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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연극처럼, 무대여 신화가 되어라~

아니 이시국에 에반게리온??


그게 뭔데 틀딱아!



솔직히 요즘 누가 에바뭐시기를 알겠는가, 틀딱들이나 좋아하겠지.


오늘은 요즘 젊은 동년배들이 좋아하는 <잔혹극> 이야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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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큭....이름만 들어도 벌써부터 흐.콰.할 거 같지 않은가?


[잔혹극]....크크킄 -------아아, 죽이는 이름이다, 잔-혹-연-극-------



안타깝지만, 이름과 달리, 딱히 흐콰할 순 없을 거다, 오히려 이게 뭔지 생각하다가 뚝배기가 깨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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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엔트로피! 열역학 제2법칙!!



브레히트와 서사극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오늘날 연극의 수많은 얼굴을 장식하는 두 개의 거대한 이론이 있다.


서로 상반되면서도, 어차피 오늘날 현대 유명 극작가들은 그냥 둘 다 쓰까먹으므로, 결국 연극엔 오직 천의 얼굴을 가진 광기 뿐이야...크크큭


한 쪽엔 [이성]적인 브레히트와 서사극(변증법적 연극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그냥 유명한 명칭 쓰자)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정반대되는 입장에서, 즉 이성이 아닌, 다른 것......광기....잔혹......이를 통하여 새로운 연극을 만들려는 자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연극>이다.




1896년, 앙토냉 아르토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터키 부근 옛 그리스 도시였던 스미르나 출신이었는데, 이러한 그리스적 뿌리가 훗날 아르토에게 큰 영향을 주니까 나중에 다시 설명하자.


어릴 적부터 개인적으로 불행했다.


5살 무렵에 뇌수막염 진단을 받았는데, 이 당시엔 불치병이었다. 이미 여러 자녀들이 사산되거나 어릴 적에 죽어서 아르토의 부모는 아들을 요양원에 고히 모셔두었고,


오랜 기간을 어린 아르토는 요양원에서 자라야했다.


문제가 있었는데, 요양원 의사의 실수로 치료약으로 쓰던 모르핀에 중독되어 평생을 고생하게 된다.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이 시기, 아무 것도 못하는 아르토는 독서를 해야했고, 랭보나 보들레르, 포 등을 읽으며 미래의 자산을 쌓는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이나 유전적인 요인도 있었는지, 결국 19살 때 처음으로 정신병 진단을 받게 된다. 요양하며, 1차 대전에도 끌려가지 못했지만,

이 고질적인 정신병은 아르토를 평생에 걸쳐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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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 1921년 파리로 상경하면서 아버지의 반대를 뒤로 한 채, 아르토는 작가로서 생활을 시작한다.


물론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하였고, 그의 시는 거절되었으나 편집자들과 연을 쌓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하여, 당시 배우지아 연출가였던 샤를 뒬랭 밑에서 견습으로 일하며 그의 제자가 되었고, 연극에 발을 들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젊은 아르토는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그 당시 파리에서 서서히 태동하는 초현실주의 운동에도 관심을 보였고, 무엇보다 <영화>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영화 비평을 하거나,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배우로서도 꽤나 다양하게 활동을 하였다.


당장 위의 사진만 하더라도,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 속 배역을 맡은 아르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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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토가 출연한 오늘날 가장 유명한 영화로는 역시 <잔 다르크의 수난>이 있을 것이다.


이 걸작 무성 영화는 분명 영화광들은 좋아할 텐데, 영화 자체도 걸작이지만, 현대 희곡의 이론가가 출연했다는 점 또한 꽤나 인상적이다.



그러다가 1927년, 그는 동료들과 함께 알프레드 쟈리 극장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비상할 준비를 마친다.


<위뷔 왕> 등을 쓴 쟈리를 기리며 시작한 이 극장은 폴 발레리나 앙드레 지드 등의 관심을 받는 등 잘될 것만 같았다.



물론 시작한지 2년만에 망해버린다.


심지어 아르토가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려는 자신의 작품 <피의 분출>은 광고까지 때렸지만, 무대에 올라가지도 못한다.


그렇게 상심한 아르토는 물론 작업을 멈추진 않는다. 잘 되는 일은 없었지만.


그러다가 1931년, 아르토 본인에게도, 그리고 연극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일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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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토는 <파리 식민지 박람회>에서 우연히 발리 연극, 즉 인도네시아 연극을 보게 된다.


물론 그가 사실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르토에게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기존의 서양 연극과 달리, 기괴한 음악 속 리듬이나 무용과 몸짓, 그리고 종교 의식 같은 장면, 무대의 무의미함 등이었다.



실제로 많은 모더니스트 극작가들이 동양의 연극에 꽤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시지만, 에즈라 파운드 등의 시인들은 중국 한시나 일본 하이쿠에 영향을 받았고, 예이츠의 경우, 후기 희곡에서 일본 노가쿠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단은 텍스트 자체가 연구자들에게 번역되고 소개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발리 연극과 춤은 정말로 우연적이었고, 또 컸다. 이 시기부터, 아르토는 새로운 연극 이론을 구상하기 시작하였고, 훗날 <연극과 그 이중> 등 오늘날 잔혹연극론으로 불리는 텍스트들을 쓰고, 또 <첸치 일가> 같은 자신의 이론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준비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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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대체 <잔혹연극>이란 대체 무엇인가?


사실 잔혹극의 대가 진 또한 이걸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일단 여러 문제가 있었다.


첫째로, 아르토 본인이 이러한 막연한 이론을 조금 더 제대로 완성하기 전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남아있는 잔혹연극에 관한 텍스트들도 프랑스 작가답게 좀 애매모호한 구석이 적잖아 있다.


둘째로, 아르토 본인이 자신의 이론을 무대에 올려볼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당장 브레히트만 하더라도, 그의 서사극이 단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오랜 커리어 속에서 수많은 연극들을 무대에 올리고, 고치면서 만들어져갔다. 심지어 브레히트 본인조차 이론이 변하기도 했다.


이에 반면, 아르토는 고작해야 그의 대표작이었던 <첸치 일가>를 17번 정도 무대에 올려보는 것 외엔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못하였다.


자연스럽게 잔혹연극이 현대 희곡에 정착되는 과정은 곧 수많은 아르토의 후배들이 아르토를 해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잔혹연극>이 완전히 허황되고 근본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아르토가 말하는 '잔혹'과 '연극'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단어와 다르다는 걸 알아야한다.


브레히트가 단순히 연극을 수동적으로 즐기는 것에 반대했듯, 아르토 또한 마찬가지였다.


'연극'이란 단순히 무대 위의 배우들의 연기를 자리에 가만히 앉아 보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연극을 '역병'이라고 비난했던 걸 인용하여, 아르토 또한 동의한다.


'연극'은 마치 역병처럼, 무대 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나 관객들 모두에게 전염되고, 동조되어야한다.


그럼 대체 무엇을 퍼뜨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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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큭....피....죽음.......



'잔혹'이 물론 그 답이지만, 아르토가 말하는 '잔혹'은 중2중2한 피의 분출이나 감정적인 잔혹함이 아니다. 그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물론 도구적으로 배역의 죽음이나 피 등이 사용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 너머에 잠들어있는 배우와 관객들의 진짜 모습을 끄집어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아르토가 든 예시론, 가령, 아이에게 세상이 돌아가는 현실을 일깨워주는 것, 혹은 언젠가 너도 죽을 것이란 사실을 알려주는 것 등이 예시가 될 수 있겠다.


혹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라는 <황무지>의 구절처럼, 차라리 죽은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그러한 황폐화된 현대인에게 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


한 마디로, 이러한 걸 깨닫게 하기에 '잔혹'한 것이며, 연극은 이러한 잔혹함을 일깨워주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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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걸 위한 과정에서, 그가 크게 영향을 받았던 동양적인 연극이 등장한다.


초현실주의에 한때 영향을 받았듯, 아르토의 연극은 일종의 의식 너머를 일깨우는 행위와도 비슷하였다.


초현실주의자들처럼, 그는 '이성'이나 기존의 서구 연극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말'과 '대사'론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그가 보았단 발리 연극 속의 음악이나 무용처럼, 아르토는 이제까지 간과되던 것들, 즉 대사가 아닌, 침묵 / 음악 / 무용 / 그리고 새로운 종류의 무대나 배경 등을 강조한다.


실제 실패했던 <첸치 일가>를 무대에 올리면서 아르토는 어느 정도 이러한 것들을 도입한다. 물론 상업적으론 완벽하게 실패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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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에서, 아르토의 잔혹연극론은 복고적인 운동으로도 볼 수 있다.


당장 서구 연극에서도,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나 중세의 신비극, 도덕극 등 과거의 연극은 일종의 종교적인 의식이었다.


연극을 통해서, 원시적인 종교 의식에 다 함께 참여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지고, 배우와 관객들이 소통하고, 배우며 깨닫는 것, 그것이 아르토의 잔혹연극이었다.


실제로 그가 꿈꿨던 무대 구조는, 가운데 관객석을 모아놓고, 주변에서, 마치 원을 그리듯 배우들이 움직이며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무대였다.


설명만 봐도 왠지 현대 연극스럽지 않은가? 당연히 그런 게 전부 아르토에게서 영향받았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무아지경은 분명 '이성'적인 브레히트와는 정반대의 표출이었다. 노래와 무용만 하더라도, 브레히트는 관객의 몰입을 깨기 위하여 도입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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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첸치 일가>가 실패한 아르토는 일단 멕시코 등지로 여행을 떠난다.


물론 그에게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면, 다시 여러 시도를 할 수 있었겠지만, 그를 괴롭히던 고질적인 정신병이 마침내 문제를 일으킨다.


아일랜드에서 정신발작을 일으킨 아르토는 파리로 끌려가듯 소환되고, 그대로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거의 10년 가까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강제적 치료를 받던 도중, 친구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풀려나지만,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말년의 아르토는 반 고흐에 관한 글을 쓰는 등, 다시 활동하려는 시도를 사지만, 이미 암에 걸려있었고,


풀려난지 2년만에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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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르토의 사후, 그의 새로운 연극은 장 주네의 작품 등 부조리극 등에 큰 영향을 끼쳤고, 무엇보다 현대 희곡에 수많은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오늘날 수많은 극작가와 무대 연출가들이 아르토의 이론을 무대에 올리고 있지만, 대표적으론 역시 피터 브록이 있을 것이다.


그가 연출한 전설적인 페터 바이스의 희곡 <마라/사드>는 브레히트의 서사극과 아르토의 잔혹극을 동시에 접목시킨 성공 사례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브록이 연출한 <마라/사드>의 무대는 전형적인 잔혹연극이 예시로 남았고, 오늘날도 수없이 재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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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들만 봐도, 무언가 현대 연극의 무대스러워보이겠지만, 이러한 것들의 뿌리가 아르토였음을 생각해본다면,


이 불운한 천재는 오늘날까지도 신화가 되어, 연극과 뮤지컬을 보려는 이들의 뇌를 조종하고 있다.


아르토가 여러분의 뇌를....!!




사실 아르토의 희곡 자체는 좀 지루하다. 애당초 이론가로서 더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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