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티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한창 봄기운을 내뿜던 4월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날씨에 변화가 생긴 것 이외에도 이번 달은 저에게 나름 뜻 깊은 달인데 올해 들어 가장 많은 책을 읽은 달이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이보다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다짐하며 지난 한달 동안 읽었던 책들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겠다.
1. 1984 (Nineteen Eighty-Four)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비하르 지방 태생의 소설가, 저널리스트이자 단순히 글만 썼던 게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의용군으로 참전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도 보였던 영국인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 1950)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1984를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사실 이 작품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이라서 한국어 번역본으로 2번 읽어봤을 정도였다. 그래서 영어 책도 읽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본작의 원서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꽤 오래전부터 이 책을 구매해 소장해두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사놓으니까 이미 읽었던 책을 굳이 또 읽어봐야 할까하는 생각도 문득 들어서 한동안 책장에다가만 모셔두었다. 하지만 오웰의 또다른 대표작인 동물농장(Animal Farm)과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는 영어 원서로 읽어놓고 이 작품만 원서로 읽어보지 않았던 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책장에 이 책을 쑤셔 박아 놓은지 거의 4년이 되가자 이대로 방치해두면 안되겠다 싶어서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봤다.
이 책은 익히 잘 알려졌다시피 빅브라더라는 초월자에 가까운 독재자를 위시로 한 영국사회주의당이 아주 숨막히게 개인 한명 한명을 감시하는 오세아니아라는 가상의 국가에서 말단 당원인 윈스턴 스미스가 빅브라더를 향한 저항심을 키우고 자유를 갈망하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무서우리만치 견고한 오세아니아의 감시 체제는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24시간 내내 쉬지않고 당의 프로파간다 영상을 쏟아내는 동시에 전방에 보이는 모든 장면을 녹화하며 송수신을 병행하는 텔레스크린부터, 모든 인민이 경제적 여유없이 궁핍하게 살게 만들도록 전쟁을 영원히 이끌고 가기 위해 끊임없이 개발되는 전쟁병기와 체제에 맞지 않는 인사를 굴복을 넘어서 세뇌까지 시키는 고문 기술 당에 입맛에 맞지 않는 모든 과거 기록을 검열하고 말끔히 지워버리는 기록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작중에서는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선진적인 과학 기술이 모조리 동원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제 1,2차 세계대전을 모두 거친 1940년대 후반 서구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던 회의감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는데, 분명 서구인들은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보다 더 나은 삶과 인류의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두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그 기술이 수많은 사람들을 매우 효율적으로 살육하는 야만의 도구로 봉사했던 점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또 작중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 세 초강대국이 끊임없는 전쟁을 이어가며 불안감을 조성하는데 대목에서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본격화되며 작가가 살던 시대에 드리우기 시작한 불안감의 흔적이 역력히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면서 기술력이 과거보다도 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작품 속에 나오던 감시수단이 실제로도 구현이 가능한 수준이 되서, 본작이 출간된지 7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작품이 간직한 시의성은 아직까지도 유지하며 현대인들에게 더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한때 유럽을 호령했고 지금까지도 알음알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전체주의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다. 빅브라더를 내세우고 있는 당이 어떻게 오세아니아를 철권통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작중 꽤 높은 위치에 있는 내부당원인 오브라이언의 대사를 통해 자세히 묘사된다. 당은 국가에 속한 개인의 개성과 가치를 모조리 말살하여 오로지 당과 국가를 운영하는 부품으로써만 기능하도록 만든다. 또 성욕을 터부시하여 부부간의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유대를 실종시키고 자식들은 어렸을 때 부터 철저히 세뇌교육을 시켜 부모가 불온한 사상을 가졌는지 감시하게 하여 인간의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족의 역할도 철저히 붕괴시킨다. 그리고 끝도 없이 전쟁을 이어가며 적을 내세워 악마화하고, 그 적을 상대로 한 공포와 혐오만을 부추기고, 사랑은 오직 빅브라더만을 향하도록 하여 개인을 국가에 굴종시키는 걸 넘어서 사고까지 지배하여 국가와 혼연일체로 만들어 내려고 한다. 이토록 소름끼치는 철권통치의 목적은 거창한 대의명분이 아니라 순수한 권력 그 자체라고 오브라이언이 말하는 점에서 작가는 전체주의 시스템의 기제가 어떠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작에서 묘사된 독재정권의 작동방식은 많이 회자되듯이 독일의 나치 정권과 소련의 스탈린 정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당연히 이에 국한되지 않고, 한없이 개인을 연약하게 여긴 나머지 자신을 한없이 으깨서 휘황찬란해 보이는 커다란 집단에 우겨넣는데서 위안과 자긍심을 느끼는 무리들이나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탄압하고 배제하는 단체와 국가에도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라고 공언한 바 있는 오웰은 상술한 바와 같이 본작을 통해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깃든 전체주의의 맹아와 기술의 진보가 만난다면 인간성은 얼마든지 철저하고 무력하게 짓밟힐 수 있다고 통렬히 경고하였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세번째 읽으면 재미랑 감흥이 좀 죽을 것 같다는 걱정이 좀 앞섰다. 그러나 막상 다시 읽어보니 제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명작은 결말을 알고 봐도 찾게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지 전반적인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는데도 본작의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흥미로운 설정, 작가의 예리한 통찰에 푹 빠져서 읽었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번역본으로 읽었을 때는 독서에 재미를 붙인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보니 이야기 자체가 재밌다 하는 감상만 머릿속에 남았었지만, 작가의 다른 대표작과 100권이 넘는 다른 책을 읽고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아는만큼 보인다고 다른 문학작품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작가의 통렬한 전체주의 비판에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가 스탈린주의자들에게 뒷통수를 맞았던 조지 오웰의 한이 서려있는 듯 하였고, 작중 오브라이언이 윈스턴과 대질하면서 당의 진정한 목적을 얘기하는 장면에서는 여러모로 도스토옙스키의 역작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의 극중극으로 들어간 대심문관 에피소드가 연상되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내 사족이 굳이 필요하진 않겠지만 출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지닌 명작이니 만큼 기회가 있다면 일독을 강력히 권한다. 오웰이 문장을 어렵게 쓰는 작가가 아니라서 영어에 자신이 있다면 원서로도 충분히 도전해 볼만 하지만 이미 시중에 많은 번역본이 있으니 한국어 번역본으로라도 읽어보시는 걸 추천한다.
2. 타르튀프 (Le Tartuffe ou l’Imposteur)
프랑스 파리 태생의 극작가, 연극 연출가, 연극 배우이자 한때 프랑스에서 질 낮은 유흥거리로 폄하받던 희극(Comedy)을 예술의 경지로 이끌어 올리며 불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우뚝 선 몰리에르(Molière, 1622 - 1673)의 희곡선집 타르튀프를 읽어봤다. 한국에서 유명한 프랑스 문학가를 고르면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 - 1885)나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 - 1922),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 - 1960)와 같은 소설가들이 주로 꼽히지만, 프랑스 본토에서는 우리네에게 제법 생소한 극작가가 프랑스 문화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문학가로 꼽힌다. 오죽하면 '프랑스어는 몰리에르의 언어다'라는 표현도 있을 정도이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희곡이 소설에 비하면 마이너한 장르다보니 나도 작가의 명성을 다소 늦게 알게되었다. 그래도 뒤늦게라도 몰리에르를 알게 된 데에는 사소하지만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데, 국문학의 거목으로 추앙받는 소설가 박경리(1926 - 2008)가 생전 언론과의 대담에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몰리에르를 꼽았기 때문이다. 김약국의 딸들을 재밌게 읽었던 나로서는 이를 계기로 내심 흥미가 생겼다. 그렇게 작가의 이름을 머릿속에만 담아놓고 있던 중 들렀던 중고서점에서 이 책이 새 것과 다름없는 상태에서 괜찮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어서 냉큼 집어와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봤다.
이 책은 작가가 집필한 작품 중 당대 언중들에게 충격을 안겨주며 파란을 일으켰던 대표작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겉으로는 매우 경건하고 신심깊은 독신자를 자처하며 영적 지도자를 가장하였지만 실제로는 귀족 집안에 눌러 앉아 재산을 갈취하고 귀부인을 유혹할 궁리만 하는 협잡꾼의 이야기를 다뤄서 당대 종교인들의 큰 반발을 불러와서 상연이 금지된 이력이 있는 타르튀프(Le Tartuffe ou l'Imposteur),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바람을 피우고 다니면서 어떤 종교적 믿음도 없이 산술적인 것만 맹종하는 방탕한 귀공자 이야기를 다룬 동 쥐앙 혹은 석상의 잔치(Dom Juan ou le Festin de Pierre), 사교계에 만연한 위선과 뒷담화에 질려서 세상을 등지고 싶어하는 염세가 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인간 혐오자(Le Misanthrope)가 수록되어 있는데, 세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인간의 위선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몰리에르는 근세 시절 프랑스 코미디하면 으레 떠오를 만한 슬랩스틱이나 말초적인 개그에만 의존하지 않고 작품을 통해 귀족사회와 성직자 계급에 만연한 위선을 신랄하게 풍자하였다. 독신자를 자처하면서 교리나 예의범절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교조주의적이고 경직된 분위기를 사회에 팽배시켜 놓고는 자신들의 이익은 아낌없이 편취하는 성체회는 물론이요 사회적 엘리트를 자처하면서 겉으로는 몹시 젠체하지만 본인들의 욕망에는 매우 충실한 프랑스 귀족의 행태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또 몰리에르의 작품은 단순히 사회 고발만 그치지 않고 예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듯 맛깔나면서도 화려한 대사로 말끔히 치장되어 있어서 작품 발표 이후 수백년이 지난 지금 봐도 꽤나 재치있고 재밌는 편이다. 그의 연극을 보고 분기탱천한 당대 성직자와 귀족들이 끈질기게 훼방을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굴복하지 않고 죽을 때 까지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에게는 여러모로 존경심이 일었다.
전술하였듯이 몰리에르는 희극의 역할을 관객들을 웃기는 것으로만 한정하지 않았다. 근세 프랑스의 인간군상을 무대 위에 구현해낸 만큼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향해 거침없이 조소를 쏟아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혜와 믿음을 나침반 삼아 삶을 헤쳐나가는 긍정적인 인간상에도 주목한다. 가령 예를 들면 독신자를 빙자한 사기꾼 타르튀프가 귀족인 오르공 일가의 재산에 탐을 내고 집적거리자 이를 눈치채고 그 누구보다 논리정연하게 그의 궤변을 반박하는 하녀 도린에서 기회주의자로서의 면모가 있긴 하지만 난봉꾼 귀족 동 쥐앙을 모시면서도 신앙과 도덕을 잃지 않고 주인으로부터 피해입는 이들을 동정하는 하인 스가나렐과 사교계에서는 다소 외면 받지만 사랑의 진정한 의미와 본질을 파악하고 항상 사람의 긍정적인 면모를 봐주려고 하는 과부 엘리앙트까지 악덕을 한뜩 머금은 주동인물들과는 대치되는 등장인물들도 제법 눈에 띈다. 더군다나 미덕을 상징하는 등장인물들이 대단한 지위를 가진 인물이 아니라 하인이나 과부와 같이 그다지 높지 않은 지위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사람은 지위나 신분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지닌 품성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꽤나 진보적인 작가의 주관이 돋보인다. 작가의 번뜩이는 재치와 현란한 문장력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에 진하게 녹아들어 있는 휴머니즘 점 덕분에 그가 세상을 떠난지 35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작품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한때 저질 장르로 매도 받던 코미디를 통해 예술사에 족적을 남길 만한 뛰어난 성취를 이루고 작가 뿐만 아니라 연출가, 배우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사회적으로는 인본주의자로서의 행보도 보였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몰리에르는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 - 1977)의 까마득한 대선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지난 달에 읽었던 푸슈킨의 단편소설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전설적인 명성 때문에 이 책을 찾게 되었지만 작품 자체가 좀 담박한 편이라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럼에도 세월이 무색하게도 대사에 묻어 나는 재기발랄함과 인상 깊으면서도 개성있는 등장인물 덕분에 꽤나 재밌게 읽었다. 물론 이 작품에서 아쉬웠던 게 없는 건 아닌데 강력한 왕정 국가였던 근세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작가였고 기득권으로부터 여러 음해를 받으면서도 루이 14세의 보호를 받았다는 점 때문에 작품에서 국왕을 찬양하는 대목이 여럿 있고, 극의 전개가 후반부에 몰아서 이뤄지는 터라 스토리에 약간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는 단점도 있다. 그래도 어렵지 않으면서도 재미와 고전으로서의 품격을 모두 챙긴 명작인 만큼 기회가 있다면 한 번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권장한다.
3. 수레바퀴 아래서 (Unterm Rad)
독일 남부 슈바벤 지방(현재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소도시 칼프 태생의 소설가, 시인이자 독일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는 독일계 스위스인 작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 - 1962)의 장편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어봤다. 헤세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작가인 만큼 나도 예전의 헤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를 처음으로 접한 작품은 한국에서도 필독서로 줄곧 꼽히는 데미안(Demian)이었다. 그게 널리 추천되는 책 치고는 난해한 구석이 있어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지만, 나도 그책을 마냥 쉽게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작품의 분위기가 내 취향에 꼭 맞았다. 그래서 같은 작가가 썼던 장편소설인 황야의 이리(Der Steppenwolf)도 덩달아 읽어봤는데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은 모두 헤세가 마흔을 넘긴 중년에 들어서 쓴 작품이어서, 자연스레 작가의 초기작은 어떤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작가가 소설가로 활동한지 얼마 안된 때에 발표했으면서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책을 구해서 한 번 읽어봤다.
이 책은 독일 남부의 한 소도시에서 그럭저럭 먹고 사는 중개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남들보다 뛰어난 지능을 지녀온 마을의 촉망을 받고 있는 소년 한스 기벤라트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한스는 여느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들과 개울가에서 뛰놀기를 좋아했지만, 그의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 마을 교회 목사를 비롯한 주변 어른들은 명문 신학교에 진학하기를 강요하며 밤낮으로 공부를 시켰다. 그렇게 한스는 온갖 고생 끝에 신학교 입학시험에서 2등이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합격하고 입학 전 꿀맛 같은 여름방학을 즐기려 했지만 어른들은 신학교에서 성적으로 뒤쳐지면 안된다며 거의 방학 내내 선행학습을 시켰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신학교에 들어온 한스는 학교에서도 주입식 교육을 고수하는데다 조금이라도 튀는 학생에게 매서운 제재를 가하는 획일적인 학풍에 점점 지쳐가면서 방황하게 된다.
어린 아이에게 너무나도 가혹하기 짝이 없는 수준의 학습강요는 유럽 국가 중에서 독보적으로 권위적이면서도 획일적인 면모를 가진 당시 독일의 교육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작중 ‘국가가 교사에게 맡긴 직무는 소년들의 거친 힘과 자연의 욕망을 제어해 뿌리부터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그 대신 국가가 인정하는 차분하고 절도 있는 이상을 심어주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나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반어법을 섞어가며 전체주의적인 독일의 교육체제에 준열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훗날 작가가 펴내는 데미안과 황야의 이리에서도 드러나는 반전체주의적 색채의 기원을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그리고 본작이 출간된지 120년이 되었는데도 이책의 이야기가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학생의 개성을 말살하고, 사회적 출세만을 바라보며 어린 학생들의 동심을 철저히 짓밟아 그들을 가혹한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 시스템은 한국에서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실과 본작을 겹쳐보니 우리나라가 오래 전 다른 나라에서 벌어졌던 문제를 아직 극복하지도 못했구나 하는 씁쓸한 심경이 들었다.
이 책은 헤세의 다른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하지만 본작은 그중에서도 작가의 실제 일생과 가장 밀접해 있다. 헤세도 한때 고향 마을에서 장래가 기대되던 우등생이여서 명문학교인 마울브론 신학교에 진학했지만 경직된 학풍에 질려 7개월 만에 자퇴한 적이 있는데다 정서적으로 불안해 방황하던 적이 있을 정도로 질풍같은 사춘기를 보냈었다. 작가 본인이 이 책에는 실제로 경험하고 괴로워했던 삶의 한 조각이 담겨 있다고 공언했듯이, 본작에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춘기 소년의 감정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 작가가 뒷날 쓰는 작품들의 경우에는 묘사가 관념적이면서도 환각적인 구석이 있었지만 본작은 분위기가 소년의 감정선이 더 부각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묘사와 어우러져 훨씬 감각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 헤세만이 주는 분위기에 빠져서 이 책을 찾은 저로서는 제법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본작은 헤세의 중기작과는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역시 헤세는 헤세라는 감상이 들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 또 상술하였듯이 작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공통적인 주제의 시작점이 되는 작품이기도 해서 헤세를 이해하는 데 본작이 제법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지루한 감이 있기는 했지만, 정석적인 스토리텔링을 갖춘 작품이다 보니 헤세의 입문작으로 데미안 보다는 이 책이 훨씬 적합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헤세에 관심이 생겼다면 무작정 데미안부터 도전해 보는 것 보단 이 책부터 읽어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4.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Maldición eterna a quien lea estas páginas)
아르헨티나의 한적한 마을인 헤네랄 비예가스 태생의 소설가, 각본가이자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일생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유랑하면서 지냈던 망명 작가 마누엘 푸익(Manuel Puig, 1932 - 1990) 장편소설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을 읽어봤다. 푸익은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는 영화와 연극으로 여러번 각색되었던 소설인 거미여인의 키스(El beso de la mujer araña)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 또한 거미여인의 키스를 통해 작가를 처음 접했습니다. 여지껏 나는 그 책을 고전의 반열에 오른 퀴어 소설 정도로만 여겼었는데 막상 직접 읽어보니 작품의 실험적이면서도 흥미로운 구성에 푹 빠져서 읽었고, 그렇게 그 책은 제가 가장 아끼는 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익이 다작을 한 작가가 아님에도 한국에는 그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지 않아서 선택지가 별로 없긴 했었지만, 그래도 거미여인의 키스와 같이 대화체로 이뤄진 책이라는 점에 구미가 당겨 이 책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내 마음을 굳혀 주려는듯이 중고 서점에 이 책이 떡하니 보여서 이번 기회에 이 책을 사서 한 번 읽어봤다.
이 책은 묘연한 과거를 지닌 채 아르헨티나에서 뉴욕으로 요양을 온 노령의 망명객인 라미레스와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요양사로 고용된 30대 미국인 래리가 서로 나누는 대화로 이뤄져 있다. 작품 초반만 하더라도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 같은 라미레스가 사소한 단어의 의미조차 꼬치꼬치 캐묻자 래리가 짜증을 부리면서 티격태격 하는 내용이 주가 된다. 그런데 점차 이야기가 전개 될수록 대화의 양상이 점차 복잡해진다. 처음만 하더라도 서로의 과거에 대해서 말하길 꺼려왔던 두 사람은 점차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평범한 방식으로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과거 자신의 역할을 부여하고 회상하는 본인은 해설이나 첨언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회상한다. 이들의 범상치 않은 회상을 따라가다보면 흡사 TRPG를 플레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게 간접적으로 털어놓는 과거조차 회상자 본인이 돌연 번복하거나 거짓말이라고도 털어놓기도 해서 마냥 그대로 믿기 어렵다. 또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도 한 가지 주제를 일관성 있게 따라가기 보다도 이런저런 주제로 말머리가 돌려지기도 하고, 가끔은 집단적 독백이라도 하듯 서로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기도 해서 글을 읽다보면 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건지 혼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두 화자가 나누는 대화 자체도 실제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가도 어떤 부분은 두 사람이 꾸는 꿈으로 보이는 장면도 여럿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더 진행될 수록 진실이 더 오리무중에 빠져드는 듯한 인상도 든다. 이렇게 작품의 내러티브는 대화체라는 원초적이면서도 간단한 구성을 갖췄지만 플롯은 꽤나 복잡다난한 편인데 이 둘의 대비가 참으로 오묘하다.
전술하였듯이 작품의 스토리라인 자체가 베일에 꽁꽁 싸여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베일 사이로 두사람의 기억의 편린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그 파편 속에서는 주류 사회에 녹아 들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돌고 있는 아웃사이더의 쓸쓸함이 엿보여진다. 등장인물인 라미레스와 래리가 성인군자처럼 완전무결한 사람은 아니지만 두 사람 모두 각자 나라에서 정치적 견해로 인해 탄압받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이라는 점에서 연민을 자아낸다. 푸익 본인도 당시 아르헨티나의 권력을 쥐고 있던 후안 페론과 군부 독재정권의 검열로 인해 작품 활동에 어려움을 겪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중년기부터 말년까지 외국을 방랑하면서 지냈었다 보니 작가가 직접 겪었던 아웃사이더로서의 애환도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던 것 같다. 작가의 전작이었던 거미여인의 키스 만큼 서정적이고 극적이진 않았지만, 작품 도처에서 드러나는 인간적인 고민 덕분에 다소 난해한 스토리 전개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한 이래로 130여권 정도를 읽어왔지만 이렇게 파격적이면서도 독특한 내러티브를 구사하는 책은 처음 봤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진상이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서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호기심이 일기도 해서 내 머릿속으로 등장인물의 기억을 짜맞추면서 여러 방면으로 해석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앞서도 여러번 언급했듯이 플롯이 제법 복잡하지만 이상하게도 대화체로 적힌 덕인지 페이지는 술술 넘기게 만드는 게 묘한 매력이 있던 책이었다. 이야기가 다소 난해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일독을 권장하긴 어렵지만 마누엘 푸익의 작품을 전에 재밌게 읽어봤거나 실험적인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5. 독학자
대한민국 서울 태생의 소설가, 번역가이자 한국어로 저작을 집필하지만 기존 국문학과는 결이 다른 고유한 작품 세계를 지니고 있는 작가 배수아(1965 - )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장편소설 독학자를 읽어봤다. 내가 배수아를 처음으로 접한 작품은 에세이스트의 책상이라는 장편소설이었다. 소설과 에세이가 섞여있는 듯한 독특한 구성에 독문학 고전소설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분위기 덕분에 나로서는 꽤나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대표작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다 예전에 배수아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알게 된 후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이 책 중 어떤 걸 살까 고민했다가 가격이 조금 더 저렴했던 전자를 골랐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쉽게도(?) 바로 읽지 못했었던 이 책을 구해서 한 번 읽어봤다.
이 책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후반 한국의 한 대학에 다니던 주인공이 입학한지 1년 밖에 안됐는데도 대학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중퇴를 결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입학할 당시만 해도 대학교가 그간 다녔던 학교와는 다르게 지성의 보고이자 열띤 토론이 이뤄지는 곳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대학교 문에 발을 디딘 이후 그 환상이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교수는 수십년째 똑같은 교재만 사용하면서 판에 박힌 강의를 이어가고 있고, 학생들도 열망에 젖어 공부하기 보다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궁리로 족보를 돌려보는 모습에 주인공은 크게 실망한다. 그는 자유와 민주화를 부르짖는 소위 운동권 학생들도 여럿 마주리는데 이들 또한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또한 민주화를 향한 대의에는 찬동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몰개성하고 공허한 구호만 돌림노래처럼 반복하고 본인들의 행동에 가담하지 않는 학내 구성원을 철저히 따돌리는 등 맞서 싸우고 있는 군부 독재에 버금가는 전체주의를 보여주고 있어 마찬가지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나마 사회성이 많이 부족하지만 훌륭한 문학적 소양을 갖춘 또래 학생인 S와 뜨뜻 미지근한 우정을 이어가긴 했지만 주인공은 대학 생활에 더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해 중퇴를 결심한다. 몰개성한 집단에서 벗어나 진리를 찾아 방황하는 인간상을 다뤘다는 점에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 연상이 되었다.
본작은 작가의 전작인 에세이스트의 책상처럼 실험적인 구성을 갖추진 않았지만 전작만큼 관념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야기 자체도 뚜렷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게 아니라 대학 교육에 허탈함을 느낀 주인공의 정신 세계를 탐구하는 데 주력하는 편이다. 작가 본인이 머리가 굳은 성인의 나이에도 뒤늦게 독일어를 배워서 번역가가 된 영향인지는 몰라도 본작은 국문학 보다는 독문학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내가 문학평론가나 전공자는 아니지만 취미삼아 독문학 고전소설을 읽어봤던 입장에서 이 책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마냥 새롭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가장 한국적인 경험을 토대로 하다보니 마음에는 훨씬 더 잘 와닿았던 것 같다. 작가의 일견 딱딱해 보이면서도 섬세하고 현란한 문장 덕분에 길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을 곱씹으면서 풍부하게 음미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내가 이 책을 처음 펼쳐보면서 품었던 기대를 웃도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제법 괜찮은 책이었다. 비록 윗 문단에서는 다소 작품의 정서가 익숙해 보인다고 볼멘조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전위적인 색채가 강했던 에세이스트의 책상에 비하면 술술 읽혔다. 여러모로 배수아라는 작가를 처음 알아가기 좋은 무난한 작품으로 이 책을 꼽아볼 만 할 것 같다. 배수아가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다 색다른 국문학을 체험해 보고 싶은 독자라면 한 번 정도 이 책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 dc official App
왕귤 >< 정성추 ㄷㄷ
탑을 만들 정도로 독서량이 많진 않지만 감상문이라도 성실히 남기도록 노력 중이야 - dc App
이 댓글은 게시물 작성자가 삭제하였습니다.
볼 때마다 느끼는데 글을 너무 잘 쓰심.. 책 후기 보고 영업 당했어요
아직 보완할 게 많은 글솜씨지만, 그래도 나름 책 추천 좀 해보고자 소개문 형식으로 감상문 써보는 건데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네요 ㅋㅋㅋ 재밌게 읽어줘서 고맙고 아무쪼록 좋은 책 많이 읽으세요~ - dc App
몰리에르추
몰리에르 바이럴해 준 박경리 선생님께 새삼 감사할 따름 - dc App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인데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dc App
왕귤
글 정말 흥미롭게 잘 읽었어요..혹시 글쓰는 것에 대해 배우신건가요? 아니면 글쓰는방법론을 다룬 책이 있는건가요? 알고싶어요.
딱히 작문법을 배우진 않았습니더. 제가 작가는 아니라서 조언하긴 좀 그렇지만 아무래도 글쓰는 것도 기술인만큼 반복숙달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냥 단편적인 감상이라도 꾸준히 몇 문장씩 써보고 점점 더 살을 붙여보세요. - dc App
@Choir 그런가요,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