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나도 드디어 보기 시작. 번역서는 무조건 역자 해설부터 보는거 국룰 아니냐?
> (..) 각자 제 할 일을 잘하는 것이 바로 정의라는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우리에게 매우 이질적이다. 이것은 우리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의 후보로조차 떠올리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질성이 시대적 차이나 언어적 차이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플라톤 이후에 아리스토텔레스나 스토아학파 등에서 정의에 대해 논의한 것들은 오늘날에도 (..) 논의에 등장할 만한 것들이고, 플라톤 이전에 활동했던 소피스트들의 정의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이다. (..)
> (..)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대답은 당연하게도 영혼의 각 부분이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정의라는 점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소크라테스가 동문서답의 오류를 범했다는 주장은 그가 (..) 논증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논증이 충분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국가"를 읽는 독자들이 각자 판단할 일이다. 다만 이 문제가 '정의'와 그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디카이오쉬네(dikaiosynē)'의 뉘앙스 차이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 - p.715-716
혹시 괜히 기존의 "정의"와는 용법이 다르다며 "올바름" 이런 식으로 번역하지 말라는 (박종현 교수를 향한 은은하고 은근한) 일침?
하지만 말장난 마스터가 논점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분위기를 제대로 옮기려면 박종현 교수님식의 도전도 필요하지 않았나 싶은데.
언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에 대해 얘기했다가 갑자기 '내가 언제?' 하고 발뺌하는 들창코 대머리아저씨 보는게 대화편의 맛 아닌가...
예컨대 위 인용문도, "이러한 대답은 당연하게도 영혼의 각 부분이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올바름이라는 점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쓴다면 아무런 위화감이 없으니까.
하여튼, 학문이 늘 거인의 어깨 위에 서며 발전하듯이, 기존 번역문을 의식하고 존중하며 번역했을 것이 느껴져서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거야.
이제이북스 당시엔 작품 해설 같은 게 본문 앞에 있어서 좋았는데 아카넷으로 가더니 뒤로 가버렸다는...
써둔 내용 읽으니까 천병희 교수님에 대한 글이 떠오르는데, 천병희 교수님의 번역본은 좀 더 독자에게 가까운 단어를 선택해서 전문적인 번역과는 거리가 있다는 비판도 있다고 들었거든.
근데 애시당초 철학이란게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책인데, 단어의 다름이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건가? 단어 자체가 상징인데, 상징이 달라도 그 의미가 같으면 뭐가 문제일까? 정의를 올바름으로 표현한다고 해도, 소크라테스의 정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텐데..
생각해보니 국가 자체가 정의라는 단어에 대한 논의로 시작해 정의는 정치구호에 불과한 게 아니라 인간의 올바름과 불가결함을 말하는 책인데 플라톤 사상을 더 잘 전달하는 건 올바름이지만 스포일러의 성격이 있는듯. 소피스트 to on 번역도 그렇고 박종현 교수 스타일이 플라톤이 말하는걸 최대한 이해시키려는거 같음 대신 미로에서 길을 찾는 맛은 사라짐
그래서 박종현 교수님은 그런 단어들 옆에는 괄호 치고 원어의 로마자를 병기하시는데, 본인이 번역한 원어가 이것인데 여기에는 다른 뜻도 있음을 상기하라는 강조가 있는듯함. 반면 아카넷은 번역에 있어 이 단어는 이렇게 번역합시다 라며 지침을 정했는지 그리스어 특유의 방대한 의미 확장을 잘 살리지 못한 느낌을 자주 느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