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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옛날부터 언어가 신비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영어를 처음 배울 때부터 그랬다. 그리고 영단어를 처음 배울 때도 그랬다.


그때는 영어를 하나의 지식처럼 여겼다. 누군가가 영어 원어민과 회화도 못하는데 영어 수업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농담을 해도 웃으면서 흘려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실제로 영문을 보고 해석을 하는 데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다.


영문을 죽 훑어보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에 검색하여 알게 된다.

사전에도 없는 단어가 나오면 골머리를 싸매다가도 구글에 검색하여 위키피디아나 영문 사전으로 단어의 정의와 용례를 외우고 그랬다.


그렇게 혼자 놀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언어란 무엇인가? 영어는 왜 한국어와 문법이 다른가

그리고 언어의 문법이 서로 이렇게 다르다면, 왜 다르고, 다른 나라의 언어는 또 어떻게 다를까?


그리하여 이 책을 집어 읽게 되었다.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사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은 네 가지다. 노래 부를 때는 그리스어, 전쟁할 때는 라틴어, 슬퍼할 때는 시리아어, 일상적인 말을 할 때는 히브리어' 

(본문 9쪽)


흔히들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정신, 그리고 사고 방식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

물론 각 언어는 각자 고유한 표현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때로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표현들이 언어를 쓰는 인간의 인지에 영향을 미칠까?

이에 대하여 이 책은 색깔을 예를 들어 우리에게 언어가 두뇌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탐구한다.



 19세기 말, 당시 영국의 하원의원이었던 윌리엄 글래드스턴은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인 호메로스를 너무나도 신성시하였고,

이에 그의 아름다움을 설파하고자 그의 작품 일리아스를 분석하여 책을 출판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그는 예상치 못한 점을 발견하여 당황하였다.

그것은 일리아스의 서술에 반복적으로 의아스러운 수사법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포도줏빛 바다(wine-dark sea)’이다. 하지만 그 이외에도 수상한 언어적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호메로스는 바다 이외에도 소를 와인에 비유하고, ‘남쪽 하늘은 파란색이 아닌 다른 색깔로 표현하며,

꿀은 초록색이라고, 키클롭스의 동굴에 있는 양을 묘사하며 바이올렛 털이 두툼한 아름답고 큰 양이라고 한다.


이에 이 학자는 이러한 수상한 수사를 모으고 모아 나름대로 미심쩍은 깐에 합리적인 결론으로 끝맺는 논문을 신문에 기고한다.


바로 이러한 색깔의 불일치는 호메로스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고대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은 색깔인지능력이

현대에 비해 덜 발달되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이었다.


,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세상이 빨강이 약간 가미된 빛과 어둠이라는 이분법적인 흑백을 바탕으로 하여 인식했다는 말이 된다.



 해당 작품은 언어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혹자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주로 백포도주를 빚었고, 또 이 당시의 포도주는 물을 타 마셨기에

포도줏빛이 바다의 의 속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글래드스턴을 비판하였고,


나머지 일부는 생각한 적 없는 발상이라며 해당 논문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칭찬하며 충격에 빠졌다.

이에 호기심이 생긴 학자들은 다른 고전 작품들에도 비슷한 의문점이 발견되는지 확인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 성경에서 빨간 말점박이 무늬가 없는 빨간 암소, ‘비둘기의 날개는 은을 입었고, 그것은 초록빛 금으로 번쩍였다는 구절을 발견한다.

(본문 70쪽)


그리고 다른 문화권인 고대 인도의 베다 시(), 고대 노르드어로 된 아이슬란드 모험담인 사가와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 등에서도

호메로스의 저작과 성경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색깔묘사의 결핍이 두드러진다.  

 

1858년 발표된 이 논문은 당대의 학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고,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모든 사람들은 색깔을 똑같이 인식할까?’



 현대인들은 색맹을 이유로 들어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색깔을 똑같이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19세기 당시에는 색맹이라는 증상이 알려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테니스 공이 지금과 같은 색이 된 건 꽤 최근의 일이지만, 테니스 공의 색깔이 무엇이냐고 사람들에게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누군가는 테니스 공이 노란색이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연두색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같은 테니스 공을 보더라도 아무개는 노란색이라고 하고, 혹자는 연두색이라고 대답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당대의 학자들은 이와 같은 현상에 합리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요컨대, 누가 보는지에 따라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그것을 별다른 물건으로 인지하거나 다르게 설명할 것이라는 차이점이 당시에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었지만, 

그것이 선천적인 질병이나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당대 유수의 학자들과 교수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또다른 예시를 들어보자전 세계의 언어 중에는 초록 색과 파란색을 구분하지 않는 언어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와 일본어는 전근대까지만 하더라도 초록과 파랑 두 가지 색깔을 딱히 구별하지 않고 각각 푸른색, あお()이라고 총칭하였고,

근대에 들어 서구와의 교류로 인해 초록(green)과 파랑(blue)을 엄밀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그러나 초록과 파랑을 구분하지 않던 언어 습관은 지금도 영향을 미쳐 오늘날까지도 신호등의 초록불을 파란불 혹은 청신호(靑信號)라고 관습적으로 부른다.

[일본어의 경우 靑信(あおしんごう)이다.]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채를 상대적으로 적은 색채 어휘로 표현하는 것은 비단 동아시아의 경우만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도 해당된다.

시베리아 너머 극동 지방의 원주민인 추크치인들의 경우가 그러한 빈곤한 색채 수사의 극단적인 예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스웨덴의 의사 에른스트 알름퀴스트는 시베리아 추크치인들이 검정, 하양, 빨강 단 세 가지 색깔용어만 가지고도 색깔을 지칭하는 데 아무 문제도 겪지 않는다고 보고했다이들은 뉴킨이라는 말로 검정, 파랑, 그리고 빨강 색조를 띠지 않는 짙은 색을 모두 지칭하였고, ‘니들리킨이라는 말로 하얀색과 밝은 색을 모두 지칭하였으며, ‘츠체틀주라는 말로 빨강색조를 띠는 색깔을 모두 지칭하였다.’ 라고 하였으니,

(본문 94~95쪽)


얼핏 보기에는 이들은 세상을 흑백과 미약한 색조의 빨강이 가미된 무채색에 근사하게 인지하고 있으리라고 짐작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결정짓는다는 말은 허황된다.

미세하게 표현하지 않을 뿐 사람은 외부 세계에서 받아들이는 정보를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언어적 차이는 위의 질문을 좀더 구체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로 탈바꿈시킨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색깔을 다르게 인식한다. 그렇다면 이는 태어날 때 선천적인 인자(因子)가 작용한 결과일까, 아니면 자라나면서 후천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결과일까?’


책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