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리크 호이어스는 왜 사데크 헤다야트를 읽게 되었나
1991년은 걸프전이 발발한 해이며, 노르웨이에선 올라브 5세에 이어 하랄 5세가 즉위한 해이다. 에리크는 그해 여덟 살이었으며, 부모님과 노르웨이 북부 로포텐 제도의 호수로 휴가를 떠났다. 아버지가 즐겨 듣던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과 어머니의 붉은 손톱이 기억난다고 했다. 어머니는 에리크의 금발을 쓸어 넘기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 넌 교향곡 따위를 듣는 사람은 되지 마려무나. 에리크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교향곡 때문은 아닐 것이다. 에리크의 아버지가 죽은 것은 1991년 4월 4일이다. 테헤란 출신의 작가 사데크 헤다야트가 죽은 날은 1951년 4월 4일이다.
물론 에리크는 그때 사데크 헤다야트가 누군지 몰랐다. 사데크 헤다야트도 몰랐고 카프카도 몰랐으며 플로베르도 몰랐고 브루노 슐츠도 몰랐다. 그렇지만 윌리엄 아이리시와 모리스 르블랑, 대실 해밋, G. K. 체스터턴에 대해선 잘 알았다. 에리크는 매일 밤 문고본 추리소설을 읽고 탐정이 되길 상상했다. 그의 아버지는 탐정 따윈 없다고 했다. 노르웨이에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단다, 아들아. 노르웨이에서 탐정이 할 일이라곤 잃어버린 개를 찾아주는 일뿐이란다. 심지어 너는 개털 알레르기가 있지 않니. 결국 에리크는 개털 알레르기 때문에 탐정을 포기했지만 책 읽기는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 그렇듯 에리크는 추리소설에서 고전으로 넘어가 토머스 하디 (『테스 』는 죽이는 작품이다), 톨스토이 (고루했다), 입센 (정신병자), 스탕달 (쥘리앵 소렐!)을 읽었고, 머리가 굵어진 뒤로는 누보로망 계열의 작가나 영미권의 포스터모더니즘 작가를 읽었다 (그것들 대부분은 완전한 시간 낭비였다). 그렇게 읽다 보니 에리크는 어느새 글을 쓰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뒤로는 카프카와 사데크 헤다야트의 작품만 정독했으며, 다른 작가의 책은 발췌해서 읽거나 참조만 했다 (독서는 시작할 때와 멈출 때가 있는 법이다). 에리크는 스물네 살에 첫 소설을 출간했으며, 『아프텐포스텐』지는 서평에 “이 신인 작가의 책은 도통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고 썼다. 그럼에도 에리크는 이듬해 두번째 소설인 『의인법』을 출간했고, 『볼덴스 강』의 문학 기자인 오름스비데는 『의인법』을 “카프카 이후 가장 카프카적인 작품”이라 평했다. 에리크는 그들이 뭐라든 상관하지 않았다. 악평과 혹평, 상찬과 열광이 파도처럼 오가는 문학판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소리다.
모든 작가 다 읽어본 것도 아니고
정지돈도 많이 읽어보지 못했지만
요즘 한국작가들 중에선 젤 눈에 들어오더라
정지돈이 탑급인 게 암울한 거 아닌가 싶어.
노벨상 부커상급 아닌이상 해외도 딱히 뭐...
정지돈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예리하누
정지돈이 쓴 소설 읽으면서 단 한번도 감동받은적이 없음
지돈아
지돈씨세요? 아니면 어려운 말만 늘어놓으면 다 넘어가는 허세충이신가
지도이햄... 많이 힘들지?
2010년대에 가장 중요한 한국 작가인게 사실. 다만 극복해야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는 생각
연남동 배회 좀 그만해라
웬 연남동?
형 힘내 형하고 전담빨면서 힙스터문학담론을나누고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