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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마지막 장.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다시 최초의 목적이었던 행복으로 돌아가, 우리가 결국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지에 대한 답변을 말한다.
행복은 그 자체로 선택할만한 활동이고, 그 행복에 도달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철학적 지혜를 활용해 지성의 활동을 이용하는 관조적인 삶이다. 이 관조적인 삶이 지속되는만큼 행복도 지속되고, 이는 가장 “신적인 것”이기에 가장 완전하고 다른 행복보다 우월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인간은 유한하다. 인간은 인간적인 것을 생각해야 하며, 유한한 삶에서 우리는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평생 관조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결국 최상의 행복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일까? 최상의 행복에 도달할 수 없기에 지금껏 논의한 행복한 삶에 관한 논의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
“불멸의 존재가 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하며, 우리 안에 있는 것 중에서 최고의 것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차선의 행복으로 지금까지 강조했던 실천적 지혜를 통한 도덕적 미덕을 발휘하는 삶을 제시한다. 비록 “신적인 것”에 가장 가까운 철학적 지혜를 통한 관조적인 삶을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지만, 이상을 바라보고 실천적 지혜를 통해 꾸준히 길을 걷는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미덕을 발휘하는 삶에 도달하고, 결국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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