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내가 읽은 우리 단편소설 (1)
https://gall.dcinside.com/reading/802732
내가 읽은 우리 단편소설 (2)
https://gall.dcinside.com/reading/804476
내가 읽은 우리 단편소설 (3)
https://gall.dcinside.com/reading/806234
※ 미리 적어두는 추천작
- 윤기정: <차부>
- 강경애: <소금> <모자> <지하촌>
- 현덕: <남생이> <군맹>
※ 윤기정(1903-1955)
윤기정은 일생 동안 약 이십여 편의 단편을 남겼다. 해방 이후에 씌어진 1편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가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후반 사이의 소작에 해당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주요 단편소설 앤솔로지에 거의 실려 오지 않은 작가이다. 그럼에도 카프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어 의아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의 전집의 서문을 보니 그 이유를 대강 알 만하였다. 편집자에 따르면 그의 활동은 작품 외적인 측면에서 두드러졌으며 저작 중에서는 소설보다도 오히려 영화 비평 쪽에서 두드러지는 바가 있다고 평하고 있다. 요컨대 그는 문학에 종사하기는 했지만 소설이 제1직업은 아니었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소설을 꾸준히 썼던 것은 서사적 장르인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때문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평에 대한 선입견 없이 읽어보더라도 그의 소설은 대부분이 동시대 사회주의 계열 작가들의 범작 수준에 머물러 있다. 1930년대의 단편 가운데 가령 「차부(車夫)」 같은 작품은 인력거꾼의 고달픈 신세를 무난하게 그리고 있지만 그 정도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 강경애(1906-1943)
강경애는 1930년대의 십여 년 동안 『인간문제』를 필두로 한 두 편의 장편과 20여 편의 중단편을 남기고 1944년에 작고하였다. 『인간문제』는 이후 1949년에 이북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나(이 책의 텍스트는 연재본과 다소간 차이가 있어 개작 여부에 관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단편소설의 경우 일부 대표작이 앤솔로지에 실려 왔을 뿐이었고 그의 단편이 한 권의 책으로 독립되어 출간된 것은 놀랍게도 1999년의 『강경애 전집』이 최초가 된다. 암만 대표작이 장편이었다고 하지만 근대기의 가장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꼽히는 그의 소설집이 50여 년 동안이나 책으로 묶이지 않은 것은 희한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간도에서의 생활과 취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천착하였다. 「소금」과 「지하촌」은 이곳에서의 비참한 생활상을 묘사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남편이 죽고, 아들이 죽고, 두 딸이 죽는 「소금」의 주인공의 사연은 기구하기가 그지없어서 나쁘게 말하면 여섯 명에게 벌어질 일을 한 명에게 몰아넣은 게 아닌가 하는 억지스러움의 혐의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산당과 일본 쪽 세력이 동시에 노략을 하는 정치적 상황을 비롯해 시대상의 이모저모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어 좋은 의미에서의 고발 정신을 보여준다. 「지하촌」은 상대적으로 이야기의 진행이 차분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차분한 서술 속에서 빈궁을 묘사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어서 선뜩선뜩 독자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 빈궁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주인공 가족의 어리석음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막내아이를 걸핏하면 때리는 주인공 형제의 폭력적 성향인데, 이 아기에게 가장 몹쓸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 마지막에 가서 선의로 그 짓을 했던 어머니에게 있다는 데에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가난을 묘사하면서 그로부터 폭력성과 무지가 비롯되고 있음을 새삼 실감케 한다.
물론 그의 소설 중에는 어설픈 구성이나 문장을 가진 작품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가령 「채전(菜田)」, 「동정」 등은 흔히 하는 말처럼 마치 장편의 줄거리를 요약한 듯한 소략함이 느껴지며, 「산남(山男)」 등은 지나치게 단순한 구성이 거슬린다. 이 밖에 자전적 소재를 다루었다고 생각되는 「원고료 이백 원」도 종종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거론되지만 도식적 구도가 강해서 별로 좋은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 작품에서 그는 가령 최서해의 대표작들을 연상시키는 비참한 현실과 그것을 맞닥뜨린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강경애의 소설에서 특히 득의의 영역이 되고 있으며, 그의 소설을 개성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되는 대목은 절망적 상황을 묘사하는 일종의 그로테스크한 장면의 표현에 있다. 「지하촌」을 비롯해 「어둠」이나 「마약」 그리고 특히 「모자(母子)」가 그것을 보여준다. 농민의 빈궁을 비참하게 그리려는 노력은 당대의 수다한 작가들이 시도한 것이었지만, 유독 그에게서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가난에 대한 현실적 묘사뿐만 아니라 인물의 정신 착란 상태에 대한 심리적 묘사가 보다 풍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두 가지 유형의 묘사가 잘 결합될 때 현실적인 문제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과작이었으며 그나마도 범작 이하 수준의 작품이 꽤나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경향 작가들에 비견될 만한 몇 편의 작품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된다.
※ 현덕(1909-?)
현덕은 소설가이자 아동문학 작가라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서 주목되어 온 인물이다. 앞서 보았던, 소설가이자 극작가였던 송영의 경우와도 비슷하다. 그의 소설은 기본적으로는 아동문학과 구별되지만 어린아이가 주인공으로 부각되기도 하는 등 부분적으로 이어지는 바도 없지는 않다. 그의 소위 소년소설은 지명도가 낮은 작가로서는 약간 이례적으로 느껴질 만큼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심심찮게 채택되어 오기도 했다.
1938년에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는 등단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1940년대 초가 되자 절필 상태에 접어들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의 대표작들은 불과 3년여에 불과한 시기 동안의 소산에 해당한다. 이 작품들은 해방 이후 1947년에 출간된 단편집 『남생이』에 거의 망라되어 있다. 발문을 쓴 『대하』의 작가 김남천은 데뷔작이자 대표작이 된 「남생이」를 두고 해방 이전의 신춘문예 사상 특기할 만한 수작이었다고 평하면서 그의 소설이 당시 묘사를 연마하고 있던 자신에게 상당히 자극이 되었다는 말을 적고 있다. 두 작가의 작품을 염두에 두었을 때 이러한 평은 공치사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표제작인 「남생이」를 위시해 「경칩」 등의 작품에서 그는 유사한 배경과 함께 노마라는 동명의 어린아이를 일종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어떤 연속성을 가지고 읽게 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편의상 노마를 주인공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이 두 편은 사실은 일종의 군상극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남생이」에서 노마의 두 부모와 그들을 측은하게 여기는 영이 할머니, 사실상의 매음 짓을 하던 노마 어머니를 둘러싼 두 사내 등은 모두가 실감 있게 느껴지는 인물들이다. 이 실감이 시종일관 악인처럼 느껴지는 노마 어머니와 그를 채간 사내에게 독자가 평면적인 증오감을 느끼지 않게 만든다. 「경칩」은 표제작에 비하면 아쉬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이야기의 주인공인 기동이 아버지 등의 모습이 무던하게 그려지고 있다. 어린아이 주인공은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의 결구를 맺는 역할을 하면서 풍경 묘사의 실감과 생기를 더하는 효과를 해준다.
한편 「골목」이나 중편인 「군맹(群盲)」 등은 서울 변두리의 가난한 마을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들이다. 땅 주인이 마을을 팔아버려 쫓겨나게 생긴 상황에서 땅 주인의 수하 비슷한 노릇을 하며 이득을 보는 주인공과 그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군맹」은 사회적인 비판 의식이 좀 더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편집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연극단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 「녹성좌(綠星座)」도 은근히 흐름을 같이하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작품들은 등단작의 분위기와는 궤를 약간 달리하고 있으며 그래서 작가의 장점이 다소 숨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등장인물을 그리는 솜씨는 역시 무던한 편이다.
분단 이후 그는 1960년대에 『수확의 날』이라는 단편집을 냈다고 하지만 이 무렵 북한에서 나온 소설이 좋은 작품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상 초기작이 대표작이 되어버린 셈이라 하겠으나 독특한 몇 편의 수작으로 기억되는 작가라 할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