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종려나무>는 일반적인 포크너 작품들이랑 비교했을 때 좀 이질적인 감이 있음. 비극적인 비선형적 서사는 다른 책들과 비슷하지만, 일단 사장 중요한건 미국 남부가 배경임에도 요크나파토파 카운티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음. 요크나파토파 연작이 시작되기 전인 <먼지 속의 깃발들> 이전의 초기작이나 <파일론>, <우화>(1차 대전 유럽 배경)같은 동떨어진 작품들 말고는 거의 다 연작에 포함되는데, 여기서 제외시켰다는 건 포크너가 의도적으로 차이점을 두었다고 볼 수 밖에 없을듯.


그리고 포크너는 보통 가족 연대기를 중심으로 작품을 이끌어가는데 여긴 두 개의 아예 무관한 두 이야기가 서로 엮이는 구조를 취함. 첫 번째 이야기는 포크너에게 있어서 좀 예외적인 사랑 이야기이고 (굿리즈에선 오글거린 다는 평도 있는데 난 좋았음) 두번째는 죄수가 홍수로 인해 탈출하면서 생기는 일임. 두번째 이야기는 묘사가 개빡세서 원서로 읽을 때 좀 힘들었는데 아주 아름다웠던 기억이… 야생종려나무는 성역 급으로 문장 만큼은 믿고 봐도 될듯. 원래 강렬한 문체가 포크너의 강점이라면 이 작품은 굉장히 서정적임.


이야기 외적인거 말하자면, 야생종려나무는 두 플롯, 즉 <야생종려나무>와 <노인>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포크너는 원래 <야생종려나무>만 쓸려다가 분량 문제 때문에 <노인>을 교차시킨걸로 아는데 그래서 <노인>은 좀 작위적이라는 평가도 있음.


암튼 기존 포크너랑 좀 다른, 비애적이고… 필멸의 육신과는 분리 불가능한 기억을 어떻게 간직할 것이지를 다룬 훌륭한 작품인건 맞으니까 포크너 팬이라면 필독해야할 작품임. 종려나무 잎사귀의 흔들림과 모든걸 잠식시키는 홍수의 교차… 나도 다시 읽어야겠다.


마지막으로 이건 내가 좋아하는 문장. 다른 문장은 스포일까봐 안가져옴.

But memory. Surely memory exists independent of the flesh. But this was wrong too. Because it wouldn’t know it was memory he thought. It wouldn’t know what it was it remembered. So there’s got to be the old meat, the old frail eradicable meat for memory to titillate.

하지만 기억, 당연히 기억은 육체와 별개로 존재하지. 하지만 이것 역시 틀렸다. 왜냐하면 그건 자신이 기억인지 알지 못했을거야, 그는 생각했다. 그건 자신이 기억한다는게 무엇인지 모를거야. 그래서 여기 낡은 육체, 기억이 간질일 수 있기 위해 늙고 약한 소멸 가능한 그 낡은 육체가 있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