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 플라톤은 포에지를 단순히 배격하기 보다는 포에지를 제어하고 올바르게 쓰려 한 입법자였음. 포에지를 추방하면서도, 철학이 작동하려면 그 형식의 힘은 불가피하기에, 포에지가 못나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힘이 너무 강하다는 걸 너무 잘 알았기에 철학이라는 목줄을 씌우려 했음. 칼라소는 이 구도를 비트는 이름임. 신화는 철학 이전에 세계를 열어젖히는 이야기의 그물망이었고, 포이제는 그 신화를 기억하고 전승하는 공동체적 언어 형식이었음. 칼라소는 그 철학의 목줄에 매여 있던 포에지의 목덜미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신화의 피를 그러모아, 포에지와 신화가 학문에 의해 납작해지기 이전의 압력과 잔향을 다시 불러냄. 물론 이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신화가 어떻게 세계를 조직했는가?라는 조건을 외재적 질문으로 던지는 동시에, 이를 텍스트 안에서 소급적으로 발생시키고자 한 시도임. 그래서 칼라소의 글을 보면 적잖은 단락이 학술적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 논증'처럼' 읽히는 사유의 운동을 따라가다 보면, 설명은 점차 신화적 연상으로 미끄러짐. 명제적 결론 대신 남는 것은 알레고리와 이미지의 잔존하는 힘... 니체의 초기 비평서들에서 도금되어 있던 철학적 텐션을 벗겨낸다면, 하위징아의 아름다운 책에서 역사학자로서 최소한의 진리-의지를 희미하게 탈색한다면, 혹은 바르부르크가 도상학 대신 문헌학을 택해 문장의 배열로 정동을 전개하려 했다면... 아마도 칼라소의 기획은 이 가능성들에게 근접한 실례일지도.
행간: 현 시점 올해의 독서 후보.
발레리와 존재론: 번역이 참 구렸는데 내용이 괜찮아서 봐줌. 햄릿을 해물렛이라 옮기는 건 진심 처음 봄.
인간과 조개껍질: "창조하다가 결국 죽어가는 인간들로 인해 박물관은 계속 살이 찐다. 모든 것이 벽이나 유리상자 안에서 종말을 맞는다..." 짐멜의 대도시 에세이, 벤야민의 경험 논의, 크레리의 지각과 주의 연구, 베라르디의 인지자본주의 하의 병리성 탐색까지, 19세기 중반 이후의 축적, 집적, 과잉이라는 근대성의 조건이 인간종에 가하는 압력을 포착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은 흥미로운 만큼, 뒷맛은 참 아뜩함.
발레리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