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말란 말이야!!"
오늘은 그런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지 말라고 외치는, 한 슬픈 살아남은 독일인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현대 희곡의 아버지는 삼대장이다 - 입센, 체호프, 그리고 스트린드베리.
희한하게 우리나라에서 3대 xxx 운운하는 것들은 일본에서 건너온 짭이지만,
희곡분야에서만큼은 3대 운운하는 것들이 현지에서부터 내려온 진통이다.
그리스 비극도 3대장이었고, 프랑스 고전극도 3대장이었고, 현대 희곡의 아버지도 3대장이다.
와! 현대 희곡 부럽다, 애비가 셋이라 좋겠어요?
하지만 패드립을 치기 전에, 사실 이러한 현대 희곡의 뿌리는 꽤나 복잡하다.
일단 애비는 셋인데, 그와 동시에, 현대 희곡을 정립한 2대 이론가는 또 따로 있다.
한명은 <잔혹극>이론의 앙토냉 아르토다. 이쪽도 모더니스트이므로 조만간 나올 거다.
그리고 다른 한 명, 아르토와 정반대되는 이론을 내세운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오늘 이야기할 <서사극>의 아버지, 베르톨트 브레히트다.
저 눈!!! 저 똘망똘망한 눈을 봐! 살인자의 눈이야!!
브레히트는 1898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신교도였지만, 어머니는 구교도였다. 다행히 종교적인 갈등을 겪진 않았으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성경과 늘 가까이 하고, 큰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다.
참고로 어릴 적 이름은 오이겐 베르톨트 프리드리히 브레히트다.
어릴 적 브레히트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카스파 네어라는 친구와 평생의 베프가 되었는데, 이 친구는 훗날 무대 미술 전문가로서 브레히트와 협업을 하게 된다. 중요하진 않으니까 까먹어라.
중요한 건 브레히트가 16살이 되던 해, 1차 대전이 터졌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독일 자체가 프로이센의 영향으로 군국주의적인 나라였는데,
전쟁이 터지니까, 친구들이 죄다 "정말 위대하십니다 독일 선생님! 저는 군대의 위대함을 몰랐습니다!" 를 외치며 전쟁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브레히트는 극혐하게 되고, 사고를 친다.
1차 대전에서 전사한 영국 시인 윌프레드 오웬의 시 제목으로도 유명한,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 구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가>를 주제로 에쎄이를 써내는 숙제에서
브레히트는 조까, 구린내나는 프로파간다 카악 퉷! 을 써내렸다가 퇴학 위기에 몰린다.
다행히 종교 선생의 만류 하에 퇴학은 면했지만, 이때부터 이미 브레히트의 반골기질은 돋보이기 시작했다.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아버지의 권유로 의학을 배우러 대학에 간 브레히트는 그대로 극작을 공부하게 된다.
이 당시 그는 프랑크 베데킨트, <룰루>연작과 <깨어나는 봄>을 쓴 독일 표현주의 극작가의 영향을 받으며 극작가를 꿈꾸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 새 커버린 브레히트는 1918년, 의무병으로 징집되지만, 전장에 투입되기 직전에 독일의 멸망으로 전쟁은 끝나고 말았다.
돌아온 브레히트는 이제 희곡을 발표하며, 극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1920년대에 공산주의자가 된다.
"반동이야! 전위대! 전위대!!"
전후 바이마르 공화국은 시궁창이였고, 혼란스러웠다.
로쟈 룩셈부르크가 암살당하거나 등의 일도 있었지만, 사실 브레히트 본인은 어찌되었든 계속 극장에서 다른 이의 연극을 올리거나, 자신의극을 쓰면서 삶을 보낸다.
특히 그는 여러 사람과의 협업을 하며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론 역시 쿠르트 바일의 음악과 협업하여 성공한, 오늘날까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불리는 <서 푼짜리 오페라>가 있다.
물론 이런저런 일들이 있지만, 생략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러시아 모더니스트들에게 스탈린이 있다면, 독일 모더니스트들에게 필수요소인 '그새끼'가 등장한다.
아돌프가 히틀러를 암살하기 전까지,
히틀러는 공산주의자도 때려잡고, 자신에게 반항하는 이들도 때려잡았다.
그리고 브레히트는 둘 다였다.
자살지망자는 아니었으므로 이제부터 10년이 넘는 브레히트의 유배 생활이 시작된다.
덴마크로 갔다, 스웨덴으로 갔다, 핀란드로 갔다, 미국으로 갔다, 나치를 피해 계속해서 도망갔다.
그의 친구였던 발터 벤야민은 결국 제대로 도망가지 못한 채 자살하여, 이러한 동지들의 죽음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 같은 시로 승화되기도 하였지만, 아무튼 계속 도망친다.
그러다가 마침내 히틀러가 죽고, 나치가 패망하였다. 미국에서 브레히트는 이제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미국과 히틀러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빨갱이 OUT! 을 외치는 점 말이다.
다시 브레히트는 스위스로 일단 갔지만, 독일인으로서 다시 독일로 돌아가야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독일이 둘이라 좋으시겠네여"
동독과 서독 중 브레히트는 택해야했다.
사실 둘 다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지만, 결국 동독에 극장이 좋고, 일단은 공산당 정부라서 동독으로 간다.
동독에서 겉보기에 브레히트는 일단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극작가였기에 지원도 대폭 받고, 일명 <베를린 앙상블>을 이끌고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듯했지만,
브레히트는 이미 학생 때 조까를 외치던 반골분자였다.
자연스럽게 동독 정부와도 마찰이 생기고, 작품 자체도 활동을 거의 안 하며 <부코프 비가> 같은 말년의 대작 시들을 쓰는데 몰두하던 끝에, 1956년 5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실 많은 모더니스트들이 그러하듯, 브레히트 본인도 딱히 좋은 인간은 아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수많은 이들과 협업을 했는데, 가끔 표절 시비도 있지만, 일단은 명확하게 표절로 판명된 바는 없고,
특히 말년엔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그의 극단원들을 착취했다는 의혹도 다수 있다.
무엇보다 성격 자체가 워낙 지랄맞은 모양이었던지, '수많은 협업자들'이 있었다는 건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일하는 걸 더 이상 못 버티고 도망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브레히트는 왜 유명하고, 또 왜 그가 현대 희곡의 2대 이론가가 되었는가?
우선 우리는 저 멀리, 암모나이트가 살던 틀딱들의 시대, 고대 그리스로 잠시 돌아가야한다.
애리스-터틀의 <시학>은 최초의 문예비평서이자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을 발휘하는 희곡 이론서이기도 하다.
카타르시스는 다들 들어봤을 거다.
대충 요약하자면, 다들 아는 거다. 책이나 영화를 보면, 다들 몰입한다. 이야기 속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동화되거나, 그를 통하여 자신의 감정을 해소한다.
이걸 풀어쓰고, 설명하며 희곡의 이론으로 삼은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였고, 분명 맞는 말이었기에 오랫동안 서구 연극을 지배하고, 오늘날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반기를 드는 것으로 등장한 이론이다.
한 마디로 과몰입하지 말라고 브레히트는 우리에게 삿대질하며 외친다.
어린 브레히트가 프로파간다 조까라고 외쳤다고 하지 않았는가?
브레히트가 볼 때, 기존의 연극들, 심지어 그 당시 붐을 맞이하려는 심리극같은 극들조차 일종의 프로파간다였다.
대중으로 하여금, 연극에 감정 이입하게 하면서, 실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감정적으로 자극하여 '생각하기'를 그만두게 한다,
이러한 주장 자체가 허황된 것은 아니란 걸 다들 알 거다.
오늘날까지도 미디어로 프로파간다를 많이 이용하는 건 사실이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감정을 통제했다."
브레히트는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것과 정반대를 주장하면 되지 않을까?
즉, 연극을 보면서 감정 이입하려는 사람들이 감정 이입을 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감정 이입으로 제대로 된 생각을 못하게 하는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비판적으로 모든 것을 보게 하자!
가령, 그의 대표작인 <억척어멈과 자식들>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어리석은 억척어멈을 보면서도 감정 이입을 하고, 그녀에게 공감하거나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다.
브레히트는 그럼 관객 옆에서 외칠 거다. 공감하지마! 불쌍하게 보지 마! 저 멍청이가 왜 저런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문제가 뭔지 생각해봐!
"연극이...내게 노래하고 있어!"
물론 사람이 아무리 똥 같은 걸 봐도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건 브레히트 본인도 잘 알았다.
그래서 중간중간 아무 관계 없는 노래를 삽입하고, 이 노래로 작중 인물들을 비판하거나, 무대 장치로서 난데없이 관객들에게 몰입하지 말라는 문구를 들이밀거나,
작중 인물이 갑자기 4의 벽을 뚫고, 관객들을 향하여 대놓고 정신차리라는 말을 함으로서 흐름을 끊는 방법을 쓴다. 일명 소격효과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티비 보는데 갑자기 하이라이트 직전에 일부러 채널을 끈다고 생각해보자.
일단 몰입은 깨진다.
'서사'극이라는 명칭 또한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브레히트 본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쭉 흘러가는 플롯을 거부하고, 마치 에피소드들의 나열 같은 띄엄띄엄- 서사로서 극을 진행함으로서 더더욱 관객이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애쓴다.
한 가지 오해를 방지하자면, 무작정 브레히트가 교조적으로 무엇이 옳다! 고 가르치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앞서 말했듯 브레히트는 프로파간다를 혐오한다.
물론 브레히트 나름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제시는 한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중요한 건 거기에 몰입하여 공감하는 건 제대로 된 것이 아니기에, 관객 스스로, 비판적으로 모든 걸 바라보고 생각해야한다.
"이 배역이 아니야!"
"어째서? 몰입이! 매쏘드는!"
심지어 브레히트는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자로서 배우들에까지 이러한 분열증적인 행위를 강조한다.
연기를 할 때조차 몰입하지 말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라고.
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
아이러니하게도 브레히트와 더블어 2대 이론가 아르토의 <잔혹극> 이론은 이성적인 브레히트와 달리, 역병으로서, 감정으로서 연극을 주장한다.
마치 니체가 예술에 대하여 아폴론적인 요소와 디오니소스적인 요소를 이야기했다면, 현대 희곡에서 아르토는 디오니소스적, 그리고 브레히트는 아폴론적 요소다.
물론 이러한 서사극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사실 브레히트의 극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는 이들이 더 많을 테니까.
그래도 제법 성공적인 시도들도 많고, 브레히트도 다작을 하면서도 <코카서스 백묵원>이나 <억척어멈> 같은 걸작들, 그리고 많은 괜찮은 시들도 남겼다.
거기에 이러한 이론과 시도들은 오늘날까지도 현대희곡의 중요한 이론으로서 자리잡고, 여전히 많은 극작가들이 쓰고 있다.
그가 원했던 대로 100프로 성공은 아니었지만, 2대 이론가라는 게 과장은 아닐 정도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곳에서 적용된다.
그러니까
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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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신이 나타났네 브레히트가 나올줄이야 근데 민음사 시인선 브레히트편 봤는데 시는 내 취향아니었음 근데 희곡은 개재밌었고
낯설게 하기가 ㄹㅇ 개지리는 기법인거 같음. 어쩌면 예술의 가장 궁극적인 원칙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분량으로 보아하니 좔호프좌께서 제법 애정있는 인물인 모양
ㅋㅋ 그렇네
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
이거 존나 야갤러임
소격효과 만든 사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