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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2세기 영국, 헨리 2세는 왕권 강화를 위해 자신의 친구였던 토마스 베케트를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한다. 그런데 베케트는 헨리 2세의 의도와 다르게 철저한 금욕주의자로 행동하며 왕과 사사건건 충돌하게 된다. 이 때문에 빡이 돌은 왕은 "저 새끼 없앨 놈 없냐?"고 소리치는데,
이 말을 들은 헨리 2세의 부하들이 멋대로 토마스 베케트를 성당에서 salhae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 사건은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되어 로마 교황은 베케트를 성인으로 공포하게 된다. 이후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매번 순례의 길을 떠나는 몇 영국인들이 생겼다고 한다.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순례를 떠나는 30명의 이야기를 모은 작품이다. 순례자들은 기사, 수녀원장, 탁발 수도승, 변호사, 방앗간 주인 등 가지각색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순례를 떠나기 이들이 묵은 여관의 주인은 그들에게 제안을 하나 하는데, 가는 길에 2개, 오는 길에 2개 제비를 뽑아 순례길이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순례길 중 총 120개의 이야기가 들어있게 된다. 그러나 중간에 끊기는 이야기도 있으며, 무엇보다 제프리 초서가 이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사망해 120가지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는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나씩 한다는 구조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떠오르게 한다. 이 작품에 수록된 이야기는 다양하다. <데카메론> 만큼은 아니지만 야한 이야기도 있고 장황하고 교훈주의적인 사랑 이야기 또 우스꽝스러운 풍자 이야기 등 다양하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만큼 남편도 아내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참고로 제프리 초서 본인도 이 30명 중에 껴 있어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운문으로 한 기사의 이야기를 하는데, 작중 등장인물이
아주 잘라서 말하겠는데, 이젠 그놈의 시를 집어치우시오. 시를 외려면 근사한 사화를 하나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순수한 산문으로 얘길 하나 해요. 재미가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교훈이 될 만한 것을. -207
하면서 작가의 이야기를 끊어버린다. 결말부에는 캔터베리 성당에 도착하기 이르렀기 때문에 신부가 이야기를 하는데, 이 신부는 7대 죄악에 대한 설교를 아주 지루하게 한다. 이 작품에 수록된 이야기 자체가 재밌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그러나 이 작품은 불어와 라틴어의 지배에서 겨우 탈피하기 시작한 근대 영어를 과감하게 구사하여 영어에 영국인의 국어로서의 위신과 긍지를 줬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의 언어적인 측면은 상당히 중요한 것인데, 몇백년이나 차이나는, 게다가 저 멀리 잉글랜드의 언어로 쓰인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상상만 해도 난이도가 엄청나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근대 영어 운문으로 쓰였는데, 이를 현대 영어 운문으로 옮겨도 운율이 손상되고 의미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가 김진만은 과감히 운문을 살리는 것을 포기하고 산문으로 텍스트를 번역했다. 그럼에도 한국어에 대한 뛰어난 이해를 바탕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산문 텍스트를 보여준다. 다음 문장을 한번 보자.
Listen also, lo, what a sharp word for this purpose,
Beside a well, Jesus, God and man
Spoke in reproof of the Samaritan:
`Thou hast had five husbands,' he said,
`And that same man that now has thee
Is not thy husband,' thus he said certainly.
What he meant by this, I can not say;
그리고 또 이런 얘기도 있지 않아요.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예수께서 우물가에서 사마리아의 여인을 꾸짖으며 "너는 기왕에 다섯 사람의 남편을 가졌으니 지금 너를 데리고 사는 그 남자는 너의 남편이 아니로다"고, 분명히 말씀했어요. 이 얼마나 모진 말씀입니까. 그런데 그게 무슨 소리였는지 난 잘 짐작이 가지 않는군요.
원문의 의미구조를 잘 살리면서도 구어체를 적절히 구사한 예시다. 김진만의 목표가 원문의 성격을 포기하는 대신 잘 읽히게 하는 것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그 목표를 확실히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한국스럽게 번역한 부분이 좀 걸린다.
그리고 사방팔방을 쏘다니는 꼴이란, 마치 삽살개. - 29
라는 문장을 들 수 있는데, 삽살개는 한국의 토종개다. 영국의 개는 분명 아니다. 원문을 확인해 보자.
hard rider Greyhounds he had as swift as fowl of flight; - 53
원문의 개는 그레이하운드였다. 그레이하운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견종으로 72km/h를 달린다.
우리에게 친숙한 개 이름을 써서 잘 읽히게 한 것은 알겠는데, 너무 과했다. 1963년 출간된 옛 번역이자 최초의 완역이기에 작자 본인도 후학들의 노고가 필요하다고 인정하고는 있으나 역시 안 짚고 넘어가기엔 좀 그렇다.
약간 이런 느낌?
그래도 다시 한번 말하지만 김진만은 매끄럽게 읽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렇게 한 것이고 너무 과한 한국어식 표현 이를테면 '나무아비타불'같은 표현을 제외하고는 우리말의 리듬을 잘 살려서 번역했다. 번역가 김진만에게 리스펙트를...
나는 이동일 이동춘 역으로 읽었는데 번역은 좋았는데...작품은 걍 옛날얘기 + 설교 듣는거 같아서 지루했음
솔직히 지루하긴 함 - dc App
초서는 중세영어지
ㅇㅇ 중세 헷갈림
재미 없다는 평이 많네. 난 몇 개는 너무 막장 같아서 오히려 지루하진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