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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를 비롯한 대부분의 설치류는 보통 2년 정도를 살고, 거기서 더 살아봐야 3년이 고작이라고 한다. 이런 별것도 아닌 작은 상식이 얼마나 역설적으로 와닿을 수 있는지 직접 키워보지 않고는 실감이 안 난다. 가령 햄스터가 보내는 하루에 초점을 맞추면 평소처럼 무심하게 보냈을 그날의 하루 하루가 얼마나 달라보이는지 말이다. 나는 2년이 지나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쬐끄만 너는 언제 그렇게 늙어서 다죽어가는지...
햄스터를 세 마리째 키울 때는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자고 다짐했지만, 막상 때가 닥쳐보니 이거야말로 하등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이런 기묘한 시간 감각은 몇 번을 번복해도 익숙해지기 힘들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5개월 전에 햄스터를 묻었을 때 이 책의 첫인상은 마치 현실도피가 실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잘 기르던 애완동물이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어도 불가사의한 힘을 빌어서 되살릴 수 있다는 내용이니 말이다. 별도의 까다로운 의식도 필요없이, 그냥 '그 곳'에 가져가 묻어주기만 하면... 하지만 이렇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이야기는 대개 험한 꼴을 면치 못하는 법이었고 이 책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필 의사의 손으로 묘지를 삽질하게 된 루이스 크리드의 사연은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을 가까이서 관전하는 것 같았다. 초반만 해도 병원에 실려온 환자에게 필요한 조치는 취하면서도, 머리가 거의 다 박살난 상태를 보고 속으로 '이미 글렀다'며 바로 체념했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후반부에 치닫는 상황과의 심리적인 간극이 매우 크게 느껴진다. 냉정하게 고찰했던 남의 일이 내 일처럼 되면 단번에 얘기가 달라지는 게 사람으로서 별 수 없는 이중 잣대인 것 같다. 더구나 그게 내 가족이면..
루이스가 일하게 될 대학 때문에 가족들과 이사간 곳에서 '저드'라는 노인을 만난 게 모든 일의 발단이었다.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루이스는 왠지 노인에게 옛날에 봤던 듯한 이상한 기시감으로 이끌린다. 저드에게는 자신만큼이나 나이든 아내가 있었고 또 몹시 병약한 상태였다. 어느 날 그녀가 쓰러졌을 때 루이스가 응급처치로 목숨을 구해주면서 두 집의 사이는 더욱 각별해졌다.
하지만 그 노부부를 처음 알았을 때부터 루이스네 집안은 묘하게 긴장 상태였다. 노인네가 동네 구경을 시켜준답시고 나서서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보여줬던 게 화근이었다. 마침 '처치'라 이름붙인 고양이를 한 마리 기르고 있던 루이스 가족에게 그 곳의 구경은 두고두고 찝찝한 경험으로 뇌리에 남는다. 고양이가 사람처럼 오래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아기때부터 처치와 같이 자란 어린 딸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한술 더 떠서 루이스의 아내는 어렸을 때 겪은 친언니의 죽음에 트라우마가 있어 죽음이라는 단어에 아주 치를 떨었던 것이다.
고양이가 얼마나 죽음에 노출된 동물인지 새삼 실감하며, 루이스가 할 수 있는 대처란 처치를 중성화 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야행성을 좀 눌러놨나 싶었더니만 고양이는 기어코 집밖에 기어나가서 비명횡사한다. 추수감사절에 갑자기 벌어진 비극에 루이스는 낙담하면서도 한편으로 딸내미가 이를 알고 얼마나 울고불고 난리 칠 지를 걱정한다. 행여나 전화 통화하는 사소한 순간에 애가 눈치챌까 적당히 말을 돌리는 대목은 심각하게 읽는 중에 피식 웃게 했던 부분이었다.
그는 사실 이 순간을 어떻게 넘길까 생각했고(최소한 오늘 아침 동안) 엘리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엄마를 다시 바꿔 달라고 하려던 찰나 엘리가 물었다.
"아빠, 처치는 어때요? 처치가 나 안 찾아요?"
루이스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지만 그는 철저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어조로 즉석에서 금방 대답했다.
"처치는 잘 있을 거야. 아빠가 어젯밤 먹다 남은 비프 스튜를 주고 밖에 내보냈어. 오늘 아침에는 못 봤지만 아빤 이제 막 일어났거든."
맙소사. 희대의 살인마가 될 소질이 보이는군. 소름 끼치게 냉정해. 크리드 박사, 고인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죠? 그는 저녁 먹으러 왔어요. 비프 스튜 한 접시를 먹었죠. 그 후로 한번도 못 봤어요. -p.223
사실 루이스는 전화하는 시점에서 숨겨야 할 비밀이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네가 모르는 사이에 고양이가 죽었고, 고양이는 다시 살아났단다. 아빠가 다시 살려냈지. 저드 할아버지가 몰래 알려준 비밀의 묘지에다 묻어서 말이야.
대충 옛날 인디언 부족에게서 기원이 내려왔다는 듯한 그 묘지는 저드 영감의 과거 경험처럼 정말로 고양이를 살려내는 힘이 있었다. 다만 유일하게 남겨놓은 썩는 악취는 그것이 본디 죽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킴으로써 루이스에게 차마 말 못할 찝찝함을 안겨준다. 한 마디로 고양이 좀비와 한집에서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셈이었다. 속사정을 알 리 없는 가족들은 갑자기 냄새가 고약해진 고양이를 멀리하기만 하고.
오히려 죽기 전보다 취급이 개차반이 된 고양이는 루이스가 실수했다는 걸 보여주는 산증인이 된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루이스의 실수를 의미하는 상황이 찾아온다. 저드 영감의 부인이 지병으로 세상을 등진 일과, 집안의 막내아들인 게리가 죽었을 때의 일이었다.
루이스의 딸은 열 살도 안 된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어보여도 의외로 그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좋든 싫든 일찍 겪는 만큼 성숙하게 마련인 것 같다. 이런 변화를 보면 고양이가 죽었을 때 솔직하게 알려줘도 괜찮았을 텐데 루이스가 참 성급했다는 생각이 드는 전개였다. 하기야 그런 상황에서 '매장만 하면 된다'는 간단한 제안을 하는데 안 따르고 배기겠냐만은...
동생을 잃은 어린 딸은 극복했지만 자식을 잃은 아빠는 그렇지 못했다. 그것이 다시 묘지에 삽질하게 만든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
죽은 것을 살려주는 그 비밀스런 묘지는 유독 고약한 악취를 흔적으로 묻히는 게 은근히 치사한 듯하면서 '그것이 죽었다는 걸 잊지 말라'고 의미심장하게 남기는 경고 같은 느낌이었다. 너 하고 싶다는 대로 해줬으나 이제 그 뒷일을 감당하라는 뜻일까.
루이스에게 묘지를 가르쳐줬던 저드가 나중에 가서 그때의 의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거기가 대체로 나쁜 곳이며 그런 행위가 사랑하는 동물을 잃은 사람이나 죽은 동물에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어. 그러고는 내게 지금 스폿의 상태가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보셨는데 루이스 자네도 알겠지만, 나는 대답하기가 몹시 힘들었다네…… 그때 내 기분을 자네에게 꼭 말해 줘야 할 것 같아. 자네도 조만간 물어볼 것이 틀림없거든.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쁜 일이었다면 왜 내가 자네 딸의 고양이를 그곳에 데려가게 했는지 말이야. 안 그런가?"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 처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스티브 매스터튼과 라켓볼을 치던 오후 내내 루이스의 마음속은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아이들이 때로는 죽은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
……"그 애는 결국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고통이 멈추고 행복한 기억이 시작되는 지점임을. 그저 삶과 고통이 끝나는 것뿐이 아닌. 그런 것들을 말로 가로칠 수는 없지. 그 애 스스로 이해하게 될 걸세.
그리고 엘리가 나처럼 반응한다면 이후로도 고양이를 계속 사랑할 거야. 고양이는 잔인해지지도,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지도 않는다네. 그 애는 계속 고양이를 아낄 거야……. 하지만 결국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마침내 고양이가 정말 죽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쉴 걸세." -p.253, 255
책을 읽다보면 드물게 나뉘어놓은 장(章)의 구분마다 눈에 띄는 인용문이 있었다. 하나는 '월리엄 위마크 제이콥스'의 <원숭이 발>에서 따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뜻밖에도 성경 구절이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두 이야기가 '부활'이라는 맥락을 같이 하면서 또 본질은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신적인 존재가 부활을 허락해주지만 <원숭이 발>에서는 사람이 '감히' 죽음을 거스르려 해서 말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원숭이 발>을 읽어본 사람이면 저 소설에 등장하는 부부의 아들이 어떤 몰골로 죽었는지 기억할 것이다. 한때는 아들이었던 '그것'이 숨만 붙은 채 돌아와서 집안에 들어오기 전에 마지막 남은 소원으로 다시 돌려보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이상과 현실을 대치한 것처럼도 보이는 인용문이었다. 루이스의 삽질은 결국 성경에서처럼 드라마틱한 부활을 일궈내지 못했다. 아들이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을 시도한 건 성경 속 예수가 사흘 후 부활했던 것과 또 한 번 겹치면서 잔혹한 심판을 야기한다. 돌려보내지 못한 원숭이 발이었다.
책을 덮으면서 하나 이해가 안 갔던 건 '그래서 저드 영감이 왜 루이스의 아버지라는 건가?'였다. 그도 그럴 게 첫장에서 대놓고 암시한 문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세 살에 아버지를 잃은 걸로 나와 있는데 생전 처음 본 노인이 자기 아버지라니 말이다. 작가양반이 책을 쓰면서 까먹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르러서 드러난 노인의 과거 편력을 생각해볼 때 루이스는 저드의 사생아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런 게 아니면 이제까지 어디서 봤던 것처럼 묘한 느낌을 추임새로 끼워넣은 게 설명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몇 년 전에 묻어줬던 다른 햄스터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하게 된다. 이런 묘지가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런지..하지만 햄스터에 대해 많이 몰랐던 당시를 떠올려보면 그 열악한 환경에서 되살려봤자 결국엔 자기만족이지 그게 햄스터를 위하는 것이었을까 싶다. 오히려 죽어서 모든 것에서 해방된 걸지도 모른다. 심지어 나한테서까지. 그 때 찍었던 사진들을 가끔 들여다보면 웃음이 나다가도 씁쓸하기도 하고 그렇다.
나한테 있어 '때로는 죽은 것이 더 낫다'는 그런 의미다. 그리고 앞으로는 햄스터를 다신 키우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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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프고 안늙으면 좋겠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