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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밋엇다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키리냐가의 유토피아 역시 그랬다
나는 갈릴레오의 아이들 이라는 sf 단편집에서 이 책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읽으며 키리냐가 연작을 처음 접했는데
그래서 이번에 전체 책을 읽기 전부터 주인공의 기획이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고 보니 더욱 더 무모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명의 이기를 알고 나서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으며
문명을 접할 수 없게 막을 권리는 또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애초부터 이상한 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이 소설 자체가 하나의 우화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적당히 말이 되는 듯 싶었다
(이 소설에는 우화가 많이 나온다)
한편 역자 해설에서 역자가 말한대로
작품 내내 단호히 문명과 유럽을 거부했던 주인공이야말로 가장 유럽인적인 인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키리냐가의 신 응가이는 아프리카 토속신이라기보다 야훼에 가깝게 느껴졌다
‘제물과 복수의 유일신 신앙’ 이라는 식으로 요약하면 더욱 더 그렇다
이 소설을 우화라고 본다면, 이 소설에 등장한 우화들이 모두 그랬듯이 이 소설에도 교훈이 있어야겠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만 살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는 법이다' 라는 교훈을 얻은 것 같고
이제 뭘 읽을지 고민이다
뭘 읽을 수 있을까 내가
키리냐가 재미있어 나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인간의 향상심으로 읽었지
부제부터 "유토피아의 우화"(A Fable of Utopia)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