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말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지만, '소녀 민속학'이라는 학문은 내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지어낸, 말하자면 가공의 학문이다. 다만, '소녀 민속학'이라는 조어 자체는 인형 문화론을 연구하시는 마스부치 소이치(増淵宗一) 씨가 만든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허구의 학문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농담으로 굳이 한 권의 책(이렇게 두꺼워지고 말았다)을 새로 쓴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러한 허구의 과학을 통해서만 이제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심각한 사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시뮬레이션(모조품)의 시대에는 시뮬레이션 학문이야말로 어울린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존재하지 않는 민속학에 대해 당당하게 해설하려고 하는 나는, 그 유명한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國男)의 직계 민속학, 말하자면 보수 본류의 민속학을 학교(쓰쿠바 대학입니다)에서 배운 사람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말해서 낙오했다.
산간 마을을 찾아다니며, 노파 앞에 녹음기를 놓고 자,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라고 하는 기존 민속학의 필드워크가 도무지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동기 친구들이 정통적인 민속학의 길을 걷는 것을 곁눈질하며, 나 혼자만 훌쩍 빠져든 미디어의 세계에 그대로 주저앉게 되고 말았다. 거기에는 졸업할 때 지도 교관이었던 미야타 노보루(宮田登) 선생으로부터의 "자네의 발상은 너무 저널리스틱해서 학문에는 맞지 않아"라는 한마디가 꽤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 편집자 겸 평론가로서 도시를 헤매기 시작한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독자인 아이들을 상대로 또다시 필드워크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시, 혹은 미디어의 세계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필드였던 것 같다.
그렇게 도시를 어슬렁거리는 민속학 조사자가 된 나의 이론적인 버팀목은, 미야타 선생님이 제창했던 '도시 민속학'이라는, 꽤나 저널리스틱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연구 방법이었다.
'민속'이 멸망해버렸다고 해도, 여전히 민속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시나 현대 사회를 그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비전문가라도 알 수 있는 결론이다.
이 책은 미디어론으로서의 도시 민속학이라는, 내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쓰인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소녀 만화>나 <주술(오마지나이)>, <교복>과 같은 소녀 문화를 그 대상으로 삼아, '소녀 민속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왜 '소녀 민속학'인지는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하지만 한 가지만 적어두고 싶은 것은, '소녀 민속학'이란 민속학이 다른 학문의 보조 학문이 되어버리지 않고, 독립된 연구 분야로서 살아남기 위한 아마도 유일한 해답일 것이라는 점이다. 저널리스틱한 나로서는 저널리스틱한 대답밖에 준비할 수 없었지만, 도시 민속학을 소비 사회라는 필드에 더 적합하도록 수정한 것이 바로 나의 '소녀 민속학'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나 소비 사회는 어설픈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민속학 또한 크게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 민속학과 소녀 민속학은 어쩌면 민속학이 크게 변화하는 도중의 번데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나에게 세 번째 책이다. 카파 사이언스라는 저널리스틱한 무대를 운 좋게 얻었기 때문에, 저널리스틱한 나의 민속학에 대해 정리해 보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오로지 미야타 노보루 선생님께 바쳐지게 된다. 미야타 선생님께는 민폐스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웃음).
1989년 4월
오쓰카 에이지
『소녀 민속학』 목차 * 머리말
프롤로그 ―― 누구나 '소녀'인 시대 ・・・・ 9
1 〈교복〉 ―― '소녀'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 25
2 〈변태 소녀 문자〉 ―― 소비 사회를 집어삼키는 '카와이이(귀여운) 컬처' ・・・・ 47
3 〈방〉 ―― '정령'들을 맞이하는 장소 ・・・・ 69
4 〈학교〉 ―― 찰나의 '무연(無縁)의 장' ・・・・ 93
5 〈리카짱 인형〉 ―― 어머니상의 소녀화가 낳은 '모자(母子) 중추' ・・・・ 113
6 〈포엠(시)〉 ―― 일상으로 스며든 '서정화의 세계' ・・・・ 129
7 〈아침 샴푸〉 ―― 부정(케가레)을 싫어하는 도시의 '무녀'들 ・・・・ 155
8 〈소문〉 〈괴담〉 ―― '靈界'로부터의 메시지 ・・・・ 171
9 〈할머니〉 ―― "순수하고 귀여운" 우리들 ・・・・ 189
10 〈남자아이〉 ―― '날 수 없는 소녀'와 '하늘을 나는 신들' ・・・・ 205
11 〈졸업〉과 〈죽음〉 ―― 더듬어 찾는 '통과 의례' ・・・・ 225
에필로그 ―― '소녀'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 243
본문 도비라·도판 작성: 와카쓰키 요시카즈
본문 도판·사진 레이아웃: 사노 유미코, 히다카 다카아키
프롤로그 ―― 누구나 '소녀'인 시대
그녀들은 누구인가
소녀들이 있다.
일요일 오후, 도쿄 하라주쿠의 오모테산도와 마주한 건물 입구 근처에 소녀들 무리가 모여서, 그 건물의 맨 위층에 가까운 방 하나를 애절하게 올려다보고 있다. 커튼 너머로 움직이는 사람 그림자를 발견하고 교성을 지른다. 하지만 방주인들은 늘 부재중이고 불조차 꺼져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계속 기다린다. <방>은 히카루 GENJI 등 소년 아이돌 그룹의 합숙소이다.
소녀들이 있다.
도쿄의 중심에 위치한 텅 빈 숲에 예전에 살고 있던 성스러운 노인이 병으로 누웠을 때의 일이다. 세일러복 차림의 소녀들이 숲 입구에 모여 그를 위해 기도했다. 소녀들의 아빠와 엄마는 "일왕의 전쟁 책임을 모르는 거냐"라며 화를 냈지만, 그녀들은 <불쌍한> 노인을 위해 긴 줄을 만들었다.
소녀들이 있다.
전언 다이얼이라는 NTT의 서비스가 있다. 정해진 번호와 임의의 비밀번호를 누르면 메시지를 녹음할 수 있고, 또 그것을 들을 수도 있다. 본래는 지인이나 가족끼리 자동 응답기 대신 사용하도록 하기 위한 서비스였지만, 소녀들은 자연 발생적으로 몇 개의 비밀번호를 공유하며 불특정한 <누군가>를 향해 메시지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 메시지를 듣는다면 누군가 대답해 주세요." <대답>이 녹음된다. 그리고 다시 그것에 대한 <대답>이. 그렇게 소녀는 누군가와 소통하려 했다.
지방 도시에서 상경하여, 이윽고 봄철 화장품 캠페인송을 발매할 정도가 된 아이돌은 어느 날 자신이 소속된 사무실 건물의 옥상에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시처럼 신비로운 말을 적어 내려간 그녀의 일기만이 남겨졌다. 미디어는 그녀가 실연한 것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진짜 이유는 알 수 없다. 며칠 후, 그녀의 뒤를 따르듯 차례차례 그녀와 동세대인 소녀들이 똑같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40명을 넘었다고도 한다.
다양한 소녀가 있다.
그녀들은 누구인가.
그녀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녀들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소녀가 아닌 우리는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도 <소녀>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우리는 도시 공간 속에, 혹은 미디어 속에 무수한 소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은 그녀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왜냐하면 소녀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소녀들은 어느 날 갑자기 미디어나 도시 속에 부상하고, 그리고 곧장 모습을 감춘다. 소녀가 아닌 우리는 그녀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숲의 성스러운 노인이 붕어하자 고쿄(황거) 앞에는 다시 긴 줄이 생겼지만, 이번에는 그녀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언 다이얼에 귀를 기울여 보아도 이제 그곳에는 소녀들의 목소리는 녹음되어 있지 않다. 여자아이의 전화를 원하는 남자아이가 녹음한 테이프만 허무하게 돌아간다. 소녀들이 차례차례 비상했을 때도, 소년들은 몇 명이 목을 매달아 보았지만 하늘로 날아오르지는 못했고, 결국 소녀 가수의 죽음 현장에서 통곡할 뿐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소녀는 이미 그곳에 없다. 우리의 시야에 그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허둥지둥 달려가면, 이미 그녀들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 단지, 그녀들의 잔향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잔향'으로부터 그녀들에 대해 추측하는 것뿐이다. 이 '잔향'이란 예를 들어 소녀 만화이고, 아이돌이며, 패션이고, 변태 소녀 문자이며, 아침 샴푸와 같은 유행이기도 하다. 이것들이 우리에게 그 존재를 알1리게 되었을 때, 사실 이미 <소녀>는 거기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겨진 것을 단서로 우리는 그녀들에게 도달하려고 한다.
그것이 소녀 민속학이다. 소녀 민속학이란 소녀를 계속 쫓으며, 이를 손에 넣기 위한 방법론인 것이다.
이렇게 쓰면 왠지 롤리콘이나 성범죄 입문서 같은 오해를 받을 것 같지만 물론 그렇지 않다. 소녀 민속학이 손에 넣으려는 <소녀>는 구체적인 신체를 가진 소녀들이 아니다. 따라서 그녀들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무수한 '연구'가 있으니 그쪽을 참조하길 바란다. 그런 실용성은 소녀 민속학에서는 전혀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을 미리 거절해 둔다.
그렇다면 소녀 민속학이 구하는 <소녀>들은 어디에 있는가. 사실 <소녀>는 어디에나 있다. 내 안에도, 그리고 독자인 당신들 안에도 <소녀>가 있다.
벌써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기 내면에도 <소녀>가 있다니, 서른 넘은 남자가 할 말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꽤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이다. 별로 친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렇게 반복할 수밖에 없다.
우리 내면에 <소녀>가 있다고.
아마도 우리는 우리 내면에 사는 <소녀>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눈치채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미디어부터 성범죄자까지)은 <소녀>에게 매료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렇다. 그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인정했는가. 인정하는 것이 소녀 민속학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아니, 애초에 민속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우리 내면에 사는 누군가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민속학과 소녀 민속학은 어떻게 다른가. 구 민속학에 대해 왜 소녀 민속학 따위의 수상쩍은 것이 필요한가. 이 점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소비하는 사람'들만 남아버린 사회
야나기타 구니오가 고안한 일본 민속학은 '자기 내성'의 학문이라고 일컬어진다. 민속학이라고 하면 과거의 유습인 민속 행사나 옛날이야기, 전설 따위를 모으는 골동품 취미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사고를 위한 단서이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민속 문화를 전승하고 있는 우리 일본인은 대체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다. 자기 내성이란 이런 작업을 말한다.
민속학은 '우리는 누구인가'를 물을 때의 '우리'를 '조민(常民)'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가 공통 분모로서 가지는 '우리'의 부분, 그것이 '조민'인 것이다. 민속학이란 우리 내면에 있는 '조민'의 존재를 자각하기 위한 학문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따라서 '조민'은 구체적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점이 서민이나 인민, 민중 등이라는 말과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일본 민속학 사전』의 '조민' 항목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민속학상의 개념으로서의 조민은, 민간 전승 보유자라고도 해야 할 것으로, folklore의 주체인 folk, Volk이다. 민간 전승이 짙게 보존되어 있는 것은 민중이나 대중·서민·인민 등이기에, 그러한 말들과도 혼동되기 쉬우나, 계급이나 신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관점에서 그 창조적 활동에 힘쓰는 측면이 비교적 옅고, 반복적인 유형적 문화 감각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창조적이고 개성적인 문화 활동에 종사하는, 지성·이성이 강한 자라고 할지라도 매일 거기에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조민성을 갖추고 있게 된다. 따라서 완벽하게 조민이라고 할 수 있는 자가 여기에 있다고 지적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패턴으로서 그러한 성격의 유형을 민속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와카모리 다로, 오쓰카 민속학회 편 『일본 민속학 사전』)
약간 빙빙 돌려 말하는 표현이지만, 요컨대 사람은 다소간 내면에 '조민'의 부분을 안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봐라 여기에 조민이 있다고 가리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간 전승'(민속 자료)의 분석을 통해 거기서 추출되는 공통 감각의 집합이 '조민'인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는 '조민성'이라고 고쳐 부르는 편이 나은 성격의 것이다. 민간 전승이란 민속학이 대상으로 삼아온 민속 문화 전반을 말하며, 민간 신앙, 옛날이야기 등의 구비 문예, 민속 예능, 의례, 가족이나 촌락 공동체의 시스템 등 온갖 분야에 걸쳐 있다.
일본인의 내면에는 전설이나 의례, 축제라는 민속 문화를 질리지 않고 전승해 온 '조민'이 살고 있으며, 반대로 그런 부분이 사람들 속에 다소간 존재했기 때문에 민속 문화는 누가 명령하는 사람 없이도 전승되어 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민속 문화를 대체 민속학은 어디서 찾아낸 것일까. 사실은 농촌 및 어촌, 산촌과 같은 장소이다. 게다가 중심은 압도적으로 농민, 그것도 벼농사 민족이었다. 그들은 자연에 직접 작용하여 그곳으로부터 은혜를 얻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생산자'들이다. 즉, 민속 문화란 이콜(=) 벼농사 민족, 거기에 다소의 어민이나 사냥꾼 같은 사람들을 더한 '생산자'가 짊어지는 문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서 도출되는 '조민'도 사실은 농경민의 공통 감각이라는 것이 된다. 이처럼 '조민'은 암묵적인 양해 사항으로서 농경민을 그 모태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야나기타 구니오가 민속학을 구상했던,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초기에 걸쳐서는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당사자인 야나기타 자신은 비교적 단순하게, 민속학의 입문서 중 하나인 『향토 생활의 연구법』에서는 "조민 즉 극히 평범한 백성"으로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존재"라고 하고 있다. 민속학의 창성기에는 '조민'을 농민과 동일하다고 해버려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당시 일본인의 다수파는 농민이었으니까, 다수파 사람들이 짙게 가진 특성이 '조민'인 이상, '조민'이 농경민의 공통 감각이어도 전혀 상관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2차 세계 대전을 경계로 농업 인구가 급감해 버린다. 그래도 쇼와 35년 단계에서 총인구 대비 농가 인구는 37.1퍼센트로 3분의 1을 조금 넘었지만, 쇼와 61년에는 16.3퍼센트일 뿐이다. 게다가 이 16.3퍼센트 중에는 겸업이 9할 가까이 차지하여, 순수한 농경민은 일본인 총인구의 2퍼센트에 불과하다. 이 2퍼센트의 농경민의 문화에서 억지로 '조민'을 이끌어내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여전히 그렇게 2퍼센트에 집착하고 있는 민속학자도 실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도출된 '조민'성이 나머지 98퍼센트에게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러워진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는 누구인가"라고 물었을 때, 과연 민속학은 거기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준비할 수 있을까. 벼농사 민족의 문화에서 꺼낸 '조민'을 보여주며 이것이 너희들의 내면의 일본인이라고 들어도 솔직히 난감하다. 이것이 농경민을 암묵적인 전제로 한 민속학이 오늘날 안고 있는 문제이다. 사실 야나기타가 "조민 이콜(=) 농민"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람들 내면에 있는 변함없는 부분" 따위로 말을 바꾼 것도, 농경민이 일본 사회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에 초조해진 전후 민속학자들의 소행인 것이다.
그렇다면 농경민을 대신할 오늘날 다수파 일본인은 어떤 존재인가. 쇼와 61년도 취업자의 산업별 구성을 보면, 농림·어업의 1차 산업이 8.5퍼센트, 건설이나 제조업의 2차 산업이 33.9퍼센트, 나머지 57.2퍼센트가 서비스업이나 금융, 유통과 같은 3차 산업인 것이다. 농경민을 흙에 관여하는 생산자라고 정의한다면, 일본인의 절반이 흙에서 멀리 떨어져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비생산자라는 뜻이 된다.
3차 산업의 사람들은 농작물을 포함한 '물건'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물건'을 단지 유통시키고 캐치볼 할 뿐이다. 그것이 일인 것이다. 벼를 포함하여 과거 민속 문화의 담당자인 사람들이 만들고 있던 농작물은 외국에서 수입하는 편이 싸게 먹힌다는 것이 일본인의 속내이다. 게다가 농업뿐만 아니라 2차 산업적인 제조업도 일본은 이 국토 외부로 가져가 버리려고 하고 있다. 임금이 싼 동남아시아로 공장이 차례차례 진출하고 있으며, 국내를 유통하는 '물건'은 일본의 외부에서 생산되어 일본인은 단지 이것을 유통시키기만 하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근대 사회가 낳은 '이물질'
즉, 오늘날의 일본인은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흙으로부터의 생산 같은 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우리는 민속학이 그려낸 '조민'과는 가장 대극적인 위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은 더 이상 '생산자'가 아니다. 외부에서 가져온 '물건'을 유통시키고 소비하며, 요컨대 '물건'과 장난칠 뿐인 존재이다. 게다가 이 '물건'조차도 생활에 직접적으로 유용한 것보다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저 기호로서의 '물건'(우리가 매일 구입하는 것 중에서 그것이 없으면 생사에 관여한다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말해서 전부 쓸데없는 것이다), 혹은 더 이상 구체적인 '물건'조차 아닌 정보나 주식, 토지 같은 실체 없는 기호로 변화해 가고 있다. 이런 우리의 공통 감각을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야 좋을까. 그것이 <소녀>인 것이다.
'조민'을 대신해서 우리 내면에 자리 잡은 것이 <소녀>라는 공통 분모이다. 자, 들어 보라. <소녀>란 근대 사회가 낳은 존재이다. 근대 이전에는 <소녀>는 없었다. 존재했던 것은 성적으로 미성숙한 유녀(幼女)와 성숙한 여자 두 종류뿐이다. 그런데 근대 사회는 여성을 집안과 집안 사이에서 교환되는 '물건'으로 위치 지으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사회는 여성을 초조(첫 월경)를 맞이하여 성적으로 성숙하면서도 그것이 한 남자에게 사용되기 전까지, 일단 소중히 미사용 상태로 보존하고 나아가 그 상품 가치를 높이려고 생각했다. 여자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학교'를 만들고, 그곳에서 딸들을 교육하려고 했다. 확실히 말해서 가두어 버린 것이다.
과거 민속 사회에서는 여성은 초경을 맞이하는 13세 전후에 노동력으로서도, 아이를 낳는 '여자'로서도 한 사람 몫으로 인지되었다.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맞선으로 일본인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은 메이지 시대 이후이다. 그 이전에는 맞선은 무사 등 지배 계급의 풍습이었다. 민속 사회에서는 당연히 일정한 규칙은 있었지만, 자신의 배우자는 마을 안에서 한 사람 몫을 인정받은 후라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여자로서 성적으로 성숙하면 곧바로 자신의 의지로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 그렇게도 안 되게 되었다. 구 민법에서는 여자는 25세가 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결혼할 수 없다. 결국 누군가에게 사용되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입장이 된다. 그동안에는 당연히 생산 라인에서 배제된다. 이리하여 그녀들은 어른의 신체를 가졌으면서도 어른이 아닌 기묘한 존재가 된 것이다.
민속 사회에서 아이는 일직선으로 어른이 된다. 성적 성숙을 맞이한 단계에서 언제든지 배우자를 선택해도 좋다. 그 대신 일꾼으로서도 '어른' 수준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근대의 소녀들은 어른이 되는 것에 '잠깐 대기'가 걸렸다. 그녀들은 이윽고 아내로서 아이를 '생산'하게 될 운명이지만, 일단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즉, 모든 의미에서 '생산'으로부터 배제되었다. 그것이 <소녀>인 것이다. 현실의 그녀들은 기한이 오면 싫든 좋든 아내가 되어야 한다. 다시 생산 라인에 편입된다. 하지만 그 유보 기간 동안에 그녀들은 스스로를 <소녀>라고 자각하고, 신기한 소녀 문화를 만들어 간 것이다.
'생산자'가 되는 것에 제동이 걸린 그녀들의 문화는 당연히 비생산적인 문화이다. 게다가 근대 사회가 여성을 필요 이상으로 억압해 버렸기 때문에 그녀들은 성숙을 본능적으로 공포스러워한다. 요시야 노부코(吉屋信子)의 소녀 소설부터 전후의 소녀 만화까지, 소녀 문화가 항상 남자들에게 경시받아 온 것은 그것이 생산을 가치의 중심으로 하는 남성 문화의 대극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살펴보았듯이, 오늘날 일본인은 정신을 차려보니 '생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평생 '생산'에 직접 관여하는 것을 패스하는 것마저 가능해져 버렸다.
근대라는 시대를 일본인이 직접적인 '생산'에서 점차 벗어나는 시대라고 정의해 보자. 그렇다면 <소녀>는 가장 먼저 '생산'에서 벗어난 존재였다. 혹은 '생산'에서 벗어난 자들 속에 싹튼 것이 <소녀>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대라는 시대는 일본인이 생산자인 '조민'에서 비생산자인 <소녀>를 향해가는 시대였던 것이다.
이제 납득이 갔을 것이다. <소녀>야말로 오늘날 일본인에게 있어 '조민'에 해당하는 것이다. '생산'으로부터의 거리와 비례하여 <소녀>성이 커진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그 궁극적인 형태가 실체로서의 <소녀>이다. 오늘날의 소비 사회에 있어 소녀들은 보기 좋을 정도로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생산하지 않는다. 마루이(丸井)의 신용카드도 매거진 하우스의 잡지도, 소녀들의 소비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 소녀들은 남자친구가 일해서 모은 돈을 한순간에 소비해도 좋다는 규칙으로 지금의 사회는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남자아이들도 학창 시절부터 한 사람 몫을 하며 신용카드를 들고 다니는 소비자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그래도 이윽고 샐러리맨이 되어 생산 시스템의 끄트머리 정도에는 접속해야만 하지만, 소녀들은 그럴 필요도 없다. 커리어 우먼을 지향하는 소녀도 있겠지만, 남자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것에 비해 여자아이들은 계속 놀기 위해 OL(오피스 레이디)이 되어 간다. 그녀들은 소비하는 사람이니까. 게다가 결정적인 소비자로는 단카이 세대 이하의 주부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소녀>를 비웃을 수 없다. 왜냐하면 <소녀>는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만들어 낸 것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근대란 이러니저러니 말하면서도 일본인이 되도록 '생산'에서 멀리 떨어지자고 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소비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소녀 문화를 배워야만 한다. 기묘하고 불가해한 소녀 문화나 그녀들의 행동도 파고들어 가면 결국 우리 안에 있는 것과 겹쳐져 온다. 갈 데까지 가버린 느낌이 있는 오늘날의 소비 사회 속에서, 우리는 대체 어떤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이 보일 것이고, 똑똑히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의 '신화'를 자아내는 소녀들
'물건'을 만들지 않는 우리는, 생산 활동을 순조롭게 거행하고 다음 세대의 생산자를 키워내기 위해 구축되어 온 일본인의 민속 문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신화도 종교도 의식도 전부 근대에 들어선 백 몇십 년 만에 깨끗하게 잊어버렸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생산자에게는 생산자의 신화나 종교나 의식이 있었던 것처럼, 소비자에게는 소비자의 신화, 종교, 의식이 있을 터이다.
소비자이기 때문에 의례나 종교는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근대 이후 무수한 신흥 종교가 생겨나고 소비 사회의 극치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몇 번째인가의 신흥 종교 붐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안이하게 낡은 종교나 의식을 부활시켜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신토(神道)를 포함하여 옛 일본인의 문화는 벼농사 민족의 공통 감각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벼를 버리고 농업을 그만두어버린 우리의 종교나 의식은 그곳에 없다.
소비자인 우리의 새로운 종교, 새로운 의식을 우리는 지금부터 스스로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문화로 안이하게 달려가는 것은 도피이다. 일본 문화로 회귀하고 싶다면 벼를 재배해라. 재배할 생각이 없다면 새로운 민속을 찾는 시행착오를 거쳐라.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소비 사회의 민속 문화(포크로어)가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것을 손에 넣지 못했다. 어디로 가면 새로운 포크로어는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 해답도 소녀 문화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분명 있다. 서두에 든 소녀들을 둘러싼 네 가지 에피소드 속에, 아니면 그 꼬리 정도는 간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녀 민속학은 소비 사회에서 '물건'과 장난치는 재주밖에 없는 곤란한 우리 일본인의 공통 감각을 <소녀>라고 이름 붙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습을 똑바로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 적당히 '자기 내성'을 하지 않으면 이 근대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포스트 모던 따위로 태평하게 말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조금 더 자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대 이후 <소녀> 이미지의 성립과 팽창 과정을 구체적인 소녀 문화의 연구로부터 탐구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그것은 생산자의 문화인 민속 문화, '조민'의 문화와의 대비로 그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으로 오늘날 소녀 문화의 분석을 통해 소녀의 공통 감각을 추출해 나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이 두 가지의 축적에 의해 우리는 우리 내면에 있는 <소녀>에 도달할 수 있을 터이다. 그렇게 해서 내면의 <소녀>, 즉 비생산자로서의 자신을 '내성'할 수 있다면, 포스트 모던은 무리라도 세기말 정도까지는 살아남을 방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소녀 민속학인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일단 미디어 속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소녀 문화를 해독함으로써, 그 심층에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드러내고 싶다. 그것을 몇 가지 축적해 감으로써, <소녀>라는 것의 윤곽을 어렴풋하게라도 그려낼 수 있다면 일단 성공이다.
현실의 여고생을 꼬시거나 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반성에는 반드시 도움이 된다.
소녀 민속학은 금욕적인 것이다.
그러면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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