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1월 9일
아폴리네르는 오랜 지병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빈 왕좌를 차지하기 위하여, 다다 물을 먹은 후배들은 스스로를 '초현실주의자'라고 칭하며,
아폴리네르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하였다.
대체 '초현실주의'란 무엇인가?
위키켜라----는 구라고
일단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사실 여러 이견들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모든 이들은 '현실'을 그리고 싶어한다.
물론 예술은 언제나 '현실', 진짜로 있는 것, 실체를 담고 싶어했기에, 이건 당연하다.
하지만 리얼리즘 같은 사조와 달리, 초현실주의자들은 당연히 눈에 보이는 '현실' 같은건 부정한다. 그 너머의 진짜에 닿고, 그걸 표현하기를 원한다고 외쳤다.
물론 이런 것도 사실 예술가들에겐 당연한 소리다.
진짜가 뭔데 씹덕 쉐리야
일단 대체적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은 아폴리네르가 그러했듯, '자유'의 해방을 원했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상상력. 상상에 자유를 부여하라! 도덕적인 척 하는 사회 조까 난 예술가야!
아폴리네르가 괜히 사드를 복권시키려고 노력한 게 아니다. 일단 사드의 막나가는 무신론이나 염세주의에서 '자유'를 해석하기도 했으니까.
이와 더불어
상당수 초현실주의자, 특히 이제 나올 중심 인물인 앙드레 브르통이 주목한 것은 그 당시 붐을 일으키던 한 섹무새의 무의식 이론이었다.
"섹스! 섹스! 섹스! 세에에에에에엑스!!"
의식 너머 거대한 무의식이 있다. 그럼 이걸 표현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이러면서 자동기술 같은 기법 등이 탄생한다. 말 그대로 무의식을 표현하려는 시도들.
내가 이 니세모노-현실에선 결코 알지 못하는 혼모노의 정신과 꿈을 표현하자!
모두가 사이좋게 지낸다면 참으로 행복하겠지만
명예도 모르는 더러운 오크놈들과 손을 잡을 수는 없듯,
초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 또한 진정한 아폴리네르의 후계자는 자신 뿐이라는 생각으로, 곧 거대한 패싸움에 들어간다.
그 결과, 1924년, 두 개의 초현실주의 선언이 거의 동시에 발표된다.
먼저 선수를 친 것은, 코가 인상적인 이반 골이었다.
프랜시스 피카비아, 피에르 르베르디, 주세페 웅가레티 등이 그와 함께했고, 무엇보다 그에겐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바로 차라 말이다.
와! 샌즈 파피루스 PPAP~ 언더테일 아시는구나!
트리스탕 차라다.
이 기인은 우선 다다의 <다다 선언>을 작성한 중심적인 인물이었고, 이오네스코 같은 또라이들의 고장 루마니아에서 산지직송된 또라이 중의 또라이였다.
당연히 또라이스러움을 겨루는 초현실주의에선 큰 힘이 되어야했다.
"질 수 없지. 가라, 로베르!"
이반 골에게 선수를 빼앗긴 앙드레 브르통은 곧바로 오늘날 유명해진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다.
그와 함께하는 이들 또한 많았다.
루이 아라공이나 폴 엘뤼아르 등이 참여했고, 무엇보다 앙드레 브르통의 비밀무기가 있었다.
"데스 데스!"
아편 두 갑은 빤 것처럼 맛이 좀 간 것 같지만
초현실주의의 비밀병기 - 로베르 데스노스-가 브르통파에 동조하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이 환호하고, 무수히 악수를 청하는 자동기술법의 창시자 중 하나이자 대가였다.
서로가 진짜 초현실주의파라고 주장하는 이 싸움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대로 이반 골-파와 브르통-파는 샹젤리제 극장에 모여선, '초현실주의' 그룹을 차지하기 위하여, 패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데스노스 같은 비밀병기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마치 장판파 앞의 장비 같았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이반 골을 지지하는 이들보다, 브르통-파의 숫자가 월등하게 많았다.
이 싸움에서 브르통-파는 승리를 선언하였고, 오늘날까지 <초현실주의 선언>은 브르통파가 계승하며 내려오게 된다.
초현실주의의 '교황'으로 등극한 앙드레 브루통은 과연 초현실주의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었을까?
한 가지 명심하자.
이 세상에서 죽어도 협력할 수 없는 두 부류가 있다.
철학자와 예술가들이다.
물론 초현실주의 자체는 미술에도 퍼져나갔고,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브르통은 교황답게 모든 것의 통치를 원했고,
이에 반발하며 점점 초현실주의 그룹 자체는 서서히 와해되어간다.
결정적으로 브르통의 언 리미티드 빠워- 정치권력욕-이 문제였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의 정치참여.
브르통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트로츠키 계열 공산당 당원들이었는데,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외쳤다.
이에 반발하며 브르통의 충실한 비밀병기 로베르 데스노스가 초현실주의 그룹을 탈퇴하고, 2차 대전 중에 나치에게 잡혀 수용소에서 죽는다.
그리고, 당시 러시아에선 스탈린이 집권하였으므로, 곧 스탈린 계열 공산당과 알력다툼을 하는 가운데
여기에서도 의견이 갈리며 점점 초현실주의 그룹은 무너진다.
첫번째 초현실주의 선언 이후, 2차례 더 브르통은 선언을 발표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흔들리는 그룹을 다시 재봉합하기 위한 시도에 불과하였다.
"내가 초현실주의다."
초현실주의를 상업적으로 이용해먹는 달리를 추방하기도 했다.
달리는 자신이 초현실주의라며 간지나게 답하였지만, 사실 이론적으로나 초현실주의 내에서나 브르통은 초현실주의의 교황이긴 했다.
아무튼 간에, 다다와 초현실주의는 오늘날까지도 알게 모르게 많은 곳에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작품들이나 미술작품 등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물론 여기에선 브르통 파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이야기했지만, 초현실주의 미술가나 다양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까지 합하면, 정말로 크게 성공했다.
물론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그룹은 그에 비하면 꽤나 초라하게, 끝내 브르통의 죽음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페르난도 아라발의 회고에 따르면, 젊은 그가 파리 유학을 갔을 당시에도 늙은 교황은 자신의 그룹들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명심하자 시스의 말로는 행복할 수 없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그러고 보니 아라발도 그쪽 계열임? - dc App
하긴 - dc App
무지 복잡하네 존나 자유분방하게 작품쓰는새끼들같은데 사조로 저렇게 치열하게싸운게
황제님 보고 개추줌 - dc App
추천할만한 건 없음? 시말고
와 2016년 거의 최신 번역이네 ㄱㅅ
루이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도 비교적 최근에 번역. 이론서로는 일단 당연히 초현실주의 선언. 분석서로 핼 포스터의 강박적 아름다움. 한국 분석서로 이름이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초현실주의와 몸의 상상력' 이런 거였음. 소설은 브르통의 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