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내가 읽은 우리 단편소설 (1)

https://gall.dcinside.com/reading/802732




※ 미리 적어두는 추천작


- 나도향: <벙어리 삼룡이>, <뽕>

- 주요섭: <사랑 손님과 어머니>, <북소리 두둥둥>

- 박화성: <하수도 공사>, <한귀>, <고향 없는 사람들>, <호박>







※ 나도향(1902-1926)


나도향의 행적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문학청년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젊다는 이유만으로는 용인되기 어려운 치기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또 그러면서도 분명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그것이 제대로 발전될 만할 때 요절해버리고 말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는 약관의 나이에 습작 수준이거나 아니면 그보다도 못한 수준의 연애 소재 소설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유고로 발표된 중편 「청춘」을 위시한 그의 연애 소설에 대해 낭만성 운운하는 허황한 평가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의 독자가 이런 소설을 굳이 찾아 읽을 필요가 극히 적다는 것이다. 사랑 이야기와는 오히려 거리를 두고 있는 「십칠 원 오십 전」 정도가 읽을 만할 뿐이다. 이런 일련의 소설들이 습작기의 소산이었음은 그의 몇 년 뒤 작품들이 스스로 증거하고 있다.


1920년대 중반의 단편들에서 그는 습작기의 면모를 거의 일신하게 된다. 그가 요절했다는 사실이야 잘 알려져 있다지만 작품 연보를 보며 「벙어리 삼룡이」와 「물레방아」와 「뽕」이 같은 해에 발표된 것을 보면 새삼 놀라게 된다. 「벙어리 삼룡이」의 내용은 주인공이 백치이자 사회적 초심자요 정욕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사실 습작기 글들의 주제와 맞닿은 면이 있다. 초기의 소설에서 암만 장황하게 감상을 토로해도 안 오던 실감이 이 작품에서 비로소 와닿는 것은 그것을 표현할 적절한 소재와 문체를 여기서야 갖췄기 때문이다. 「물레방아」와 「뽕」 역시 성애와 관련된 소재가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포악스런 등장인물들 간의 촌극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 점에서 김동인의 단편을 연상시키는 바도 크다. 엇비슷한 두 편 중에서는 결말도 그렇고 「뽕」이 훨씬 실감 있게 느껴지는 편이다.


작가가 사망한 해에 발표된 「지형근」은 묘하게 사회주의 지향적인 서술이 가미되어 있어 작품의 변모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을 보여줄 사이도 없이 그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생전 1923년에 『진정(眞情)』이라는 단편집이 나오기는 했지만 대표작들이 앤솔로지에 실리기 시작한 것은 사후의 일이다.







※ 주요섭(1902-1972): 1) 해방 이전


주요섭은 1948년 첫 번째 단편집인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출간하면서 그의 해방 이전의 단편소설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였다. 같은 시기 이 책 이외에 그는 「미완성」을 위시한 몇 편의 중편 그리고 장편 『구름을 잡으려고』를 발표한 바 있다. 1939년 이후로는 절필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해방 이전의 작업은 1920-30년대의 약 이십 여년에 걸쳐 있다. 나도향과 엇비슷하게 약관의 나이로 등단했으면서도 그에게 청년 작가의 이미지가 덜하게 느껴지는 것은 요절하지 않았다는 사실 외에도 작품의 성향 차이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린 단편들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일련의 단편들은 대체로 「개밥」이나 「대서(代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사연의 기구함에 너무 치중해 있거나, 아니면 어설픈 대목이 있는 경우가 많아 높은 평가를 내리기 어려워 보인다. 외국 무대를 배경으로 한 단편인 「인력거꾼」 정도가 비교적 절제되어 있는 편이다. 첫 장편을 비롯하여 「봉천역 식당」 등의 단편에서 볼 수 있듯이 이국 체험이 풍부하다는 것은 작가 자신에게는 일종의 강점으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단편은 1930년대에 들어 주제상의 변화를 보이게 된다. 경향성으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독특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작품 간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흔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사랑 손님과 어머니」는 사랑 이야기라는 소재가 보다 큰 사회적 메시지로 확대되는 데 성공하고 있는 드문 작품이다. 어린이라는 절묘한 화자의 채택은 메시지의 순도를 높이는 동시에 통속성을 피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기법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여러 번 재탕할 수가 없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사랑 이야기를 일반적인 시점에서 그린 그의 다른 작품은 대체로 평범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가령 중편 「미완성」의 경우 화가인 주인공의 연애담이 예술가로서의 의식에 대한 설명과 병렬되면서 전개되고 있지만 사랑 이야기에서나 예술 이야기에서나 별로 흥미롭게 읽히지 않는다.


한편으로 그는 「북소리 두둥둥」 같은 작품에서 무속적인 환각을 연상케 하는 매우 특이한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죽은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유복자인 아들이 자꾸만 떠올린다더라는 이 작품의 내용은 무속적인 것을 통해 시대적 상처를 인식한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생각되며,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소설이 많았던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로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그의 다른 단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메시지가 깊이를 잃었을 때 이러한 내용은 괴담 수준으로 떨어질 위험성을 얼마든지 안게 된다. 시기를 막론하고 그의 초기 단편들은 소재의 자극성에 치중한 작품이 생각보다 많으며, 그것이 단점으로 작용할 때 어떤 작품은 마치 통속소설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몇 편의 기억할 만한 단편을 남기기는 했으나, 주제가 너무 산발적인 면이 있고 범작 수준에 그친 작품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해방 이전의 단편만으로 주요섭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는 성급한 일이다. 아직 장편 『구름을 잡으려고』가 남아 있고 해방 이후에도 세 편의 장편과 단편들을 꾸준히 발표했기 때문이다.







※ 박화성(1904-1988): 1) 해방 이전


박화성은 1948년에 그의 첫째와 둘째 단편집에 해당하는 『고향 없는 사람들』과 『홍수 전후』를 한꺼번에 출간하였다. 총 17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 이 두 권의 단편집은 같은 시기에 씌어졌던 장편 『백화』와 『북국의 여명』을 제외한 해방 이전의 그의 소설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1937년 이후로는 절필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초기 단편은 거의 대부분이 1930년대의 소작에 해당한다.


그의 초기 단편에서 강점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은 취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믿어지는 당시 가난한 계층의 생활 실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이다. 「하수도 공사」에서 나타나는 노동자들의 쟁의, 「홍수 전후」와 「한귀(旱鬼)」에서 마치 짝을 이루듯 그려진 수해와 가뭄, 「고향 없는 사람들」이나 「호박」 등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농민들의 이주 상황 등은 그 대표적 사례로 꼽혀 왔다. 소설의 배경이 목포를 비롯한 전라1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또한 실감을 돋우는 한 요인이 된다. 따라서 박화성의 초기 단편은 1930년대 전라1도 지역의 생활상에 대한 일종의 충실한 보고서가 되고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수작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온천장의 봄」, 「춘소(春宵)」 등의 단편이 여기에 곁들여져 부수적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의 미덕에 비해 서사를 전개시키는 주인공들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문제이다. 사회주의 사상에 감화되었거나 접하고 있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은 대체로 너무나 단순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가령 표제작으로까지 쓰인 「홍수 전후」 같은 작품의 경우 주인공 가족의 비극을 이념에 거의 팔아먹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묘사의 핍진함마저도 없는 일부 단편은 평면적인 구호만이 남아 단편집의 전체적인 수준을 낮추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요컨대 실감 있는 묘사라는 첫째 미덕이 사라졌을 때 그의 소설은 매력을 거의 잃고 있는 셈이다. 「비탈」이나 「논 갈 때」, 「중굿날」 등 사회주의 지향과 평범한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장면이 들어가 있는 일련의 단편들이 있긴 하지만 완성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화성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윗길로 평가되는 이 초기 단편들은 결과적으로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나뉘는 면모를 보인다. 이것은 당대 사회주의 성향 작가들이 보였던 것과 대체로 유사한 면모이기도 하다. 그의 후기 단편 내지 장편이 이 한계를 극복했느냐는 문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지만 아직 읽지 못한 입장에서 속단하기는 이르다. 총 20권으로 된 그의 전집에서 초기 단편들은 열여섯 번째 권에 실려 있고 해방 이후 그는 통속성 위주라고는 하나 열네 편의 장편과 두 권의 단편집을 더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