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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에는 교훈이나 해석 같은 게 거의 전무하다. 그냥 내 경험담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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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데미안』을 읽어보기 전부터 그 명성에 관심이 있었다. 오죽하면 그렇게나 오래 된 책임에도 초등학교 학우들도 몇몇 알고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엄마에게 이 책을 요구했는데, 감사하게도 엄마가 바로 내게 선물해주었다. 완독을 했을 때는 1학년 여름방학의 마지막 날이었고, 나는 지금 2학년으로서 다소 늦게 글을 쓰고 있다.
실은 부끄럽게도 초등학교 때부터 bl(ㅋㅋㅋㅋㅋ)에 관심이 있었다. (Bl이라는 게 무엇이느냐 하면, 간단히 '여성향 게이물' 정도라고 하겠다. 그렇다, 난 여성이다.) 유명한 작품이라면 다 읽어봤고, 고백하자면 몇몇은 불법으로... 여하튼 그런 시절이었다. 마침 그런 때에 데미안을 접한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프롤로그와 「두 세계」 에피소드부터 알 수 있었던 것은, 책 전체가 싱클레어의 주관으로 쓰여져 있단 것이었다. 비록 싱클레어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서술하긴 하나, 결국 싱클레어의 생각임은 변치 않는다. 요컨대 나는 이 책에서 싱클레어를 제외한 다른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1인칭으로 서술하는 작품은 수없이 많음에도 왜 내가 굳이 이 점을 언급했냐 하면,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데미안. 「카인」에피소드의 중반부터 등장해선, 느닷없이 싱클레어를 마구 휘젓는 그 데미안. 데미안은 작중 싱클레어가 언급하듯 꼭 완벽한 인물같다. 어른스럽고, 명랑하고, 똑똑하고, 그리고 자신감 넘치고. 고결한 태도와 고급스런 말솜씨는 덤이다. 하지만 도리어 너무 완벽하기에 한없이 비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완벽한 인물은 존재할 수 없다. 싱클레어가 좋은 예시이다. 그는 인간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물이고, 이는 이미 그의 사유가 전부 본인에 의해 '밝혀져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싱클레어가 겉으로 아무리 완벽한 아이었더라도, 우리가 그의 안을 훤히 볼 수 있는 이상, 그의 결점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렇다면 데미안이 어째서 그렇게 완벽하고, 이상적이게 보이는걸까? 그렇다! 우리가 데미안의 '안'을 모르기 때문이다. 데미안의 안이 아무리 썩고 병들었어도, 우리는 그의 완벽한 겉모습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데미안의 안이 병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즉, 겉면만을 바라보면 완벽한 인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외모를 설명할 때는 그저 어른스러워 보이고, 나비넥타이를 맨 소년이라는 최소한의 정보만 주었는데, 나는 작가가 고의적으로 우리가 데미안의 외형을 상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이리 적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데미안의 표면적 완벽함을 바탕으로 보면 그냥 훤칠한 미청년의 모습이 될 수도 있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려 하면 조금 더 많은 데미안의 외모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저 내 가설일 뿐이지만, 이런 시선으로 보니 문득 데미안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오, 데미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항상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키는? 음, 혈액형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발을 굴렸다. 머릿속에 열개가 넘는 데미안의 가상 모습들이 섞이기도, 합쳐지기도, 지워지기도 하며 나를 즐겁게 했다.
데미안의 마지막도 좋았다. 항상 싱클레어의 옆에서 실재한 듯 했지만, 어쩌면 그저 싱클레어의 망상이었을 수도 있고. 정말 완벽한 사람일수도, 내면에 무언가 응어리진 사람일수도 있고. 어쩌면 미래의 싱클레어일까? 그 어떤 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데미안은 사라졌다. 그야말로 신기루 같은 인물이다.
오히려 그것이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하지만 내 상상력은 극히 편협되어 있었다. 데미안이 뭔지도, 누군지도, 심지어는 실존하기는 하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나는 데미안을 실존하는, 단정하고 가르마를 탄 귀를 가릴 정도로 긴 칠흑색 머리와, 신비한 하늘색 눈을 지닌, 예쁘장하고 유능하지만 내면에 조금의 결점이 있는 미소년쯤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왜일까?
나는 데미안을 어느 순간부터 욕망하게 된 것이다. 앞에 내가 장황하게 써놓은 고찰들은 우습게도 욕망 앞에선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데미안을 이미 성적 대상으로 인식한 그 순간부터, 욕망이 이성을 앞서버린 것이다. 조금은 허탈했다. 내가 데미안을 완독하는 데에 걸린 그 많은 시간이, 고작 성애하기 위해서였다니! 막말로 데미안을 읽는 대신 불법 사이트에 들어가 bl이나 봤다면 벌써 몇십개는 봤을텐데! 분했다. 나 자신이 실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어쩐지 안심했다. 꿈 속에서 데미안에게 짓밟히던 싱클레어처럼.
물론 시간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데미안을 읽은 후로는 어휘력도 늘고, 무엇보다 bl같은 '욕망'을 셀링포인트로 하는 것들을 불호하게 되었다. 더불어, 문학을 예술로서 향유하는 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데미안은 그냥 재밌는 책이다. 내용과 쓰임새 자체가 재미있어서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게다가 다시한번 읽었을 땐 그제서야 싱클레어라는 인물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다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다만 내 마음은 변치 않는다. 데미안이랑 싱클레어랑 제발 사귀었으면... 그리고 에바 부인은 걍 나가 뒤졌으면... 유치한 마음이다.
닉 ㅅㅂ
글 재밌게 잘 쓰네ㅋㅋ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