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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요약 : "소피스트 일짱이랑 키배떠서 개쳐바른 썰 풀어본다ㅋㅋ"
무엇으로 영혼이 양육되죠? -> 그야 물론 배움이겠지. -> 어쩌면 이들 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자기들이 팔려고 내놓은 것들 중 어떤 것이 영혼에 이로운지 해로운지 모르고 있을 거야.
<< 물론 주관적인 사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유효하겠지만, 충분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들의 주장을 이해하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사고할 수 있을거임. 이라고 코멘트 적어놨는데 다음 내용에서 바로 언급해줌;; 굿잡
초반에 소크라테스가 덕은 가르쳐줄 수 없다고 얘기하는 부분은 메논의 내용이 연상됨. 작중의 소크라테스 나이는 메논에서의 소크라테스가 더 늙어 보이는데, 내용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메논은 충분한 논의를 통해 간신히 결론을 내린 반면 프로타고라스에서는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진채로 간결하게 주장하기 때문에, 메논 이후의 관점으로 느껴져 흥미로움.
프로타고라스의 대답에서 주목할 부분은 덕이 천성적인 것이 아닌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임.
정말 천성적인 것(못생겼거나 키가 작거나 힘이 약한)들이 나쁘다고(모자라다고) 화를 내거나 훈계하거나 징계하지 않으며, 오히려 측은하게 여긴다.
반면 훈련과 가르침에 의해 사람들에게 생겨난다고 생각되는 좋은 것들과 관련해서는, 이것들과 반대되는 나쁜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와 징계와 훈계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시민적 덕에 반대되는 모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 덕을 중요시하는 이시대 사람들의 범죄에 대한 처벌의 마음가짐이 낭만있음. 범죄행위 자체에 주목하는 우리들을 저격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임.
"부정의한 행동을 한 사람을 징계할 때 누구도 그가 부정의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서 그것 때문에 징계하지는 않지요. 짐승처럼 비이성적으로 징벌을 하려는 자가 아니라면 말이죠. 이성적으로 징계하려는 자는 과거의 부정의한 행동 때문에 징벌을 하는 것이 아니라 - 행해진 것을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 미래를 위해서, 부정의한 행동을 한 사람 자신도 다시 부정의한 행동을 하지 않고 그가 징계 받는 것을 본 다른 사람도 그러지 않도록 징계를 하는 거지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덕이 교육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어쨌든 예방을 위해서 징계를 하는 거니까요."
와우,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메논에서의 논의를 저격하는 듯한 느낌을 줌.
나라가 있으려면 모든 시민이 거기에 참여해야 하는 하나의 어떤 것, 즉 인간으로서의 덕(정의와 분별과 경건함)이 있다면,
누구든 다른 어떤 것을 배우거나 행하기를 원하면 이것을 가지고 해야 하고, 이게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하며, 여기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 징계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때까지 가르치고 징계해야 하며, 징계를 받고 가르침을 받아도 듣지 않는 사람은 고칠 수 없는 자라는 이유로 나라에서 추방하거나 사형시켜야 한다면,
이것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인데도 그 중요한 것을 자식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냐? 같은 느낌.
그리고 실생활에 녹여들면서 설명하는데, 정리하면 문학과 음악과 체육 등등도 덕에 대한 가르침을 내재하고 있다는 느낌.
뛰어난 아버지의 아들들이 못난 경우가 많은 이유에 대한 설명은 아울로스 연주자와 재능에 비유했는데, 이것은 간접적으로 덕의 천성적인 부분을 긍정해버리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에 바람직한 대답이 아니라고 생각됨.
이 다음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질문도 메논이랑 연결되어 있음. 이제 확신하지만, 메논과 프로타고라스는 짝꿍임.
프로타고라스는 덕은 마치 얼굴과 같으며, 정의와 분별과 경건함은 눈코입에 비유함.
지혜는 덕의 가장 큰 부분이며, 용기 역시 덕의 부분이다. 용기는 있으면서 부정의한 경우도 있다.
여기서 만약 덕의 부분 중 하나가 다른 하나와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경건은 정의로운 종류의 것이 아니며, 따라서 부정의한 것이고, 정의는 불경한 것인가? 라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언뜻보면 궤변같아 보임. 여기서 주석 102가 중요한데, 모순과 반대를 혼동한 오류가 아니라 그저 이분법 전제로 접근한 결과라고 설명함.
강아지는 포유류이지만 조류가 아니므로 부조류이자 부파충류이자 부양서류라고 한다면 묘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틀린 소리는 아니긴 하다고 느껴짐.
그렇다면 이렇게 접근해볼까? 강아지가 말티즈라고 해서 부골든리트리버이자 부치와와이자 부포메라니안이라고 한다면? 부무생물이자 부액체이자 부기체라고 한다면? 의미적으로는 틀린말이 아니긴 한데 뭔가 거부감이 생기긴 함.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돌맹이는 선한가 악한가? 정의로운 종류인가 부정한 종류인가? 하면 그런 범주로 집어넣으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짐. 이런 종류의 궤변이 아닐까?
여기서 프로타고라스의 지적은, 비슷한 점이 좀 있다고 해서 '비슷한 것들'이라고 부르고, 비슷하지 않은 점이 좀 있다고 해서 '비슷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는 점임.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경건 사이에 어떠한 작은 비슷한 점도 없다는 듯이 반론하며, 여기서 이 대화주제는 보류상태가 되어버림.
다음 대화주제는 어떻게 보면 말장난처럼 보일 정도임. 하나하나 짚어 보면,
a. 지혜는 어리석음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b. 사람들이 바르고 유익하게 행동할 때,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면서 분별 있게 처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c.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은 분별 있게 행동하는 것과 반대이다.
d. 어리석게 행해진 것들은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행해진 것이고, 분별 있게 행해진 것들은 분별로 인해서 행해진 것이다.
e. 힘으로 인해서 어떤 것이 행해지면 그건 힘세게 행해진 것이고 약함으로 인해서 행해지면 그건 약하게 행해진 것이다.
f. 어떤 것이 동일하게 행해지면 동일한 것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고, 반대되게 행해지면 반대되는 것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다.
g. 반대되는 것들 각각 하나에 반대가 하나만 있고 여럿이 있는 것은 아니다.
h. 반대되게 행해지면 반대되는 것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다.
i. 어리석음은 분별의 반대이다.
j. 결과적으로, a와 i는 g에 의해 모순이다.
주석 103은 주요 단어들의 그리스어와 어원을 알려줘서 유용하지만, '처신하다' 번역에 대해서, '동일한 것'에 의해서와 '동일함'으로 의해서의 번역 선택에 대해 조금 더 디테일한 주석이 필요함.
따라서 논증의 엄밀한 분석은 번역본만으로 힘들지만, 큼직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는 있음.
d에서 A하게 행해진 것들은 A에 의해서 행해진 것, g에서 반대되는 것들은 일대일 대응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어떻게' 행해진 것들은 바르게, 유익하게, 분별 있게, 어리석게, 힘세게, 약하게, 빠르게, 느리게, 동일하게, 반대되게 등등이 있음.
이미 이런 나열들 속에서 이분법이 전제되어 있는데, 이런 표현방식은 파이돈에도 있고, 메논에도 있었음.
나는 '힘세게'와 '약하게'를 1비트 이진법이 아니라 엄밀한 관점에서 '힘의 수치'로 한꺼번에, 무한하게 묶여질 수 있다고 보는데,
사실 힘세게<->약하게, 빠르게<->느리게, 뜨겁게<->차갑게는 너무 러프하고, 이시대 사람들의 구전생활에 의한 엄밀함의 부족으로 발생하는 문제점이라고 생각됨.
즉 일상적으로 대화하는 데에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이지만, 이런 단어들을 엄밀한 논증에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음.
문제는 이런 패턴이 대화편 전반에 깔려 있다는 점인데, 모든 논증들을 하나하나 구분하기가 너무 번거로움. 이러한 측면 때문에 말장난처럼 보이는 경우가 꽤 있음.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빠르게'와 '느리게'를 극단적으로 접근해 보자. 그럼 '존나 빠르게'와 '존나 느리게'가 되겠지. 그런데, '존나 빠르게'와 '가만히'는 반대가 될 수 없을까?
왜냐하면 '존나 느리게'와 '가만히'는 실제로 구별하기 힘든 수준으로 유사해 보이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존나 느리게'는 적어도 '움직이는' 거고, '가만히'는 '정지한' 거기 때문에 둘은 '움직임'과 '안 움직임'의 관점에서 반대라고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느낌의 언어유희가 대화편 전반에 깔려 있다는 거임.
그렇다면, a~j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어원적인, 엄밀한 정신의 상태에 대한 관점에서 어리석음과 분별은 반대라고 볼 수 있으며, 관용어적인, 표면적인 관점에서 지혜와 어리석음은 반대라고 여길 수 있을거임.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예를 들어 (2,2)에 어리석음이 위치해 있다면, x축 대칭(반대)인 (2,-2)에 분별이 있고 y축 대칭(반대)인 (-2,2)에 지혜가 있다는 의미이며, 이것을 3차원으로 확장하든 축이 아니라 임의의 직선이나 평면(3차원에 대해)을 기준으로 대칭을 하든 그것은 무한하게 표현 가능하기 때문에, g는 '관점'을 무시한 명제이므로 나는 명제g를 척결시킬 거임. 더 나아가서 나는 g를 '반대는 관점의 종류에 따라 무한하게 존재 가능하다' 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함.
그리고 시의 해석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여기서 주석을 보면 '탁월함'에 대한 그리스어가 asthlos, agathos인 한편 메논에서는 '탁월함'을 agathon과 구별하기 위한 aretē의 번역으로 사용함. 의미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오류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같은 정암학당 번역서인데 서로 다른 번역어를 선택해버리면 번역어의 상징에 혼동이 오기 때문에 이 부분은 미리 번역자들끼리 통일성 있게 합의해줬으면 함...
돌고돌아 소크라테스는 주요 대화주제를 다시 정리해서 꺼냄.
"... 지혜와 분별과 용기와 정의와 경건, 이들은 하나의 것에 대한 다섯 개의 이름인지, 아니면 어떤 고유한 본성의 것이 그 이름들 각각의 근저에 있어서, 각각이 자기 자신의 기능을 가지며, 그것들 중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닌 것인지요? 선생님은 이것들이 하나의 것에 대한 이름들이 아니라, 이 이름들 각각이 고유한 것에 적용되고, 이것들 모두는 덕의 부분들인데, 금의 부분들처럼 서로서로 비슷하고 그것들을 부분으로 가지는 전체와도 비슷한 것이 아니라, 얼굴의 부분들처럼 그것들을 부분으로 가지는 전체와도 비슷하지 않고 서로서로도 비슷하지 않으며, 각각이 고유한 기능을 가진다고 주장하셨죠. ..."
이후 '즐거움 자체가 좋은 것인가?'에 관한 대화에서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진정한 즐거움과 괴로움, 이로움과 해로움에 대해서임.
"... 예컨대, 먹을 것이나 마실 것, 혹은 성적 쾌락이 즐거워 종종 그것에 굴복하고, 그래서 해로운 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는 경우 말이에요."
술담배나 자극적이고 달콤한 음식들이 나쁜 이유는 당장의 즐거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나중에 병이나 그 밖의 것들 때문에 나쁘다는 것,
반대로 신체단련이나 쓴 약, 절개술 같은 치료가 좋은 이유는 당장 극도의 고통과 아픔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나중의 건강이나 몸의 좋은 상태 때문이라는 것.
즉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부분이 꽤 인상적임.
아무튼 즐거운 것은 (그 자체의 관점에서) 좋은 것이고 고통스러운 것이 나쁜 것이라는 결론을 낸 후에 나오는 내용도 메모해 둘만함.
"... 괴로움 없이 즐겁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든 행동은 훌륭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훌륭한 일은 좋고 이득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나쁜 것들을 향해서는 누구도 기꺼이 나아가지 않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향해서도 그렇고, 좋은 것들 대신에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향해서 가기를 원하는 것은 모름지기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이 아닐 테지요? 또 두 가지 나쁜 것들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을 때 더 작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데 더 큰 것을 택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와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무서움과 두려움 얘기를 꺼내자마자 이 설계가 용기를 설명하기 위한 밑작업이었구나 직감해서 감탄했음. 실제로 이후에 용기 얘기를 꺼냄.
프로타고라스를 읽어 가면서 내가 느낀 용기를 내 식으로 표현하면, '지혜를 통해 판단된 선(좋음)을 아무리 큰 두려움이 가로막더라도 기꺼이 지향하며 행동에 옮기는 것'이라고 느껴짐.
"... 무언가를 무서워하면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한다는 데 동의했고, 무언가를 나쁘다고 생각하면 누구도 기꺼이 그것을 향해서 가거나 그것을 취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으니까요."
"... 누구도 자기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서 나아가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진다는 것이 무지라는 게 밝혀졌으니까요."
"그럼, 비겁한 사람들은 전쟁에 가는 것이 그런(훌륭하고 좋고, 즐거운 것이기도 한) 줄 알면서도, 더 훌륭하고 더 좋으며 더 즐거운 것을 향해서 가지 않기를 원하는 건가요?"
"용기 있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더 훌륭하고 더 좋으며 더 즐거운 것을 향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무서운 것들과 무섭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지혜가, 이들에 대한 무지와 반대되는 것으로, 용기이지요?"
내가 정의내린 용기와 소크라테스가 설명하는 용기는 읽다보면 마찰이 생김.
소크라테스의 설명은 엄밀히 말하면 투박하고 꼬여 있는데, 그 원인은 긍정적인 문구들을 한쪽에, 부정적인 문구들을 반대쪽에 뭉뚱그린 다음 접근하는 방식 때문에 혼선이 생긴다고 생각함.
무서움(두려움)은 나쁜 것이므로 아무도 지향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서운 것들과 무섭지 않은 것들에 대한 무지 때문에 비겁한 사람들이 전쟁에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 확실히 명시된 부분은 이 부분인데, 나의 용기는 '지혜가 인도하는 선'을 따라가다가 마주치는 큰 두려움들을 뚫고 지나가는 힘과 같지만, 소크라테스는 애초에 용기가 있든없든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을 향하지 않는다. 즉 회피한다. 이거임. 문제는 전쟁에 나가는 경우 생기는 두려움은 적의 공격에 고통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텐데, 이 부분에 대한 얘기는 나와있지 않음. 용기있는 자들이 전쟁에 가기를 원하는 이유가 '전쟁을 나가는 것은 훌륭하고 좋으며, 즐거운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라는데, 미친 전쟁광 버서커같은 말을 해대니까 납득하기 살짝 어렵긴 함. 이게 내가 아까 지적한 혼선임.
중요한 점은 '무서운 것들과 무섭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지혜가 용기'라는 결론이겠지. 아마 다른 미덕들도 지혜로 표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소크라테스는 이런 덕이 앎의 일종이므로 가르쳐질 수 있다고 최종정리함. 여기서 메논과 파이돈으로 가서 배움은 상기라던가 영혼에 대한 내용으로 확장 가능하겠지.
아무튼 여기서 나오는 프로타고라스라는 인물의 언변이 꽤 매력적이고, 전반적으로 크리톤 다음으로 잘 읽은 대화편이었음.
여러모로 흥미로운 대화편임 ㄹㅇ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