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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상 및 개인적인 노트 정리 내용인데


니체는 칸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라는 걸 궁금한 갤러들도 있지 싶어서 올려봄



참고: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즐거운 학문, 우상의 황혼, 선악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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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1.니체가 보기에 칸트 철학은 들어가기만 하면 몸이 얼어붙는 '찬물 치료소'임. 인간의 뜨거운 열정을 식혀버리고 딱딱하게 굳게 만드는 병적인 철학이라는 것임.


2.인간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믿는 것들은 사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수만 년 동안 저질러 온 '유용한 착각과 오류'들이 쌓인 결과일 뿐임. 칸트는 인간이 대단해서 법칙을 만든 줄 알지만, 사실은 인간의 멍청한 착각들을 모아놓고 이것이 우주의 진리다!라고 숭배했다고 함.


3.세상을 진화론적으로 보면 우리가 아는 세계는 그냥 유기체가 적응하며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임. 그 뒤에 숨겨진 '신비로운 본질' 같은 건 없음. 칸트가 말한 물자체는 속이 텅 빈 상자 같은 것이며 니체는 이를 폭소를 터뜨릴 만큼 황당한 주장이라고 비판함.


4.칸트가 지식에 선을 그은 이유는 과학과 이성이 닿지 않는 그 너머에 '기독교 신앙과 낡은 도덕'이 숨을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였음. 니체는 이것을 진리 탐구가 아니라 위기에 빠진 종교를 구출하기 위한 '철학적 사기극'으로 생각함. 


5.칸트는 사람들을 설득한 뒤 마지막에는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어"라고 말하며 이성 자체를 불신하게 만들었다고함. 빛나는 지성을 이용해 세상을 어둠(몽매주의)으로 몰아넣는 '검은 마술'을 부렸다는 것임.


6.대표적으로 작가 클라이스트 같은 이들이 칸트 때문에 삶의 목표를 잃고 무너졌다고 함. 칸트는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독약'을 뿌려 삶의 활력을 뺏어버린 우두머리라고 비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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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자신의 초기 사유와 칸트 철학 사이의 근본적인 취향과 정신의 대립을 뼈저리게 고백함. '비극의 탄생'에 덧붙인 자기비판의 글에서 자신의 새롭고 낯선 가치 평가를 표현하기 위해 칸트와 쇼펜하우어의 공식을 억지로 빌려 쓴 것을 뼈아픈 실수로 반성함. 니체의 생명 긍정적이고 디오니소스적인 정신은 칸트의 금욕적이고 형식적인 정신 및 취향과 밑바닥부터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기 때문.


니체는 칸트 철학은 생명력을 얼어붙게 만드는 '냉수욕장'과 같은 병적인 체계로 조롱함. '반시대적 고찰'에서 프리드리히 실러가 칸트 철학으로부터 마치 냉수욕장이나 찬물 치료소에서 빠져나오듯 걸어 나왔다는 비유를 인용하며 이를 신랄하게 지적함. 이는 칸트의 사유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열정과 예술적 감수성을 억압하고  모든 것을 차갑고 경직된 도덕적, 논리적 틀에 가두어버리는 생기 잃은 철학임을 비판하는 것임.


니체는 인간의 '오성'(철학용어임)이 자연에 법칙을 부여한다는 칸트의 핵심적인 인식론적 주장을 비판함. 칸트는 인간의 지성이 자연으로부터 법칙을 수동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법칙을 규정한다고 생각함. 이에 대해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 즉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관해서라면 그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동의하는 듯한 태도를 보임.


근데 이 반쪽짜리 동의는 곧바로 칸트의 인식론에 대한 치명적인 조롱으로  이어짐. 니체가 보기에 인간이 인식하는 그 자연이라는 것 자체가 실은 오성이 저질러 온 수많은 오류들의 총합에 불과하기 때문임. 칸트는 인간 지성이 위대해서 자연에 보편적 법칙을 내렸다고 착각했지만, 실상은 지성의 맹목적인 착각과 오류들이 뭉쳐진 덩어리를 우주적 법칙으로 숭배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을 뿐이라는 것임.


칸트 철학의 핵심인 '물자체' 개념 역시 철저한 허무이자 조롱거리로 봄. 현상계 너머에 궁극적인 진리나 형이상학적 본질이 있다고 믿는 칸트식의 철학적 구분법을 철저히 배격함. 인식의 발달 과정을 진화론적,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면 우리가 세계라 부르는 것은 유기체의 발달과 함께 누적된 오류들의 결과물이며, 칸트가 상정한 물자체는 의미가 완전히 비어있는 것으로서 호메로스적인 폭소를 터뜨릴 만큼 우스꽝스러운 개념에 불과함. 이런 비판들 역시 쇼펜하우어의 칸트 비판 영향이 베어있어 보임.


니체는 칸트가 인식의 한계를 설정한 진짜 의도를 파헤치며 칸트를 은폐된 몽매주의자로 비난함. 칸트가 스스로 "신앙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지식에 한계를 설정했다"고 선언한 대목을 꼬집음. 니체는 이를 순수한 진리 탐구가 아니라 기독교적 신앙과 낡은 도덕을 구출하기 위한 철학적 타협이자 기만 행위로 간주함.


이러한 칸트의 기만적 태도는 세계의 이미지를 검게 칠하고 인간의 정신을 어둡게 만들려는 고도로 정교한 '검은 마술'로 이라고 비난함. 지성을 최고조로 세련되게 벼려놓고는, 바로 그 날카로운 지성을 이용해 회의주의를 조장하고 지성 자체에 대한 불신을 촉구하는 칸트의 방식은 빛의 겉옷을 입고 나타난 가장 위험하고 교활한 형태의 몽매주의라는 것임.


칸트의 이러한 철학적 타협은 당대와 후대의 대학교수들, 즉 강단 철학자들에게 악용되어 철학의 정신 자체를 타락시켰다고 비난함. 반시대적 고찰에서 대학의 철학 교수들이 칸트의 학설을 방패 삼아 철학을 단순한 '한가로운 회의주의'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함. 진리를 위해 국가와 체제의 폐부를 찌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철학이 칸트의 인식론적 한계 지우기 덕분에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는 대학교수들의 비겁한 변명거리로 전락해버린 것임. 칸트와는 다르게 단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사회적 고립을 감수하고서라도 대학교에서 벗어나 고독한 학자의 길을 걸은 쇼펜하우어를 지극히 높이 평가함.


칸트 철학은 대중과 지식인 사회에 파괴적인 회의주의와 상대주의를 퍼뜨려 삶의 방향성에 대한 절망을 낳았다고 비판함. 칸트의 사상을 진지하게 대면한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같은 인물은 절대적 진리를 파악할 수 없다는 비관적 결론 앞에서 삶의 궁극적 목표를 잃고 무너져 내림. 칸트는 인간이 진리를 확신할 수 없도록 이성의 맹점을 극대화함으로써, 숭고한 정신들이 삶의 역동성을 잃고 허무주의에 빠지도록 만드는 치명적인 독약을 철학의 이름으로 살포한 셈이라는 것임.


니체에게 칸트는 극복되어야 할 형이상학적 망령이자 도덕의 이름으로 생명력을 짓누르는 우상임.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참된 자유 정신을 가진 자라면 형이상학의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되, 결코 칸트처럼 그 마지막 사다리 위에 안주하여 종교나 신앙으로 퇴행해서는 안 되며 다시 뒤로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함. 니체는 칸트가 세운 도덕적 순진함과 몽매주의의 감옥을 부수고, 그 폐허 위에서 인간의 본능과 긍정의 에너지를 복원하고자 철저하게 칸트를 비판함. 칸트는 도덕과 신앙이라는 허울로 인간의 역동적인 생명력을 억누르고, 학자로서의 비겁함으로 철학을 타락시킨 낡은 우상이라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