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나가타 히로코와 소비사회

연합적군의 여성 지도자였던 나가타 히로코에 대해 써보려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잡지 <마르코폴로> 1993년 7월호에 실린 나가타 히로코에 관한 묘한 기사를 보고 나서부터다. '잇달아 동료를 린치한 나가타 히로코의 [옥중 일러스트]는 소녀틱'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나가타 히로코가 도쿄 구치소에서 그린 몇 점의 일러스트와, 연합적군 사건에 관한 여러 서적을 편집한 바 있는 타카자와 코지의 글이 조합된 형태였다. 그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공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나가타의 수기 『속 16의 묘비 - 연합적군 패배로부터 17년』(1990년)에도 삽화나 속표지 그림으로 그녀의 그림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해당 잡지를 통해 처음 그녀의 일러스트를 접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마르코폴로>가 의도한 대로 이 '소녀틱'(이라는 표현보다는 '오토메틱(소녀 감성)'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한 일러스트와 나가타 히로코나 연합적군이라는 이미지 사이의 엄청난 괴리감에 당혹감을 느꼈을 게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지금도 나오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MY 시집』 같은 소녀 독자 투고 전문 잡지에나 실릴 법한, 소녀 취향의 유치한 일러스트 포엠(시화)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나가타 히로코가 옥중에 있던 어느 시기에 야마토 와키의 소녀 만화를 열심히 모작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지인인 출판 관계자에게서 들은 적이 있어서(이 사실은 『속 16의 묘비』에서도 언급된다), 그녀가 '오토메틱'한 일러스트를 그린다는 잡지의 '보도'에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일러스트 포엠풍 그림을 새삼 보게 되면서 나가타 히로코가 대체 어떤 여성이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녀의 정신은 내가 지금까지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카와이이(귀엽다)'라는 단어에 그 심성을 의탁했던 '소녀'들과 확실하게 맞닿아 있다. 소녀 일러스트를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그녀는, 그러한 시대정신 속에 존재했던 흔해 빠진 한 명의 소녀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의 '오토메틱' 일러스트는 무엇보다도 그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르코폴로>에 실린, 나가타 히로코의 일러스트에 곁들여진 타카자와 코지의 글은 그녀의 일러스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적어도 나에게는 지독하게 읽기 힘든 '신좌1파'의 언어로 연합적군 사건을 검증하려 드는 내용이었다. 나는 나가타의 일러스트 그 자체보다도, 나가타의 일러스트와 나가타에 대해 기술하려는 그녀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언어 사이의 괴리를 훨씬 더 기이하게 여겼고, 또 당혹스러웠다. 나가타 히로코라는 여성의 내면을 너무나도 무자각하게 드러낸 이 '오토메틱' 일러스트와, 그 동시대를 살았을 '이성' 타카자와 코지의 비평 사이의 이러한 괴리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점에 흥미를 느꼈다.

타카자와 코지가 왜 기사에서 그녀의 일러스트를 언급하지 않았는지, 그 직접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나가타의 일러스트와 함께 실린다는 사실이나 기사의 제목에 대해 그가 그저 몰랐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 기사를 보며, 타카자와 코지를 포함해 나가타 히로코와 동시대를 살았고 나가타가 과거 산악 베이스에서 휘둘렀을 법한 생경한 사상의 언어를 어떤 형태로든 공유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그녀의 '오토메틱'한 일러스트가 지닌 의미를 이해할 만한 감각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정치적·사상적 언어에서 누락된 지점에 나가타의 일러스트가 자리하고 있으며, 나아가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 속에 놓였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명확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닐까. 사건으로부터 20년이 지나 나가타 히로코가 내민 일러스트는, 연합적군 사건에 정치나 사상 문제와는 전혀 다른 독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녀 자신이 무자각한 채로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그에 대해 써보려 하는 것이다.



토야마 미에코의 '총괄'

자, 여기서 간단히 '복습'을 해두자면, 이른바 연합적군 사건은 12명의 사상적 동지를 '총괄'이라는 형태로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이 '총괄'로 인한 희생은 1971년 12월 31일 오자키 미츠오의 죽음을 시작으로, 이듬해 72년 2월 12일 야마다 타카시의 죽음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지속된다. 하지만 '총괄'이라는 이름의 개인 비판이 시작된 것은 그보다 조금 더 전의 일이다. 12명의 희생자를 낸 '총괄'의 발단이 된 것은, 첫 희생자가 나오기 약 한 달 전인 71년 12월 5일, 나가타 히로코가 토야마 미에코를 향해 가한 비판(이른바 '토야마 비판')이라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사카구치 히로시는 『아사마 산장 1972』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저녁, 훈련이 끝나자 난로 주위에 모여 잡담이 시작되었다. 이때 나가타 씨가 적군파 여성 멤버인 토야마 미에코 씨를 매섭게 비판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것이 일련의 총괄 요구의 발단이 된 것이다.

나가타 씨는 "토야마 씨, 왜 반지를 끼고 있어? 모리(츠네오) 씨가 빼라고 하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중략) 토야마 씨의 경우, 첫날 대면식 때 자기소개를 아주 건성으로 끝내거나, 다른 사람이 발언하는 도중에 머리를 빗거나 입술에 크림을 바르는 등 회의에 집중하지 않고 마치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양 행동했다. 그것을 보고 우리 혁명좌1파 사람들은 그녀에게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는데, 나가타 씨의 발언은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비판이었다. (방점은 필자)


나가타가 포문을 연 셈이 된 '토야마 비판'이 '일련의 총괄 요구'의 발단이었다는 인상은 사카구치 히로시의 수기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나가타 히로코나 그 외 사람들의 수기를 훑어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듯하다. 연합적군 사건에서는 첫 비판 대상이었던 이 토야마 미에코를 포함해 총 4명의 여성이 살해되었는데, '총괄'의 맥락이 연합적군 멤버들이 토야마 미에코의 여성스러운 행동거지를 비판하는 데서 시작되었다는 점에 나는 새삼 흥미를 느낀다. '토야마 비판'의 세부 사항을 조금 더 파고들어 보자. 예컨대 앞서 언급한 <마르코폴로> 기사에서는 토야마 비판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보겠다.


"당신은 왜 여기에 온 거야?"

"왜냐니……, 군사 훈련을 받으러 왔죠."

"그게 아니라, 당신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왔냐는 거야."

"나는, ……혁명 전쟁을 한층 더 전진시키기 위해, 나 스스로도 군인이 되어 혁명 전사가 될 필요성을 이해했으니까……."

"틀렸어. 당신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산에 왔냐는 말이야. 당신은 자기 자신에 대해선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있어. 대체 왜 산에 온 거야?"

"대체 무슨 말을 하라는 건지……."

"우리가 듣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실제적인 부분입니다. 지금 내가 묻는 건, 어째서 혁명 전사가 되려고 했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혁명 전쟁을 짊어지고 가기 위해서는 군대의 질을 획득하고, 군대의 질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니라니까. 좀 더 현실적인 거, 초현실적인 거……. 그럼 하나 묻겠는데, 아침에 화장은 왜 한 거야?"

"……."

"산에 와서 대체 왜 화장을 할 필요가 있는 거지?"

"……."

"머리는 왜 기르고 있는 거야?"

"……이건 전에 머리가 짧았고, 경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비합법 활동을 위해 기르기로 한 거야……."

"그럼 가발을 쓰면 되잖아.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을 텐데. 왜 기르고 있는 거야?"

"……."

"이대로라면 당신과 함께해 나갈 수는 도저히 없어."

"……."

"우리는 당신이 총괄을 해낼 때까지 산을 내려가지 않겠어.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총괄은 극히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져야 해."


토야마를 힐문한 것은 나가타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멤버 대다수였지만, 나가타의 '반지'에서 시작된 비판이 사상적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초현실적'(사카구치의 발언으로,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뜻일 것이다)인 '화장'이나 '머리카락' 같은 문제로 결국 수렴해 가는 모습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사건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여기서 비판받고 있는 토야마 미에코가 고작 이딴 이유로 살해당해야만 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은 새삼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사건 당시 중학생이었고 오늘날까지 사건의 세부적인 내막에 대해 이렇다 할 지식이 없었던 나의 솔직한 감상이기도 하다.



그들의 사상을 위협한 것

그렇다 쳐도 '반지'나 '화장', '머리카락'이 만약 정말로 '총괄'의 발단이었다고 한다면, 그러한 여성적인 물건이나 행동거지가 대체 왜 그들과 그녀들의 적의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일까.


예를 들어 타카자와는 <마르코폴로> 기사에서 이 토야마와 나가타 사이의 대립을 "도시와 농촌(=산악)이며, 도시 게릴라 노선과 산악 사회 혁명주의의 대립이고, 과도기 세계론과 일거적 공산주의화론의 대립이며, 혁명 전쟁 노선과 프롤레타리아 문혁 노선의 대립이다"라고 쓴다. 사실 나는 이런 '전문' 용어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동시에 타카자와가 재구성한 '토야마 비판'의 정경에서는, 이토록 거창한 정치적 노선 대립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인상을 나는 조금도 받을 수 없었다.

아니, '반지'나 '화장' 같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소한 문제를 정치 노선 대립이라는 거창한 문제로 둔갑시켜버리는 이런 종류의 언어 기술 자체에서 비극의 이유 중 한 자락을 간파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토야마 미에코의 반지가 상징하는 그 무언가는, 정치사상과는 다른 차원에서 연합적군이라는 조직이 '총괄'에 이은 죽음으로 자멸해 갈 수밖에 없을 만큼 그들의 사상과 입장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토야마 비판을 통해 연합적군 사람들이 무엇을 비판하려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나가타 히로코의 집요하게 반복되는 토야마 비판의 한 장면이다.


(모리는) 이어서 엔도 씨를 질타하듯 비판했고, 나아가 토야마 씨도 비판했다. 그것은 토야마 씨가 여성임을 의식하고 활동하고 있다는 비판을 통해, 여성이라는 것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비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필요한 비판이긴 하겠지만 나의 여성 자립 주장과는 어딘가 다르다는 생각으로 듣고 있었다.
(『16의 묘비』, 방점은 필자)


나가타가 여기서 '나의 여성 자립 주장'이라고 표현하며 모리의 토야마 비판과 은연중에 대치시키고 있는 '감정'은, 이윽고 80년대에 '페1미니즘'이라고 명명될 감수성으로, 시대를 너무 앞서간 페1미니스트로서의 나가타의 본질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이 점은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토야마 비판'으로 시작된 것이 결국에는 모리를 비롯한 남성들에 의한 여성성 그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모습을 바꿔 갔다는 사실이 이 증언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러한 연합적군 사람들의 여성성 부정이라는 기묘한 사상은, 12월 20일 모리의 실로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선언을 통해 명료해진다.


"앞으로는 여성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기로 했다. 지금까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건 자기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생리할 때 피 나는 거 기분 나쁘잖아"라고 서두를 꺼낸 뒤, "여자는 왜 브래지어나 거들을 하는 거냐. 그런 거 필요 없지 않냐", "어째서 생리대가 필요한 거냐. 그런 거 필요 없지 않냐"라며 그 비판은 에스컬레이트된다. 급기야는 생리 때도 휴지 대신 신문지를 쓰면 된다는 뉘앙스의 발언까지 한다. 생리혈이 "기분 나쁘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듯, 그의 비판은 여성에 대한 생리적 혐오가 전제되어 있다.

나가타 등의 재판 과정에서는 총괄로 인한 죽음의 문제를 나가타 개인의 생리적 문제로 귀결시키려는 경향이 검찰 측에 여실히 드러났고, 나가타는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만약 총괄사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특정 개인의 '생리적 문제'를 각별히 문제 삼을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모리 쪽에서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인상이다.

나가타의 증언을 믿는 한, 그것은 결코 정치 문제 따위가 아니다. 모리가 일련의 발언 마지막에 "산을 거점으로 삼은 이상, 앞으로 파마는 산에서 하도록 해야 하고 커트도 그렇게 해야 한다"며 '토야마 비판'에서 문제가 되었던 '머리카락'을 언급하고 있는 점을 생각해보더라도, '토야마 비판'이 패션에서부터 성적 신체에 이르는 모든 여성성 전체의 부정이라는 형태로 집약되어 갔음을 잘 알 수 있다. 반복하지만 그 근거는 혁명 사상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생리혈이 기분 나쁘다"는 모리의 여성 혐오에 있다.



저항할 수 없는 여성 병사의 비극

자, 4명의 여성 중 첫 번째 희생자가 되는 것은 코지마 카즈코인데, 그녀를 향한 비판 역시 이러한 모리의 생리적 혐오의 연장선상에 있다.


모리 씨는 이때의 지도부 회의에서,

"코지마 씨가 '나, 요새 변했어. 밝게 지내기로 했거든'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이건 문제다."

라고 반복해서 비판하기 시작했다.

모리 씨는 코지마 씨의 발언을 흉내 내며 비판했지만, 어째서 문제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16의 묘비』)


사건 관련 수기 중 코지마 카즈코에 관한 기술을 종합해 읽어보면, 그녀는 소녀다운 행동거지와 말투를 지닌 여성이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요컨대 그녀는 무척 '귀여운' 아이였던 것이다. 모리는 코지마의 이 소녀 같은 말투 자체를 생리적으로 비판하려 했던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훗날 그녀가 자신의 강간 피해 경험을 자기비판으로 이야기했을 때조차 "코지마가 모르는 남자한테 강간당했다고 떠벌린 건, 자기를 영웅주의적으로 묘사하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야. 애초에 코지마는 그 장소의 풍경부터 얘기하려고 했잖아. 그저 이야기, 꾸며낸 이야기라고"라며 그녀의 소녀 취향을 억지로 들먹였던 것을 함께 생각해 보아도, 모리의 비판이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는 역시 명백하다.

여기서 코지마가 '나'에 대해 말하기 위해 사용한 소녀 취향의 언어는, 그녀와 동시대의 소녀 만화가들이 '나'를 이야기하기 위해 사용했던 언어와 아마도 동종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코지마적인 '언어'는 소녀 만화를 거쳐 상품화되고, '나'를 이야기하기 위한 '언어'로서 대중화되어 간다. 다른 장에서 다시 지적하겠지만, 나가타에게 있어 자신의 '여성성'에 윤곽을 부여하기 위해 선택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언어였으나, 코지마가 획득하고 있던 언어는 '소녀 만화'로 이어지는 언어였다. 모리는 그 코지마의 '언어'에 대해 그 자신조차 이유를 언어화하지 못한 채 부정한다. 모리가 뜻밖에도 '이야기'라고 형용한, 코지마가 지닌 '언어'에 대한 모리의 거부 반응은 연합적군 사건의 본질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연합적군 사람들이 산악 베이스에서 대치해야만 했던 것은 소녀 만화적인 '나'의 이야기로서의 '이야기'였고, 그것은 코지마를 비롯한 연합적군 여성들이 공유하던 시대정신이었다. 하지만 그 '적'에 대해 모리는 단지 감각적으로 혐오할 뿐이다. 그 양자의 괴리가 연합적군을 둘러싼 비극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사카구치 히로시는 "코지마 카즈코 씨에 대해서는 언제 총괄을 요구했는지 내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고 회상한다. 여성성을 혐오했던 모리 이외의 남자들은, 애초에 이 여성들과의 사이에 가로놓인 '언어'를 둘러싼 괴리의 존재조차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 사카구치의 증언은 기이하게도 방증하고 있다. 코지마 카즈코는 '총괄'을 당해 결박된 상태로 숨을 거둔다. 여성 중 두 번째 희생자가 되는 것은 가장 먼저 비판받았던 토야마인데, 그 '총괄'의 한 장면을 나가타 히로코의 수기에서 인용하겠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때릴 것을 모리에게 요구받는데, 여기서도 모리의 여성성을 향한 증오는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러던 중 모리 씨는 "입술을 때려라"라고 말했다. 토야마 씨는 입술을 때렸다. 입술이 터져 피가 났고, 점차 처참한 몰골로 변해갔다. (앞의 책에서)


나아가 모리는 토야마의 머리카락을 자르라고 명령한다. 모리는 립밤을 발랐던 입술, 긴 머리카락 등 '토야마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신체의 특정 부위를 직접적인 폭력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나저나 여기서 의문스러운 것은, 그녀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합리한 여성성의 부정에 대해 이렇다 할 반론도 하지 않은 채 순순히 따랐는데 대체 왜 그랬냐는 것이다. 폭력이 무엇보다 반론을 허락하지 않았을 테고, 또한 그녀들이 여성성을 주장할 명료한 언어를 갖지 못했다는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중 하나로 연합적군 내부의 그녀들과 남성들 사이의 관계성에서 문제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으로서 세 번째 희생자가 되는 오오츠키 세츠코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연합적군 내의 남녀 관계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오오츠키에 관해서는 그녀와 산악 베이스에서 연애 관계였고 결혼까지 맹세했었다는 우에가키 야스히로의 『병사들의 연합적군』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그 기술을 따라 검증해 보자. 우에가키는 오오츠키에 대한 첫인상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오츠키 씨를 처음 보았을 때, 대체 어디서 굴러온 귀염둥이 아가씨인가, 올 곳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우에가키의 '귀염둥이 아가씨'라는 오오츠키에 대한 첫인상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총괄'을 당하는 근거가 그녀가 '귀염둥이 아가씨'라는 사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오오츠키에 대한 비판은 모리가 "여성 문제에도 관심을 갖겠다"고 발언한 직후, 그녀가 판탈롱 바지를 "동조자에게 모은 돈으로 샀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이 발단이 된다. 나는 여기서 오오츠키가 투쟁 자금으로 판탈롱 바지를 사버리는 감각의 소유자였다는 점을 흥미롭게 여긴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자기비판하지만, 혁명 사상과 판탈롱은 그녀 안에서 오히려 공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감각은 그녀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토야마나 코지마에게도, 그리고 아마도 그녀들과 동시대의 여성들에게 공통된 감수성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예컨대 우에노 치즈코의 다음과 같은 술회는 이를 뒷받침한다.


1970년, 학원 투쟁이 패배하고 시대가 어두워지기 시작한 겨울, 도쿄 시내 길거리에서 과격파 여학생이 체포되었다. 그때 그녀는 복사뼈까지 닿는 맥시 코트에 무릎 위로 올라오는 초미니스커트라는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패션에, 잠자리 안경을 쓴 당시의 전형적인 한껏 멋을 부린 차림새였다. 패셔너블한 미인 과격파 여학생이라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신문 기삿거리가 된다. 실제로 다음 날 아침 각 신문은 길거리 체포 당시의 광경을 앞다투어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게다가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그때 그녀가 옆구리에 패션 잡지 『앙앙(anan)』을 끼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중략) 물론 여기서는 혁명에 헌신하는 여자가 멋을 부리다니, 하는 구좌1파의 금욕 윤리 따위는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들의 옷차림은 레포(정찰)에 나서기 위한 위장이었다는 설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패션을 즐기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지는 않는다.
(『<나> 찾기 게임』)


여기서 나는 히라츠카 라이초의 쇼와 초기 '모던 걸' 비판을 떠올려 봐도 좋을지 모른다. 라이초는 '모던 걸'은 "누구나 쉽게" 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비판했지만, 쇼와 초기에 한 번 그 윤곽을 드러낸 소비사회는 누구나 모던 걸이 될 수 있는 자유를 여성들에게 부여했다. 우에노가 기술한 여성 좌1파의 모습은 한껏 치장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획득할 수 있는 표층적인 새로움과, 라이초가 구애받던 '내면적 성찰'을 아무렇지 않게 공존시키고 있는 여성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김살 없는 여성들을 향한 연합적군과 라이초의 시선은 기묘하게 일치한다. 양쪽 모두 '치장하는 것'과 '사상'의 공존을 허락하지 않는 결벽주의인 것이다.


나중에 다시 논하겠지만, 연합적군 사람들이 배제하고자 했던 것은 여성들 안에서 혁명 사상과 이토록 쉽게 공존해 버리는 이런 종류의 소비사회적 감수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합적군의 여자들 대다수는 이를 기피하려는 남자들에게 맞설 충분한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이 하나의 연합적군 비극의 요인이다.



'귀염둥이 아가씨'와 '눈이 귀엽다'

'귀염둥이 아가씨' 문제로 돌아가자.


우에가키에게 '귀염둥이 아가씨'라는 첫인상을 주었던 오오츠키 세츠코는 우에가키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인 후 이렇게 말한다. 과거 오오츠키의 연인이었던 와타나베 마사노리와의 관계를 언급한 발언이다.


"나는 당신에게 자기비판을 해야 할 게 있어. 미나미알프스에서는, 당신이 와타나베를 닮아서 당신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말았어. 자기비판할게." (중략)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 안 그래. 당신은 와타나베랑은 전혀 달라. 와타나베와의 관계에서는, 난 부르주아적인 귀여운 여자일 뿐이었어."
(『병사들의 연합적군』)


오오츠키는 이전 남자에게 '귀여운 여자'일 뿐이었던 자신을 자기비판한다. 그녀는 남자들의 비판을 선수 치기라도 하듯 스스로의 소녀 취향이나 '귀여운 여자'라는 사실을 애처로울 정도로 기꺼이 자기비판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애처로움은 오오츠키가 이번에는 우에가키에게 '귀여운 여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오오츠키는 판탈롱 사건, 그리고 남자에게 그녀가 항상 '귀여운 여자'라는 점, 그리고 '소녀 취향'이라는 점을 '총괄'당하는 대로 자기비판하며 죽어간다. 그러나 그녀는 연합적군의 남자들이 바라는 여자가 되려고 필사적이었을 뿐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마지막까지 남자들에게 '귀여운 여자'였던 것이다. 이것은 코지마와 토야마, 두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귀여운 여자'라는 것은 남성의 지배에 순종적인 여자들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귀염둥이 아가씨'로 간주하고, 여자들이 '귀여운 여자'로서 이에 부응한다. 그리고 남자들의 욕구가 그녀들의 여성성마저 부정하려 들어도, 여전히 이에 부응해 버리고 만다. 연합적군의 여성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카와이이(귀엽다)'를 둘러싼 남성들과의 지배 관계이다. 그녀들은 '귀여운 여자'가 되려다 죽어간 것이다. 멤버 중 한 명이 베이스에 데려온 아기를 데리고 도망친 나카무라 아이코 역시, 예컨대 남성 멤버 중 한 명에게 "짐칸에 다소곳이 누워 자는 모습이 귀여웠다"라는 말을 들었던 것을 보면, 역시나 '귀여운 여자'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여자들이 남자들의 '귀엽다'는 시선에 순종적이었던 반면, 단 한 명 이 시선을 남자들에게 도로 내던진 여성이 있다. 임신 8개월의 무거운 몸으로 여성으로서 네 번째 희생자가 되는 카네코 미치요다.


여느 때처럼 모리의 끈질기고 집요한 여성 비판이 시작되었고, 그 화살이 카네코를 향했다. 모리의 비판은 그녀가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가타의 『16의 묘비』에서 인용해 보겠다.


모리의 발언이 너무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나는, 영문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그것을 부정하고자 카네코 씨에게,

"모리 씨를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었다. 카네코 씨는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웃으면서,

"눈이 귀엽다고 생각해."

라고 말했다. (방점은 필자)


카네코는 여자들을 '귀여운 여자'라며 억압해 온 모리를 향해 역으로 '귀엽다'는 단어를 던진 것이다. 남녀 간의 지배 관계를 나타내는 언어로만 작용하던 '귀엽다'를 최고 지도자인 모리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준 그녀의 발언이야말로 그야말로 혁명적인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카네코의 '귀엽다'는 어법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귀엽다'는 그때까지의 '귀염둥이 아가씨' - '귀여운 여자'라는 남녀의 지배 관계를 긍정하는 언어로서 연합적군 내부에서 쓰여 온 '귀엽다'와는 결정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내가 예전에 『소녀 민속학』에서 문제 삼았던 '귀엽다'와 동일한 어법이다.

마침 이 연합적군 사건을 전후한 시기를 기점으로 '귀엽다'라는 어법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우에가키가 '귀염둥이 아가씨'라고 했을 때 그 '귀엽다'는 남자의 입에서 발화되어 남녀의 지배 관계로 수렴해 간다. 코지마나 오오츠키의 '귀여운' 나는 남녀 간의 지배 관계에 저항할 수 없다. 하지만 카네코의 '귀엽다'는 명백히 모리와 카네코 사이의 관계를 전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귀엽다'의 어법은 여성들의 입에서 발화되는 순간, 역으로 눈앞의 모든 사상을 이 '귀엽다'라는 한마디로 포괄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성을 지배하는 언어로 존재했던 '귀엽다'가, 반대로 여성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를 '귀엽다'라는 한마디로 다시 지배해 버리는 언어로 변용되어 간 것이다.



두 시대정신의 교착

이러한 '귀엽다'의 어법을 배양한 것은 70년대 전반에 표면화되는 여성 미디어, 소녀 미디어이다.


예를 들어, 우에노의 회상에 등장하는 과격파 여학생이 품고 있던 잡지 『앙앙(anan)』에서도 '귀엽다'는 핵심 키워드다. 일러스트레이터 나가사와 세츠에 따르면, 이 말은 당시 브랜드 '핑크하우스'의 디자이너였던 가네코 이사오와 그의 아내 다치카와 유리가 입에 달고 살던 단어였다고 한다. 1970년대 『앙앙』에는 가네코가 디자인한 옷을 입은 다치카와 유리의 사진이 심심찮게 실렸다.


"그러고 보니 그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귀여워……' 같은 소리를 하는 가네코 군이다. 나에게 있어 그 '귀엽다'는 말의 시초는 바로 가네코 군이었다. 『앙앙』 창간 당시부터 하도 '귀여워'를 연발해서…… (중략) 이 일본인이 쓰는 일본어는 내가 아는 일본어와는 참 많이 다르구나…… 하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가사와 세츠, 「신비로운 남성」, 『가네코 이사오의 핑크하우스 그림책』 수록)


가네코와 다치카와는 『앙앙』 표지 네거티브 필름을 보며 '귀엽다'를 연발했다고 나가사와는 말한다. 가네코는 남성이지만, 그가 내뱉은 '귀엽다'는 더 이상 여성을 '귀염둥이(카와이코짱)'로 취급하며 지배하려는 목적의 단어가 아니었다. 여성들이 자신들만의 '세계'를 긍정하고 재구성해 나가는 언어로서의 '귀엽다'를 그 역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공유했기에 그의 브랜드인 '핑크하우스'는 7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귀여운 문화(카와이 컬처)'를 '사상적'으로 주도할 수 있었다. 또는 <소녀틱>한 순정만화가 꽃피기 시작하던 소녀 만화 잡지 『리본』에서도 1972년경부터 '귀엽다'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귀염둥이'가 되기를 강요받던 여성들은 이제 '귀엽다'는 말을 남성, 혹은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 그 자체를 향해 되던지기 시작했고, 이 '귀엽다'로 상징되는 감수성에 기대어 시대는 확실하게 변모하고 있었다.


미야다이 신지는 이 무렵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개관한다. 즉, '젊은이'라는 공동성이 이 시기에 일거에 해체되고, '젊은이'라는 공동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이 성립된다. '귀엽다'는 현상은 그 결과로 생겨났으며, 일반적인 '젊은이'가 아닌 닫힌 공동성을 새롭게 구축해 나간다. 서브컬처 안에 다양한 작은 공동성들이 속속 성립되는 것이다. 그 한 예로 '귀엽다는 공동성'이 존재한다고 그는 말한다.


연합적군이 속해 있던 문화는 그야말로 60년대적인 '젊은이'라는 공동성이다. 그 '공동성'의 막다른 골목이라 할 수 있는 연합적군의 산악 베이스에서, 핑크하우스라는 '귀여운 문화'의 상징적 브랜드 디자이너 가네코 이사오와 우연히 성이 같았던 한 여성에 의해, '젊은이'라는 구시대적 공동성을 대표하는 모리에게 '귀엽다'는 말이 되던져진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젊은이'라는 공동성이 '귀엽다'는 말 한마디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으로 이 장면을 읽어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곳에서는 분명 두 가지의 시대정신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미야다이는 이 70년대 초반의 변화를 젊은 세대 간 커뮤니케이션의 질적 변화로 파악하지만,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이를 소비사회화의 문제로 바라본다.


"우선 1972년을 기점으로 3차 산업 종사자 수가 2차 산업 종사자 수를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또한 미네랄워터가 처음으로 병에 담겨 팔리기 시작했죠. 사실 이건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인데, 마르크스 『자본론』의 기초는 공기나 천연수는 매우 중요하여 사용 가치는 크지만 교환 가치는 없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거든요. 그런데 천연수가 판매됨으로써 교환 가치가 생겨난 겁니다."
(「나의 '전향'」, 『분게이슌주』 1994년 4월호)


산업의 중심이 사물이 아닌, 기호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3차 산업으로 대체된다. 사물의 가치는 '사용 가치'가 아니라 '차이'에서 비롯되는 기호적 가치로 그 비중이 옮겨간다. 그렇기에 '천연수'가 브랜드가 되어 교환 가치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귀엽다'의 새로운 어법은 바로 이 '기호적 가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당시의 세태는 고도성장이 파탄 나고 달러 쇼크와 오일 쇼크가 이어지며, 마치 거품 경제 붕괴 후의 최근 1, 2년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일본인은 과잉 소비를 반성하고 절약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고 당시 신문과 잡지들은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런 시대의 표층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이미 시대의 변모는 시작되고 있었다.


1973년, 야마나시 실크센터가 '산리오'로 사명을 변경한다. 그 전후로 소니 크리에이티브 프로덕츠, 가쿠켄 등이 팬시 비즈니스에 뛰어든다. 사물을 직접적인 사용 가치가 아니라 '귀엽다'는 기호적 가치로 파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의 서막이었다. 맥도날드, 미스터 도넛, 배스킨라빈스(써티원) 같은 패스트푸드점이 속속 상륙했고, DC 브랜드가 '맨션 브랜드'라 불리며 하라주쿠 일대의 맨션 방 한 칸에서 우후죽순 탄생했다. 사물과 환경의 '귀여움화'가 단숨에 시작된 것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을 향해 되던지기 시작한 '귀엽다'는 감수성은, 사물을 기호로서 소비해 나가는 80년대 소비사회의 양상과 밑바탕에서 맞닿아 있었으며,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쳐 일본인들이 그곳을 향해 허물어져 내린 심성이기도 했다.


사물이 기호로서 소비되는 시대에는 사상 역시, 예컨대 패션이나 다양한 서브컬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의 위치밖에 부여받지 못한다. 모든 것을 향해 발화되는 '귀엽다'는 단어는 모든 것을 동등한 가치로 만들어버리는 일종의 주술이기도 했다. 우에노는 앞서 언급한 『앙앙』을 든 과격파 학생과 관련해 "과격파 여학생과 『앙앙』이라는 조합은, 정치(セイジ)나 혁명(カクメイ)을 논하는 운동권 대학생조차 더 이상 엘리트가 아니게 된, 난숙한 대중사회의 개막을 상징하고 있었다"(우에노 앞의 책)라고 지적한다. 『앙앙』과 혁명 사상은 모두 서브컬처로서 동등한 가치를 지닐 것을 요구받았고(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기호'적 차이뿐이라는 식이 되었다), 반대로 서브컬처와 동등한 취급을 기꺼이 받아들인 사상만이 이른바 <지식>으로서 상품화되는 것을 허락받았다. 연합적군의 사상은, 요컨대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싸웠던 것이다.


연합적군 사건에서 살해당한 여성들의 공통점은 80년대 소비사회로 이어지는 서브컬처적 감수성이었다. 따라서 12명이 살해당한 산악 베이스에서 대립하고 있었던 것은 두 종류의 혁명 노선이 아니라, 의미를 상실할 운명에 처해 있던 남자들의 '신좌1파' 언어와 시대의 변모에 충실하게 반응하고 있던 여자들의 소비사회적 언어였으며, 적어도 네 명의 여성이 당한 '총괄(자아비판과 숙청)'은 그러한 '투쟁'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최종적으로 가네코가 모리에게 '귀엽다'는 말을 들이밀었듯, 그 말은 모리로 대표되는 연합적군의 사상과 대치하는 것이었으며, 더 나아가 그런 류의 사상이 해체된 후 그 자리를 대체할 다음 시대의 감수성이었다. 가네코의 '귀엽다'는 어법은 연합적군 사람들이 지닌 사상의 언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러한 괴리가 앞서 언급한 『마르코폴로』 기사에 실린 나가타의 '귀여운' 일러스트와 다카자와의 정치적 언설 사이의 괴리와 밑바탕에서 통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귀엽다'를 둘러싼 투쟁

자, 드디어 나가타 요코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나가타는 '귀엽다'는 단어로 상징되는 사회 변모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다시 나가타의 수기로 돌아가 보자. 모리를 향해 "눈이 귀엽다"고 말한 직후에 보인 나가타의 반응이다.


그러자 모리 씨는,

"이것 봐라. 눈이 귀엽다느니 하는 건 지도자에게 할 말이 아니다. 마치 어린애 취급하는 것 아닌가"라며 화를 냈고, (중략) 다른 중앙위원들은 모리 씨에게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눈이 귀엽다고 생각한다"는 식으로 모리 씨를 바라보는 것은 총괄을 요구받고 있는 자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16의 묘비』)


나가타는 이 시점에서 이미 고지마와 도야마라는 두 여성의 죽음에 가담한 상태였다. 하지만 적어도 나가타의 수기 내용을 믿는다면, 이 시점까지 그녀는 모리 일당이 주도하는 여성성의 부정에 대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을지언정 여성으로서 심정적인 반발을 느끼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가네코의 "눈이 귀엽다"는 발언 역시, 애초에 모리의 부조리한 가네코 비판이 "너무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이유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른 나가타가 가네코 편을 들어주기 위해 던진 "모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발단이었다. 그런데 나가타는 가네코의 '귀엽다'는 발언을 듣자마자 돌변하여 그것은 "총괄을 요구받고 있는 자의 태도가 아니다"라며 그녀를 비판하는 쪽으로 돌아선다. 아이러니하게도 '귀엽다'의 새로운 어법이 나가타를 연합적군의 다른 여성들로부터 단절시켜 버린 것이다. 사실 수기를 읽어보면 나가타가 처음으로 여성들을 심정적으로 내쳐버리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그녀는 혁명 사상과 '귀여움'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결국 전자(前者)의 편에 선다.


살해당한 여성들은 모두 '귀여운 여자'들이었다. 게다가 동시에 도야마의 '머리카락'이나 오쓰키의 '판탈롱(나팔바지)'으로 상징되듯, 『앙앙』을 든 과격파 여학생과 밑바탕이 통할 수 있는 감수성도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최종적으로 가네코의 '귀엽다'는 발언을 통해 연합적군의 사상과 충돌한다. 지도자인 모리를 향해 가네코가 "눈이 귀엽다"고 말했을 때, 모리의 지도자로서의 입지나 사상은 그야말로 '판탈롱'과 동등한 가치로 전락해 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나가타는 가네코 일행을 매몰차게 잘라낸다. 나가타와 살해당한 여성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당시 여자의 질투 때문이라는 설이 무성했지만(82년 1심 판결도 그러했다), 그렇게 이해해 버리면 나가타를 포함한 여성들과 역사의 관계를 놓치게 된다. 그곳에 있었던 것은 '귀엽다'를 둘러싼 투쟁이었던 것이다.


나가타와 살해당한 여성들을 갈라놓은 것은 좌1파 사상의 노선 대립 따위가 아니다. 그녀들의 대립을 좌1파 사상의 언어로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그러한 사고의 틀과, 머지않아 소비사회적 감수성으로 이어지게 될 '귀엽다'는 이야기로 상징되는 여자들의 감각이 충돌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가타에게 '귀여운' 감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가타는 여고 출신으로 그야말로 왕자님과의 키스를 꿈꾸는 듯한 소녀 취향의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그녀의 수기에 늘 어렴풋이 비친다. 나가타를 포함한 여성들의 공통점은, 무방비한 '소녀 취향'이 어느 날 갑자기 혁명 사상과 마주쳐 버렸다는 비희극에 있다. 그녀 역시 70년대 초반을 살아간 젊은 여성 중 한 명으로서, 그 시대에 싹트고 있던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이 소녀 취향에 이름과 형태를 부여해 나가는 것은 혁명 사상이 아니라, 72년의 변화 속에서 은밀하게 시작되어 80년대에 만개하는 소비사회적인 그 무엇이었다. 그녀 내면에 도야마나 가네코의 영역으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는 심성이 있었기에, 그녀는 최종적으로 네 명의 여성의 죽음에 가담함으로써 자신을 '사상' 쪽에 간신히 붙들어 매려 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연합적군이 싸웠던 상대란

그렇다면 문제의 옥중 일러스트가 그려져야만 했던 의미는 자연스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소녀틱>한 일러스트는 산악 베이스에서 그녀가 억눌러 봉인했던 '귀엽다'는 심성의 소박한 해방이었던 셈이다. 그 너무나도 치졸한 <소녀틱>함은, 그녀 역시 소비사회화라는 역사의 틀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이 <소녀틱>해질 수 있는 장소, 즉 80년대 소비사회에 끝내 당도하지 못했다. 그것은 살해당한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은, 대중으로서의 여성들이 '나'라는 윤곽을 그려낼 방도를 '사상'이 아닌 '소비'에서 찾아가는 시대로의 과도기에 서서, 그 욕망에 충실했기 때문에 살해당한 것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80년대 소비사회 욕망의 본질이 '소비를 통한 자아실현'에 있다고 간파했지만, 연합적군 사람들은 그 욕망을 초극할 사상을 자아내지 못한 채 자멸해 갔다.


하지만 결국 전공투(전학공투회의) 시대의 <좌1파 사상> 그 자체가 최종적으로는 서브컬처 안으로 허물어져 내릴 성질의 것이었다. 전공투 운동에서 전향한 이들에 의해 80년대 서브컬처가 주도되어 나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로 존재한다. 연합적군 사람들은 산악 베이스에서 말하자면 소비사회화라는 역사의 변모와 싸우고, 그것을 거부하고, 패배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회적 변모는 결국 저항하기 힘든 거대한 물결이었고, 이토이 시게사토든 우에노 치즈코든 간에 80년대 소비사회를 주도했던 사람들의 출신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곧 총괄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연합적군 사람들이었음은 명백하다. 만약 나가타 요코가 연합적군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혹은 살해당한 여성들이 살아남았더라면 아마도 그녀들 역시 당연하다는 듯 소비사회화에 편승하여 그 시대에 충실한 소비자로서 살아갔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특히 나가타 요코의 수기 곳곳에 어른거리며, 그녀 자신도 제대로 언어화하지 못하고 있는 남성 지배적 가치에 대한 생리적 위화감은, 80년대에 우에노 치즈코 등에 의해 '페1미니즘'이라 이름 붙여지고 동시에 여성들의 소비사회적 행동이나 욕망을 긍정해 나가게 되는 감각(80년대의 페1미니즘은 사상 따위가 아니라 소비하는 여성들의 심성으로서만 존재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야말로 '총괄'되어야 마땅하다)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 견딜 수 없다. 나가타에게서 사상의 언어를 벗겨냈을 때 남는 것은 그런 지극히 흔해 빠진 여성상이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역사라는 것에 규정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공투 운동 같은 것이 아니라 1972년을 전후로 한 소비사회화라는 사회 변모였으며,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살아갈 가능성으로서 열려 있던 유일한 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가타는 감옥 안에서 <소녀틱>한 일러스트를 스스로에게 허락함으로써, 은밀하게, 그리고 홀로, 자신은 잃어버렸던, 그리고 자신이 살해한 여성들로부터 빼앗아버린 그 가능성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