매독을 앓죠 주말의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달려요 더 빨리 더 빨리 느린 건 질색이야 귀가 떨어져라 외치는 키티 우리의 몸이 나쁘게 변해가고 있어요 지구가 돌기 때문이죠 달님을 보세요 해님을 구름과 호수를 저 느림보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일찍부터 호기심을 버렸고 나는 당신이 왜 우는지 알아요
우리는 약간의 도움이 필요해요 더 나빠지기 전에 더 빨리 더 빨리 장님이 되는 게 소원인 내 친구 키티는 밑구멍에서 박하가 녹는 것 같아! 진물이 흐르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면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면 더 빨리 더 빨리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언덕을 내려가요 느림보들의 충고는 듣지 않겠어요 지구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너무 많죠 한 장의 흑백사진이면 충분할 것을
돈밖에 모르는 엄마는 안녕히 가시라고 그래요 내 다리와 두 팔을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이도 저도 아닌 아빠 밤낮 인형놀이나 하자고 보채고 외국인 클럽에서 산 흰 가루를 킁킁거리며 오빠는 두 번 다시 듣기도 싫은 갓스피드*에 빠져 지내죠 우리는 약간의 도움이 필요해요 우리의 몸이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어요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어색한 건 없죠 더 빨리 더 빨리 페달을 밟아 이 느림보 친구야 키티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나는 당신이 왜 우는지 알아요 세상의 어떤 노래도 당신을 위로하지 못하고 아주아주 똑똑한 아저씨들조차 지구를 멈추진 못해요 더 빨리 지구보다 더 빨리 나도 모르게 늙을래! 바보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내 친구 키티 날마다 새 빌딩들이 들어서고 도시는 거대해져요 밤은 낮보다 환하고 사람들은 점점 세련되어져가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죽음은 느리게 회전하고 있고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우리는 약간의 도움이 필요해요.
* 포스트 록 밴드 Godspeed You Black Emperor!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 황인찬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것은 하얗고,
그것은 둥글다
빛나는 것처럼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 있었다
백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는데
나는 그것들에 대고 백자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에서 나는 단 하나의 여름을 발견한다
사라지면서
점층적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은
여전히 백자로 남아 있는 그
마음
여름이 지나가면서
나는 사라졌다
빛나는 것처럼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선정 기준 - 황 씨 시인 / 생각나는 대로 / 임팩트 있고 유명한 시
인터넷 긁은 거라 일부분 부정확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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