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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4줄요약 -
메논 : 너 이거 앎?소크라테스 : 사실 하나도 모름... 알려주세요ㅠㅜ
메논 : 어휴병신 이거이거잖음;;
소크라테스 : 아닌데?(넌 이제 뒤졌다)
메논의 중심내용은 탁월함의 정의, 배움과 상기, 참인 확신과 인식에 대해서임.
우리가 살아가며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탁월하다는 말을 사용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 싶은데
정암학당의 정성 가득한 주석을 읽어보니 아레테의 의미가 되게 광범위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흔한 의미에 가깝다고 느껴졌고, 이것을 '탁월함'이라고 번역한 이유는 이 중심내용을 아우르는 단어를 살짝 돋보이게 고유명사화 시키면서도 의미적으로도 호환이 좋은 단어를 선택한 결과라고 생각됨.
참고로 정암학당 주석들을 살펴보면 특정 번역 단어들을 까내릴 때가 있는데, 아마 다른 출판사들의 번역을 저격한 게 아닐까 싶어서 재밌음. 내 눈에는 이런 자신감의 표출이 강자의 상징으로 보이기 때문에 괜히 신비주의스럽게 미니멀한 주석을 사용한 책들보다 호감임.
메논에서는 단어의 엄밀한 의미를 탐구하는 논의가 흥미로운데,
처음에 메논은 남자의 탁월함과 여자의 탁월함을 구분함.
남자의 탁월함 : 나랏일을 수행하는 데 능함, 나랏일을 수행할 때 친구들은 이롭게 하되 적들은 해롭게 하며, 자신은 이와 같은 일을 결코 겪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여자의 탁월함 : 집안일을 돌볼 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순종하면서 가정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것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지적은 '남자의 탁월함에서 남자를 빼면 뭐가 남는데?' 이거라고 생각함.
내가 보기에 메논이 정의한 '남자의 탁월함'은 '남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으로 표현 가능해 보임.
"비록 탁월함들이 많고 다양할지라도 모든 탁월함들은 동일한 어떤 하나의 형상을 갖는데, 이것 때문에 그것들이 탁월함들이고, 대답하는 사람은 이것에 주목함으로써 질문한 사람에게 탁월함인 바로 그것을 아마 훌륭하게 밝혀 줄 수 있을 걸세."
소크라테스는 남자의 건강과 여자의 건강, 남자의 힘과 여자의 힘, 남자의 큼과 여자의 큼도 동일한 의미이기 때문에 탁월함도 그러할 것이라는 논리를 펼침.
그 다음에는 메논이 정의한 여러 탁월함에는 정의와 절제라는 뿌리가 전제되어 있다고 피력함.
<< 이 접근은 탁월함 자체를 탐구하려는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다소 자가당착으로 보임. 결국 '탁월함 = 정의롭고 절제있음'이라는 건데 탁월함 자체에 대한 질문을 정의 자체와 절제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바톤터치한 것으로밖에 안 보임.
내 방식으로 살짝 변호해주면서 정리하면 소크라테스의 지적은 '남자의 탁월함이 그렇고 여자의 탁월함이 저렇다면, 이제 인간의 탁월함을 설명해봐'이고,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탁월함에 정의와 절제가 담겨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음.
좀전에 내가 탁월함을 역할을 잘 수행함으로 표현했었는데, 인간의 역할은 정의와 절제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보면 꽤 그럴듯해 보이기도 함.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뛰어난 사람일 것이네. 동일한 것들을 지닐 때 비로소 뛰어난 사람이 될 테니까."
<< 이게 뭔 소리지? 주석도 없음ㅅㅂ... '뛰어난'이 아레테, 즉 탁월함을 말하는건가? 따라서 인간의 탁월함에서부터 열등함까지의 수준을 줄세우려면 같은 척도가 기준점이 되어야 하므로 그걸 저렇게 표현한 거라고 해석함.
메논은 정의도 탁월함이고, 용기도 탁월함이며, 절제와 지혜와 대범함 등등도 탁월함이라고 나열하면서 주장하는데, 소크라테스는 '그래서 탁월함이 뭐냐고'라면서 형태나 색깔의 비유를 들어가며 답답해함.
갑자기 입장이 바뀌면서 소크라테스가 형태에 대한 정의를 성공적으로 내리면 메논이 탁월함에 대한 정의를 내리게 되었는데, 상황이 재밌음.
소크라테스는 형태가 '사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항상 색깔에 수반되는 것'으로 정의하지만, 메논이 색깔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은 채 형태의 정의에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함을 지적함.
<< 이 부분이 재밌는 점은, 내가 지적했던 바톤터치 얘기랑 동일한 구조임.
메논이 말싸움 꼬투리 잘 잡아내서 소크라테스가 살짝삐짐. 소크라테스가 형태나 색깔을 정의내리는 부분은 정암학당의 주석이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함.
<<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처음의 형태 정의에 색깔을 사용해 놓고는 이후 색깔 정의에 형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딱 봐도 서로의 정의에 서로가 의존하는 이상한 구조지만 메논은 이 논리를 동의해버림.
이제 메논 차례가 되어 탁월함 자체를 '훌륭한 것들을 반기고 또 힘을 갖는 것', '훌륭한 것들을 욕구하면서 획득할 수 있는 것' 이라고 정의내림.
여기서 '훌륭한'과 '좋은'에 대한 주석이 없는데, 두 사람이 은연중에 '훌륭한 것 = 좋은 것'이라고 합의한 점은 눈여겨볼 만함.
"자넨 정말로 어떤 사람이 나쁜 것들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욕구한다고 생각하는가?"
<< 개인적으로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불량식품 먹을 때를 상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음. 더 고상하게 말하면 '이성적으로는 결국 해롭다고 생각되지만, 감각적으로는 즉각적인 쾌락을 제공하는 것들'은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욕구할 때가 많지 않을까? 그러나 두 사람은 이 부분에 대한 고찰 없이 넘어가버림.
획득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이번에는 '정의롭고 경건하게'를 전제함.
적어도 소크라테스 관점에서 탁월함의 뿌리에는 정의, 절제, 경건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음.
'정의에 의한 것의 획득이 탁월함이면, 불의함에 의한 것의 비획득도 탁월함'이라는 구조는 정말 철학은 말장난이 아닌가 싶은데 합리적으로 보여서 참 골때림.
소크라테스는 메논의 대답방식은 근본적으로 탁월함 자체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재차 지적함. 결국 메논이 투정부림.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본문내용이 아니라 주석 125임. 소피스트의 논쟁술과 소크라테스의 엘렝코스를 비교했는데, 나도 대화편을 읽어가면서 소크라테스 이새끼 돈만 안 받지 소피스트랑 하는짓이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라고 의문이 있었기 때문에 유용했음.
"... 말하자면, 적어도 아는 것은 탐구하지 않을 걸세. 왜냐하면 이미 알고, 또 적어도 그런 사람은 탐구가 전혀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알지 못하는 것도 탐구하지 않을 걸세. 무엇을 탐구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니 말이야."
<< 이건 중요한 문장임. '무지의 지'에 의하면 우린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언가를 탐구하는 의미가 어디에 있는걸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음.
소크라테스는 영혼과 상기를 도입하여 절충을 시도하는데, 영혼은 불멸하며 이승과 저승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영혼이 배우지 않은 것은 없으며, 따라서 탁월함에 관해서든 다른 것들에 관해서든 영혼이 어쨌든 전에 인식한 것들을 상기할 수 있으며, 이렇게 상기하는 것이 배움이라고 주장함.
<< 이 주장은 애초에 받아들이기 비현실이지만,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영혼이 배우지 않은 것은 없다'는 전제 자체가 비약이 심하기 때문에 납득하기 어려움. 애초에 영혼의 배움에 대한 과정을 설명할 필요성이 있음. 적어도 이승에서는 배움을 상기하는 것이 최선이므로, 저승에서 어떤 매커니즘이 있을텐데, 너무 상상 속의 나래가 되지 않을까 걱정됨.
아무튼 배움은 상기 이론에 대해 하인에게 사각형과 넓이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솔직히 이 부분은 기초적이고 직관적이라서 쉬어가는 타임같이 느껴졌고 술술 읽혀서 편했음.
중요한 점은 기하학을 한번도 배운 적 없는 아이에게도 수학적 통찰이 존재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것은 문답형식의 대화를 통해 인식이 상기된 것이라고 주장함. 여기서 '참인 확신'과 '인식'은 후반에도 중요하게 다루니까 눈여겨볼 만함.
주석 166은 매우 중요함. 다른 주석들은 걸러도 이 주석만큼은 반드시 읽어야 함. '참인 확신'에 대해 더 정확한 이해가 가능함. 메논이 처음에 자신만만하게 탁월함에 대해 얘기한 것은 하인이 처음에 했던 틀린 확신(판단)에 대응되며, 하인이 소크라테스의 잇따른 질문에 의해 참인 확신을 가지게 되었듯이 탁월함에 대한 문답의 반복을 통해 참인 확신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
"따라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 속에는 그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참인 확신들이 있는 거지?"
<< 아까의 발췌문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답변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탐구를 해야하는 이유를 제시함. 덧붙여서 알지 못하는 것들을 탐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더 나아지고 더 남자다워지며 덜 게을러질 것이라고 주장함.(근거는 없음)
지금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을 탐구하고 상기하도록 노력하게 하는 미덕이 용기라는 내용도 은연중에 등장함. 나의 주된 관심은 플라톤의 미덕이기 때문에 이런거 잘 챙겨야 함.
"... 아니면 최소한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나 분명한가? 인식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사람에게 가르쳐질 수 없다는 사실 말일세."
<< 분명 소크라테스는 가르침은 없고 질문을 통한 상기만 있다고 했으며 인식은 상기된 것이라고 했는데, 어느샌가 둘을 통용하기 시작함.
88b에서 소크라테스가 절제를 어떤 것으로 부르냐고 물을 때 어떤 것은 뭘로 부르냐는 질문이 아니라 '절제 = 어떠한 것'으로 불리냐고 재차 확인하는 것으로 보임. 주석이 없어서 조금 헷갈렸음.
"그러므로 탁월함이 영혼 속에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고 필연적으로 유익하다면, 그것은 앎이어야만 하네. 왜냐하면 영혼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그 자체가 그 자체에 있어서 유익하지도 유해하지도 않지만, 앎이 더해지느냐 무지가 더해지느냐에 따라 유익하게도 유해하게도 되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이 논의에 따르면, 어쨌든 탁월함은 유익한 것이기 때문에 앎의 일종이어야만 하는 것이네."
<< 이렇게 보면 '무지의 지'는 정말 호환되기 어려운 녀석인 것 같음. 아무튼 대충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덕지덕지 이어 붙이더니(탁월함-뛰어남-유익함-앎에 의한 올바른 인도) 탁월함이 앎이라는 결론을 내림.
이제 논의는 '탁월함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가'로 넘어감. 여기서 아뉘토스를 대화에 참여시키는데, 심기를 거슬러서 좀 빡치게 함. 변론때 아뉘토스가 소크라테스를 고발하고 결국 사형당하는 걸 생각하면, 업보스택 중 하나로 보여서 재밌음.
결국 탁월함은 가르쳐질 수 없다고 결론 지어지고, 그래서 본성적인 것도 아니고 가르쳐질 수도 없다면, 실제로 나라를 올바르게 인도하는 정치가들은 뭐지? 하는 의문을 해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소크라테스는 '참인 확신'을 가져옴.
인식 = 목적지로 가는 길을 알고 있으므로(앎) 올바르게 잘 인도할 수 있음, 가르쳐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영혼이 배운 것을 상기하는 것
참인 확신 = 목적지로 가는 길은 모르는데 그 길이 어떤 길인지는 올바르게 확신함
이때 주석 242에서 참인 확신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유용함.
아무튼 탁월함은 본성적으로 있는 것도, 가르쳐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무언가에 대해 탐구하도록 노력할 때 확실한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얼렁뚱땅 결론지음. 그래서 결국 탁월함은 인식이 아니라 참인 확신의 일종이라는거겠지?
"메논, 나나 자네나 우리는 형편없는 사람들인 것 같네. 그리고 또한 자네를 고르기아스가, 나를 프로디코스가 충분하게 교육시키지 못했던 것 같네. 그러니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고,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더 뛰어나게 만들 사람을 찾아야만 하네."
<< 내가 주목한 문장은 이거임. 왜냐면 얘네들은 87e에서 지들이 탁월함에 의해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자뻑했었고, 그동안 가르쳐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도 자기들이 충분히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 같다고 성찰함. 나는 이 문장에서 '우리 자신'이 지칭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영혼'이라고 생각하는데, 파이돈에서 몸을 멀리하고 혼에 귀를 기울이는 내용으로 이어진다고 해석함. 그리고 더 뛰어나게 만들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결국 사람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것은 인식과 참의 확신인데, 소크라테스가 메논 따까리한테 기하학이라는 인식을 상기시켰듯이 본인을 뛰어나게 만들 수 있는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탐구하는 노력을 통해 올바른 인도를 달성하려는 목적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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