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도덕철학은 왜 어이없는 책상머리 철학자의 망상인가?


칸트의 도덕철학은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지나치게 단순한 공식에 끼워 맞춘 이론에 불과하다. 순수이성이 인간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칸트의 생각은 실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하면 금세 그 한계가 드러난다. 칸트는 인간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행동한다고 믿었으나 그와 같은 것은 칸트같은 극히 보기 드문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며 현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인간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순수이성이 아니라 몸에 밴 성격과 타고난 본능이다.



인간은 내면의 충동이나 기질에 따라 먼저 움직인다. 이성은 행동이 끝난 뒤에 그 행동이 왜 옳았는지 구차하게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변호인 역할을 할 뿐이다. 순수이성으로 지식을 쌓아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당장 급박한 상황이나 본인의 이익이 침해받으면 평소의 순수이성은 내동댕이치고 본능적인 감정에 휩쓸린다. 칸트는 도덕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절대 법칙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역사를 보면 도덕은 상황에 따라 변해왔다. 도덕은 특정 집단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만들어낸 일종의 '생존 규칙'이다. 먹을 것이 부족한 유목 민족의 도덕과 풍요로운 정주 민족의 도덕이 다른 이유는 각자의 생존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당연했던 미덕이 오늘날에는 범죄가 되기도 한다. 도덕은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성과 환경에 따라 계속 변하는 유기적인 산물이다. 칸트는 도덕적으로 살기 위해 보상이나 처벌, 혹은 신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진짜 도덕적인 사람은 "이게 옳으니까 해야지"라고 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생각할 틈도 없이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습관이 도덕이다. 교육은 학생에게 쓸모없는 독서나 도덕 책을 읽도록 하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군사훈련, 체육활동, 올바른 행동을 반복하게 하는 체험의 과정이어야 한다. 습관이 된 도덕은 외부의 감시가 없어도 저절로 작동한다.



칸트는 책상머리 교육이 낳은 전형적인 철학자인데 프랑스 혁명 같은 큰 사건을 '이성의 승리'라고 찬양하는 심각한 망상을 범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아무 성과도 없는 대량 학살, 무질서한 폭동과 내부 분열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끝에 결국 사회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집권하여 독재체제로 귀결되었다. 칸트 식의 합리주의 교육은 기대와는 달리 심각한 부작용을 만들어왔다. 행동은 바뀌지 않는데 머릿속에 쓸모없는 독서로 암기력만 늘려주는 기폭제 역할을 해서 독일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도덕을 문제 풀이처럼 배우다 보니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천박한 인격의 소유자들이 많아진다. 오히려 영국은 칸트식 책상머리 도덕교육이 아니라 이와 정반대로 스포츠, 삶의 체험 속에서 도덕을 기른다. 삶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상황에 대처하는 올바른 태도와 성품이다. 쓸모없는 독서와 책에만 매달리는 교육은 인간의 내면을 다듬는 훈련을 소홀히 하여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칸트의 철학은 인간이라는 복잡한 생명체를 종이 위에 그린 도형처럼 단순하게 취급한 이론 놀이에 불과하다. 인간은 차가운 논리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과거의 문화와 습관, 그리고 시대의 감정에 반응하는 살아있는 존재다. 이를 무시한 칸트의 도덕 체계는 현실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서재에서 만들어낸 망상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