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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현재 안에 살아 있다. 완전히 끝맺어진 것이 아니라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은하수에서 반짝이는 별이 몇십만 년 거리의 어둠을 뚫고 빛을 보내주듯이, 매우 가늘기는 하지만 그 대신 한 없이 맑아진 빛을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
……역사에 적는 일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골라진 사실이요, 그 고르는 표준이 되는 것은 지금과의 산 관련이다.
자, 영국 산업혁명 이후로 세계의 주도권은 서방으로 넘어갔다. 동아시아의 주인이라 할 수 있었던 당시 청나라는 서방열강들의 침략으로 인해 몸살을 앓다가 결국 서방의 문물을 수용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서방의 문물을 적극 수용한 일본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당시에 우리나라, 즉 조선도 흐름을 완전히 타지는 못했지만 서방의 문물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주로 군사기술 같은걸 받아들이자 했지만 중국의 변법자강운동처럼 서양 사회제도 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였다. 당시 조선과 청의 지도자들은 사회제도 까지 바꾸자는 것은 반대했다. 왜냐면 자기들의 전통이 끊어지니깐 말이다. 권력을 쥐고 있는데 누가 놓으려고 하겠는가?
미국의 주도로 일본과 러시아가 강화조약을 맺고있는 풍자화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이 지나고 세계는 확실히 서방으로 바꼈다.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이 러시아와 대치하다가 지금은 미국이 중국과 대치하고 있다. 서방의 주도권이 동아시아의 중국으로 넘어올라 하자 미국이 견제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그면 여기서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아니 세계의 주도권이 동아시아로 다시 오고 있는데 좋은거 아니냐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물론 없겠지만)들이 있을수도 있다. 확실히 지금은 이데올로기 시대가 지났으니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북한을 제외하고 그들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군사독재정권) 악이라는 인식이 없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함석헌이 말한대로 고난의 역사였다. 이거는 나도 동의한다. 역사 전체에 침략당해서 방어하는 역사 밖에 없다. 세계의 주도권이 동아시아에 오는건 좋지만 그 주도권이 중국 또는 일본 중심으로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사람 정서 깊은 곳에 이 두나라에 대한 반항심이 아주 크다. 동아시아에 주도권이 온다 해도 우리는 그들 질서에 편입 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주권국가로써 실력을 행사하는 것을 원할 것이다. 얼마전부터 이슈가 되어온 중국의 해적어선 뉴스를 보면 댓글에 제발 주권국가로써 무서움을 보여줘라! 우리나라 땅인것을 인식시켜줘라! 라는 댓글이 많다. 비약일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는 이때동안 스스로 주권을 행사한적이 업었으니 하고 싶다는 심연속의 바램일 수 도 있겠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바램이 어느나라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 스스로 깍아내리고 욕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나라를 사랑한다고 나느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세계의 주도권은 서방에 있다. 군사를 포함한 기술과 제도 그리고 학문까지 서방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사상가로 한번 좁혀보자. 사상가를 보면 우리는 사실 우리나라 사상가를 잘 모를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사상의 중심도 서양으로 갔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식민시절 경험이 있어서 민족주의 성향이 엄청 강하다. 문학에서만 봐도 민족문학이라고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부분이 있다. 이 식민문학이 서양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저 아 불쌍하다. 자기들의 더러운 치부를 한번 들쳐보는 느낌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옛사상가들은 보면 민족성향이 강하다. 함석헌 또한 그렇다. 지금 국제화 때문에 민족의식이 많이 사라진 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의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 책은 이미 몇십년전에 반향을 일으켰던 책이다. 의식과 정신은 성장한다기 보다는 바뀐다.
……누구도 사람 사랑이 어떤 것인가 알기 위하여 천하의 사람을 다 만나볼 필요는 없고, 모든 사람의 경험을 다 들을 필요도 없고, 어느 한 사람을 실제로 사랑해보면 그만이듯이,……
내가 우리나라 사상가를 조금씩 찾아 읽게된 계기는 우리나라 문학을 읽으면서 시작됐다. 이승우나 이청준 이문열 그리고 다른 작가들을 읽어보면서 우리 문학도 서양의 견줄수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면 사상은 어떨까? 철학적인 부분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까지 찾아 읽어본게 리영히와 함석헌이다.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지루한 책을 통독했다는 뿌듯함이 있다.ㅋㅋ
함석헌은 기독교학자다. 그는 퀘이커파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학자 답게 한국역사도 성경의 입장으로 풀어 해석한다. 처음 이 책도 성서로 읽는 한국역사 였다고 한다. 자기말로는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후기에 성경입장을 탈피해서 제목을 바꿨다고 했다.
자, 위에 책 표지를 보자. 책표지는 로댕의 늙은 창부이다. 함석헌은 우리나라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 보고 로댕의 늙은 창부를 우리나라에 비유한다. 한 때는 남자들을 유혹시킬정도로 매력적인 나라였는데 이제 빛이 바래고 몸이 늘어진 고난의 역사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함석헌이 말한 한 때는 언제였을까? 바로 만주를 호령했던 시대라고 한다. 고조선으로 시작해서 고구려로 끝나는 우리 만주의 역사. 발해라는 나라가 잠시 부흥을 했지만 곧 망해버리고 말았다. 통일신라이든 조선이든 함석헌은 냉소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렇다 함석헌은 만주까지 우리나라 영토이고 우리의 역사라고 했다. 신라의 외세도움으로 통일을 이룬것을 결정적인 실수라 보고,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다시 한번 고난의 역사라 시작이라고 본다. 중간중간 큰 전쟁,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하나님이 정신차리라고 일으킨 전쟁이라고 한다. 솔직히 나는 잘모르겠다. 성서적인 입장에서 바로본 역사, 나는 이것이 나쁘다고 보지는 않지만 모든게 성경적인 입장에서 끝난다. 그저 허공에 짖어대는 말뿐인거 같다. 내가 종교를 싫어해서 그런것은 아니다. 나는 종교는 우리 인류에 꼭 필요하고 신을 찾는 방황은 꼭 해보고 싶기도 하고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함석헌은 우리역사가 왜 그런 선택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말하지 않고 오로지 만주를 포기했다는 이유만으로 구박한다. 신의 이름으로
물론 함석헌은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았다. 뜻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거기서 인류와 그 문화의 기원과 그 가치를 볼 수 있고, 민족과 나라의 흥망성쇠의 원리를 볼 수 있다.
……고요히 들여다본다면 반드시 철학자 칸트가 아니고라도 누구나 자기 가슴에 모든 것을 선악의 표준으로 판단하는 이 도덕률이란 것이 살아 있음에 대해 경탄과 외경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은 경이를 없앤다고 하지만, 과학이 진화론을 빌려서 "도덕은 인간 지능의 발달에 따라 생긴 것" 이라 아무리 설명하여도 우리의 의심을 풀어주진 못한다.
이렇게 그는 종교 중심으로 정신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자유하는 의지와 함께 양심을 넣어 자유의 가는 곳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게 하였다.
함석헌은 우리가 고난의 역사가 되버린 것은 반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로 치고박고 싸우기 바빴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에는 탕평책이 실시할 정도로 당쟁이 심했다는 것은 여러분도 다 알것이다. 당쟁이 민주적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당쟁이 격화되서 나라가 구렁텅이에 빠졌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함석헌도 이것을 지적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우리를 식민시절로 밀어넣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주체의식이 없고 강대국에 빌붙어려던 조선이라는 나라. 세종 때를 비롯한 조선초기에는 보수파라는 학자들은 나라를 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이상하게 변질되서 성행하면서 중국에 빌붙는 형제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 조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함석헌이 말한대로 이제 반성을 하고 우리끼리 의기투합해서 대한민국을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함석헌은 한반도의 지리학적 위치를 말하면서 우리국민이 얼마나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었는지 말한다. 동아시아가 태풍이라면 그 태풍의 눈은 바로 한반도다. 우리는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많은 갈등이 휘몰아 치고있다. 지금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사드로 한창 시끄럽다. 정치인이나 지식인들 그리고 국민들 서로 의견이 다 다르다. 나는 사드를 설치하든 안하든 민주적 절차를 따라 그리고 국민 의견이 잘합치되고 많은 토론을 통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수긍할 것이다. 그건 우리의 선택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함석헌이 지적한대로 주체적인 의식이 없고 주변의 강대국에 의견에 따라 우리가 이끌려 가서 결과를 내놓는것은 부정한다. 태풍의 눈이라는 지리하적 특성을 이용해서 한반도가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는 국가로 성장 했으면 좋겠다. 함석헌의 주체적인 의식은 감명깊게 읽었다. (책 제목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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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역사의 운동은 차라리 수레바퀴나 나선의 운동으로 비유하는 것이 좋다. 수레의 바퀴는 밤낮 제자리를 돈 것 같지만 결코 제자리가 아니라 나아간 것이요,……
……마치 사람이 자기의 어머니 탯집 안의 시대를 보지는 못해도 남의 일로 미루어 생각 할 수 있듯이,……
……역사에 '더려면'은 소용없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천만 번을 외어도 역사는 그 소리를 듣지 않는다. 문제는 주어진 데 있다. 이미 있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이 역사에서 그 속에 숨어 있는 명령을 읽어내어 그대로 하려고 애쓰는 데 있다.
……다시 나타나듯 옛날 삼국시대의 모양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삼국이 통일이 되었다지만, 그리하여 수백 년이 지나갔지만 세 나라의 감정은 그대로 있다는 말인가? 묵은 삼국시대의 감정이 그냥 남아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통일이 아직 참으로 되지 못했다는 말이 아닌가. 한때는 속여도 역사는 못 속인다.
……민중은 잘 흥분하지만 감정으로만 움지깅는 것도 아니요.
훌륭한 글 입니다. 추천합니다.
ㅊㅊ
리영희는 조선일보 기자였던 사람이죠. 레퍼런스가 틀려도 그냥 인용해서 책을 쓰는 바람에 오류도 많은 대신에, 이해하기는 쉽습니다. 학교에 몸 담고 있었지만 학문을 들이 파는 학자는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함석헌은 학교에 몸담지 않았지만 진짜 학자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도 시사잡지 사상계 주필이었던 기자 출신이지만, 진짜로 깊이 생각하고 글을 써서 울림이
비교도 안될만큼 큽니다. 함석헌 글을 읽고 있으면 왠지 한 두 세대 전의 지식인은 진짜 석학인데 요즘 지식인들은 날림이라는 느낌마저 듭니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26년 전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저희 어머니께 선물하셨고, 저는 그 책을 물려 받아 읽었습니다. 책 다운 책을 알아보고 선물하는 이웃이 있었던 그 시절이 무척 그립습니다.
ㄴ 형님 오랜만이시군요 매번 제 채글에 댓글 달아줘서 고맙습니당 형님은 인상깊게 읽었나보네요 저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한국사상가 책은 읽어볼계획이라 함석헌의 다른 저작들도 읽어보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