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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는 시대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가장 효율적인 생태계다.
유행은 계절처럼 변하기 마련인데, 이것은 자기계발서라는 찻잔 속에서도 일어난다.
팬데믹 시절엔 무책임한 위로를 '공감'이라 포장해 팔더니, 어느새 '사회적 지능'이라는 허울을 쓴 처세술이 그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이 모든 소음의 종착지는 결국 하나, 자유. 그중에서도 '경제적 자유'로 향하는 길이 아닐까?
예술로서의 순수성을 논하는 독서 갤러리의 논쟁은 현실의 시장에선 무력하다.
대중의 책장은 지식의 축적보다 욕망의 증명을 향해 있기 때문에.
베스트셀러 순위와 SNS는 이미 욕망으로 도배된 지 오래다.
그들의 욕망이 세속적 성취를 향해 있다면, 갤러리의 욕망 또한 활자라는 매질을 통한 지적 유희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닌, 그저 서로 바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재테크와 자기계발서라는 노골적인 욕망의 텍스트들을 거부감 없이 탐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저자만 바뀐 채 반복되는 투자의 기술과 자산 관리의 외침들은 내 인상을 찌그러지게 만든다.
어떻게 투자해야하는가? 어떻게 기존 자산을 관리해야하는가?
아무리 손에 잡히는대로 읽어나가는 사람이지만 질리기도 하는 법이다.
삶이 축적될수록 경험은 견고한 편견의 성벽을 쌓는다.
내가 이 지루한 무색무취의 문장들을 꾸역꾸역 읽어 내려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 성벽에 균열을 내줄 자기파괴적인 탐구에 가깝다.
그리고 최근 나의 편견을 깨버린 책이 하나 읽었다. 뜻밖에도 가장 진부한 단어인 ‘믿음’을 들고 나온 책이다.
자기계발서에서 경제라는 장르는 대개 차가운 지표를 해독하거나 나약해진 의지를 바로잡는 매뉴얼의 영역이라 믿어왔다.
실제로 그간 목격한 책들 역시 숫자와 효율이라는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작동했다.
그러나 이 책은 궤를 달리했다.
이 문장들이 집요하게 설파하는 핵심은 경제학보다는 신학에 가까운 논리니.
‘마음이 평온해야 부의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명제 자체는 사실 진부한 마인드셋의 변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당혹감은 그 당위가 아니라, 결론과 그 과정에 있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마주한 것은 한 인간의 기이한 투신이었다.
주인공(저자라고 해야할까? 사실 책을 읽다보면 이 부분도 혼란이 온다)은 궤도를 이탈해 생업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주인공이 알현하려는 대상은 ‘행운의 여신’이라 칭송받는 존재, A다. 다른 이름이 있었는데 A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듯 하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에 가장 세속적인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비현실적인 신탁을 구하러 떠난 것이다.
누군가는 신탁이라는 표현이 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신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마주한 것은 경제적 지표가 아니라 한 인물의 신화적 연대기에 가까웠다.
이 책을 펼치자마자 주인공은 A에 대해서 설명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A의 사주를 봤더니 세상을 바꿀 운명을 타고 났으며....... 현재 정재계의 주요 인사들은 A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으나 1년에 한번 알현하기도 어려운........."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소설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분명 책이 꽂혀있던 곳에는 '경제/자기계발'이라는 푯말이 있었는데도 직원의 실수가 있었는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아니면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저자의 해설이 나오며, 다음 이야기가 나와서 교훈을 주는 종류의 책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의 그런 예상을 가볍게 웃돌았다.
부의 복음을 전파하는 주인공은 이내 '과학'이라는 이름을 빌려, 그 기묘한 믿음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A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얻은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부터, 자신이 어떻게 A와 만나서 성공했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책의 뒷면을 봤다.
'더 해빙.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 16,000원'
결국 책은 끝까지 읽었다만, 내용은 앞서 말한 것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A라는 인물의 미스테리와 주인공의 신앙에 가까운 설득. 이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사례(실제 사례라고 얘기하지만 정확한 시기나 이름은 적혀있지 않다).
나는 다시 한번 책의 뒷면을 바라봤다.
16,000원 옆으로 적혀있는 50만부 돌파라는 글자였다.
'세상이 나에게 거대한 몰래 카메라를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내 정신이 이상해진건가?' 하는 의심을 하면서 내린 결론이 있었다.
만약 이 책이 소설이었다면 이렇게 재밌게 읽지는 못 했을 것이라고.
물론 일반적인 경우의 재미라기보다는, 어이가 없는데 계속 보게 되는 양가적인 무언가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경제학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
문장은 쉽게 쓰여지고 가독성이 좋았다만 그런 점들이 오히려 이 책의 기괴함을 더욱 가속시켰다.
마치 러브크래프트가 설명했던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를 직접 겪은 것만 같다고 해야할까.
다만 나는 거기서 재미를 느꼈다는 차이가 있겠다.
자기계발서라는 장르를 들고서 이 정도로 경제나 자기계발에 상관없는 자기 얘기를 주절거리니 안 볼 수가 없었다.
혹여나 이 글을 보고 읽을 생각이 들었다면,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불쏘시개가 맞다.
이런 저런 자기계발서를 봐왔던 입장이 아니라, 누가 봐도 그럴 것이다.
혹여나 누군가 이 책을 인생 책으로 뽑으면 둘 중 하나다.
책을 안 읽었거나, 얼마 안 있으면 지하철 역 앞에서 인상이 좋다며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될 예정이거나.
읽을 때는 몰랐는데... 다 읽고 나니까 시간 낭비한 기분이 드는 책은 굉장히 오랜만이라 적어본다.
똥먹는사람ㄷㄷ
ㅋㅋㅋㅋ 후기 재밌게 쓰시네
문장 재밌게 써서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읽었다ㅋㅋ 이거 비슷한 책 나도 읽었었는데 박근혜 씨가 말한 것처럼 온 우주가 돕게 되고 이루어진다 그런 골조였음ㅋㅋㅋ 당시에 그 사람도 이 책 읽은거 아니야? 했었음 - dc App
글 존나 재밌게쓰네ㅋㅋㅋ
이건 예전에도 저자소개 웃긴걸로 독갤에서 나름 화제였던ㅋㅋ 이서윤은 사주와 관상에 능했던 할머니의 발견으로 일곱 살 때 운명학에 입문했다. 할머니가 본 어린 손녀의 운명은 행운을 불러오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지원과 이서윤의 신념으로 주역과 명리학, 자미두수, 점성학 등 동서양의 운명학을 빠짐없이 익혔고, 10만 건의 사례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