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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찐 존자승과 그의 문하생 외눈박이 중을 살육한 주인공은 죄책감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빠짐. 주인공은 자신의 살육에 대해 전혀 정당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무서움을 느끼고 있는 와중, 우연히 자신의 스승과도 너무나 흡사한 늙은 중을 만남.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과오(살육, 욕정)를 늙은 중께 고하고 이에 대해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짐. 하지만 늙은 중은 그것이 구도적 살육이라 번뇌할 게 없다고 말함. 하지만 주인공은 전혀 자신의 의문을 해소하지 못함. 늙은 중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열어밝힌 주인공이 결국 자신을 의심하고 또다시 살육을 저지를 것이라 말함. 결국 주인공은 늙은 중의 말대로, 높은 바위를 밀어뜨려 늙은 중마저 살육함.
그리고 그 주검을 뒤로한 채 1일차에 만났던 도보 고행승의 주검을 보며 이렇게 말함. "그는 공으로 돌아가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색으로 돌아가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래서 죽었을 때, 입으로 흙을 토해낸 것이다. 흙 안에 안겼을 때라야, 그는 다시 흙으로부터 떠나게 되리라. 물론 다시 흙 속으로 돌아올 것이지마는". 나는 이 지점이 앞서 늙은 중이 말했던 "참, 아까 우리는, 거꾸로 서서 죽은 얘기를 했던가? 그러나 누가, 저 하늘이 무거워서 ,그 공을 떠받쳐 올리느라고 엎드려 죽었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있던가?" 와 연결된다고 생각함.
결국 지금까지의 문제의식은 계속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인데, 우리는 이 구절을 단지 모든 것이 텅 빈 것과도 같다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작가는 이러한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듦. 작가가 계속 제기하는 질문은 결국 공은 색인데 왜 공에 그리 집착하는가, 색은 부정될 것이 아니고 색이 즉 공임에도 왜 공만 궁구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음. 이것은 앞서 나왔던 '습속으로부터 도피해 습속에서 드는 죽음'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함. 결국 늙은 중이 하늘을 떠받들다 엎드려 죽은 사람은 없다고 말한 것도 결국 하늘 즉 공만 떠받들다 죽는 것은 구도의 자세가 아니고 결국 거꾸로 서서 땅 즉 흙인 색을 떠받들다 죽는 것이 구도의 자세라고 설파하는 것이 아닐까 함. 그러기에 도보 고행승이 흙을 토하며 죽은 것도 결국 '습속에서 도피하지 않고 습속에서 드는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습속에서 자발적으로 드는 죽음만이 진정한 공의 깨달음이라는 말을 하고싶은 게 아닐까 함.
그리고 아직 주인공이 늙은 중을 돌로 깔아뭉개 살육한 것이 진정으로 이해는 안가지만 나름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하나의 확인 방식처럼 느껴짐. 즉 지금까지 두 번의 살육에 대한 확인 방식. 결국 돌로 떨어뜨려 살육하든 때려서 살육하든 무엇이든 공으로 공을 덮치는 격인데, 이것에 번뇌할 자리가 어디있는가라는 하나의 자문자답. 비록 늙은 중이 주인공의 살육을 구도자의 살육이라고 그의 죄책감을 무화시킬만한 발언을 하였음에도, 결국 자신의 죄책감과 욕정을 깨달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하나의 행위적 선언이 아니었을지 싶음.
참고로 나도 이런 고민을 많이 하면서 살아온지라 더 소설이 재밌게 느껴짐. 물론 내 이해가 아직 미숙하고 일면적이겠으나, 여러번 읽어보며 추후 느끼면 될 일. 진지한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깨달음을 지피는 주인공의 여정과 함께 하는 것은 정말 즐겁다.
49일까지 정진하십지. 글 잘 보고있습지. - dc App
헤헤헤 감사합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