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최승자 시만큼이야 바랄 수야 있겠냐만 저 둘 시인의 시가 유독 찬양받는데는 좀 그 핍박받은 여성의 비극적 죽음으로 미화된 부분도 상당하다본다.
시가 너무나 자조적 감정으로만 가득하고 극도의 민감성으로 거의 강박적으로 스스로도 제어 못할만큼 내몰며 심상적인 묘사들로만 일관해 그 소재와 표현의 다양함에도 불구함에도 정작 시 자체는 너무 단조롭기만 함.
시중에서 그냥 에세이시라고 분류하면 좀 나을려나.
그녀들의 내몰린 절망과 고통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왜 더 무력하게만 마치 편승하듯 더 내몰 뿐이냐는 거임. 이건 좀 무책임한 게 아닐까. '시인'으로서. 시가 3자적 보도, 르포여야하는 건 아니잖아.
시의 최승자 소설의 최명희나 또 횔덜린의 시는 그 가파른 소멸 속에서도 죽지않은 그 자신을 시와 글을 통해 나타냈기에 영원히 고전이 된건데 저 둘은 그에 비하면(비교시키기에도 무안하지만) 너무 단면적이고 소심하기만함.
이런 시들에 흠뻑 빠져보고 취하는 거야 또 하나의 절망과 불행에 대한 인식의 경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다분히 자학 성향의 시에 그이상 흠모하고 경도되는 건 말리고싶음.
시의 세계를 통해 자기 심정을 스스로도 알게 됐다면 성급히 속단말고 그 폭을 더 좀 넓혀보고 시야를 더 구체화시켜보라 얘기해주고싶음.
박서원은 못 읽어봤지만 이연주는 전형적인 요절로 과대평가된 케이스 같음
박서원이 그 이연주보다 더 시 레벨이 떨어짐. 사람 죽음으로 업적 미화시키는 건 좀 지양돼야함. 사람 갈아넣거나 자기 목숨 다 바치는 자결 풍조를 고매한 미덕인양 정당화시키고 운명을 빙자해 환경에 저항도 개입도 없이 자신이 3자적으로 순응하거나 방관하게하는 도피를 진실한 애수의 순애보 지키는 최후의 절개인 것처럼 치장시킴. 열녀정신의 계승인지..
이연주 평 좋길래 이번에 시전집 사봤는데 어둑한 감정만 울컥울컥 흘러넘치고 최승자처럼 어둠에서 더 나아가는 감상은 안 느껴져서 기대에 못 미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