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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입니다. 감상은 그와 무관합니다. 읽은 김에 제가 쓰고 싶어서 씁니다.]
끝났거나 시작될 것의 사이에서
얇은 시집입니다. 납득하기 힘든 가격이므로 가급적 사지 않기를 추천합니다.
읽으면서도 다 읽고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를 읽으면 대개 그렇습니다. 시와 만날 때, 제 직관의 첫 행동은 두 부류 중 하나로의 구분입니다. 시인이 머리를 싸매고 그린 시냐, 그림을 보고 술술 말한 시냐. 결론은 동일하게 잘 모르겠습니다. 말은 같은데 의미는 다릅니다. 도저히 모르겠을 때 말하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색한 자리, 관심 없는 대화에 초대 당할 때 말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남의 마음에 감흥을 잘 못 느끼는 제겐 후자의 시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안 맞는 시집이었습니다. 반대로 스몰톡을 즐기거나, 관람 뒤의 수다보단 극장에 함께 있는 시간 자체를 소중히 여길 줄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그런 분들에겐 카페나 극장을 추천드립니다. 이 시집은 가성비가 안 나옵니다.
이래도 흥미가 남은 분들을 위해 빈약한 이해지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풀이나 꽃처럼 자연의 것들이 시어로 자주 등장하며 전원적인 느낌입니다.
주로 말하는 내용은 미지에 대한 설렘과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인 듯합니다. 슬플 법한 점은 미지가 지나간 것이 되고 설렘이 그리움이 된다는 겁니다. 감상적인 화자가 막상 이런 점엔 덤덤한 듯도 느껴지는데 체념이라 생각하면 눈물도 흘릴 만하겠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시, 까페와 담뱃닢이 음악과 함께 디시 모 갤러리에 게시된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거의 울먹거려 약간의 설렘을 갖고 펼쳤는데요. 그때 그 느낌이 전혀 안 나네요. 그냥 노래가 좋았나 봅니다. 하지만 그리움이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단순해서 좋다 싫다로 감정도 양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화자는 별 거 없다면서도 복잡미묘함을 잘 아는 것 같았습니다. 술술 얘기를 풀듯 시를 쓰고는 머리를 부여잡는 모습도 상상되네요. 덕분에 내가 보는 게 그리움인가 설렘인가, 그 감정들은 좋은 건가 싫은 건가 선뜻 답을 못하겠어요.
전체적인 구성은 좋았어요.
대부분 시집은 표제작이 있잖아요. 전 그러면 제목을 하나 덜 지었나, 시를 하나 더 지었나 궁금하거든요. 근데 이 시집은 목차를 보니까 제목인 폭풍우와 벌떼라는 시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역시 제목을 하나 더 지었나, 시를 하나 덜 지었나 했는데 읽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시집 전체가 폭풍우와 벌떼라는 하나의 시인가 봅니다. 같은 제목의 시가 변주되어 나오기도 하고, 같은 시적 상황이나 문장이 다른 시에 등장하기도 해요. 그래서 왜 폭풍우와 벌떼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모음집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끝에 따로 해설은 없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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